[뉴스룸에서-민태원] 베르테르 vs 파파게노 효과

입력:2017-01-2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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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악영향 매우 큰 자살사건 보도… 미디어가 생명존중 문화 확산시켰으면

[뉴스룸에서-민태원] 베르테르 vs 파파게노 효과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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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거나 일반인의 동반자살 소식이 전해지면 유독 바빠지는 곳이 있다. 바로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자살예방센터다. 인터넷과 SNS에 쏟아지는 뉴스 속보 때문이다. 수면제나 번개탄, 목맴, 투신 등 자살 수단이 상세히 묘사되거나 선정적 표현이 들어가 있는지 면밀히 모니터링해 유해성이 확인되면 해당 언론사에 통보하고 수정을 요청한다. ‘자살보도 권고 기준 2.0’을 꼭 지켜 달라는 당부와 함께. 얼마 전에도 자살 방법이 구체적으로 들어간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이메일 요청서가 각 언론사에 전달됐다. 근래 질소가스, 사제총, 니코틴 같은 신종 수단이 쓰인 자살 사건이 잇따르면서 기사 제목에 명시돼 보도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언론이 자살 사건에 대해 많이 보도할수록 대중은 자살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자살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증가해 더욱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연예인 등 현저(顯著)성 높은 보도의 경우 모방 자살은 더 많이 우려된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 때문이다. 괴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연인과 사랑에 실패한 주인공 베르테르가 실의에 빠져 결국 자살한다는 내용에 공감한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실제 자살을 시도한 현상에서 유래됐다.

모방 자살 예방에 언론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는 2013년 자살 보도 최소화, ‘자살’ 단어 사용 자제 등 9가지 원칙을 기초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제정했다.

그런데 온라인 속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초창기 반짝했던 권고 지침 준수는 점점 무뎌지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국내 주요 언론사(방송사 9곳, 신문사 10곳)의 권고기준 준수율은 2013년 26.6%에서 2014년 22%로 떨어진 뒤 2015년에는 6.9%에 불과했다. 최근엔 소통을 내세운 소셜 미디어가 ‘죽음의 방아쇠’로 변질되고 있다. 자살 사건 관련 기존 미디어의 온라인 뉴스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될뿐더러 자살을 방조하거나 동반자살을 부추기는 ‘직접 통로’로 악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SNS에서의 자살 유해정보 신고는 2014년 11.1%(265건)에서 지난해 27.9%(2540건)로 급증했다. 더구나 SNS는 표현의 자유 영역과 겹쳐 규제가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 해외 기반 SNS는 명백한 자살 조장 콘텐츠라도 삭제 요청이 어려운 실정이다.


‘베르테르 효과’와 정반대 의미를 갖는 ‘파파게노 효과’라는 게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파게노는 연인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비관해 자살하려 하지만 요정의 도움으로 자살 유혹을 극복한다. 미디어가 오페라 속 ‘요정’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자살 예방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미디어 홍수 시대, 파파게노 효과가 제대로 퍼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디어 영역별 맞춤형 가이드라인의 마련과 실천이 필요하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은 온라인이나 SNS 콘텐츠에 대한 지침을 보다 강화해 ‘권고기준 3.0’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기자협회 차원이나 언론사 자체 교육을 늘려 실천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SNS는 ‘죽음의 통로’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명존중문화 확산 프로그램의 지속적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 힘들어하는 가족, 친구, 지인 등에게 안부를 전하는 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리도록 하는 복지부의 ‘괜찮니? 캠페인’은 좋은 예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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