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인터뷰] 태영호 "영화 태백산맥 본뒤 체제 의구심.. 진실한 삶 찾아 탈북"

김청중 2017. 1. 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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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1990년대 말 한국 영화 ‘태백산맥’(1994년 개봉)을 본 뒤 북한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후퇴하기에 앞서 주민을 학살하자 지식인 김범우(안성기 분)는 전남 보성군당위원장인 염상진(김명곤 분)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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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땅 첫발 디딜때 가슴 뭉클.. 친척·동료들에 미안하고 안타까워 / "한국의 촛불시위.. 국민의 민주화 의식이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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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1990년대 말 한국 영화 ‘태백산맥’(1994년 개봉)을 본 뒤 북한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파 진영 일각에서 좌파 문예작품으로 낙인찍은 ‘태백산맥’이 엘리트 북한 외교관의 탈북을 이끄는 동인(動因)이었다니. 좌니, 우니 하는 말이 인간의 운명 앞에 얼마나 허명(虛名)인가.

태 전 공사는 19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북한 엘리트층의 동요와 김정은(노동당 위원장) 체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확신에 찬 어조로 발언을 이어갔다. 외교관 출신 특유의 논리와 달변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하다가도 본인의 탈북으로 인해 일가 친척과 동료가 겪을 고초에 대해선 인간적인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의 보험회사가 영국에서 저질렀던 보험사기의 내막에 대해서도 “내가 구체적으로 밝히면 결국은 모두 나와 일했던 북한 동료, 영국 동료인데 그들이 다친다”며 말을 아꼈다. 다음은 일문일답.

-탈북민들은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감회가 다들 새롭다고 하더라. 주민증 나오고 휴대전화 개통했나.

“당연하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탈북 동기와 김정은(노동당 위원장) 체제의 앞날, 북한의 핵 위협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재문 기자
-느낌은 어땠나.

“나는 주민증과 휴대전화 나왔을 때보다는 대한민국 땅에 첫발을 디딜 때 느낌이 가장 강렬하다.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비행장에 서울로 가는 터미널과 평양으로 가는 터미널이 붙어 있다. 고려민항이 평양으로 가는 시간과 한국 비행기가 서울로 가는 시간도 비슷하다. (평양에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대기하다가) 한국 비행기를 보면서 ‘언제 나라가 통일돼서 나도 한번 서울에 가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내가 그리던 한국땅에 첫발을 딛는 순간에 제일 감정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언제 탈북을 결심했나.

“북한체제 강화를 위해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해오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살아왔다. (탈북 후)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거짓 삶이 아니라 진실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런 삶(거짓 삶)을 느낀 시점은 상당히 오래됐다. 북한에 있을 때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잘 몰랐다. 1990년대 해외에 나와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사상적 변화가 있었다.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매체나 책을 보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알기 시작했다. 1997년인가 1998년 덴마크에 있을 때 한국 영화를 집사람과 처음 봤다. 북한에서는 저희 가문이나 집사람 가문이나 순수 빨갱이 집안이다. 안성기씨인가가 빨치산대장에게 “당신들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하고 영화가 끝난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점이다. 당시도 북한 엘리트층에서 상당히 동요가 있을 때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은 조정래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후퇴하기에 앞서 주민을 학살하자 지식인 김범우(안성기 분)는 전남 보성군당위원장인 염상진(김명곤 분)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실패했소. 아주 철저히 말이요.…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고, 사람들의 증오에 토대하는 한 그 어떤 사상도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황장엽 비서도 그때 왔다.

“그렇다. (영화를 본 후) 그때부터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옳으냐, 아니냐’하는. 의문이 생기니 그쪽으로 책을 읽게 됐다. 진정한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나뿐만 아니라 북한 외교관 정도의 식자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진정한 공산주의 이론과 김일성에게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주체사상과 세습정치의 허구성을 비교하게 된다.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체제에 동의할 수 없는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있는 위치에서 북한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 북한인권 상황 등을 어떻게 개선할지 시도와 노력을 나름대로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 당장 이야기하긴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하나씩 어떤 일을 했는가 말하려고 (한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북한 붕괴를 이야기했다. 김정은 체제의 붕괴(지도력만의 교체)를 의미하나, 아니면 북한체제 자체의 붕괴를 의미하나.

“북한은 모든 권력기관과 무력이 분권화돼 김정은에게 종속된 체제다. 이는 김정은 유일 독재체제를 떠받치는 데는 장점이나 일단 김정은이라는 우두머리가 없어진 뒤에는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지휘체계다. (김정은이 사라지면) 권력세력 간에 엄청난 충돌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 북한은 저절로 무너져 앉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붕괴를 의미하는 건가.

“그렇다. (북한 주민의) 민중봉기나 통일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물론 언젠가는 통일이 오겠지만 통일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느냐, 아니면 달려오느냐는 (북한) 외부에서, 특히 한국 국민과 정치인분들이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70년간 북한의 체제 유지 비결을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와 외부정보 차단 두 가지로 보나.

“그렇다. 북한을 붕괴시키려면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찔러야 한다.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꼽는다면 김정은 우상화 작업, 즉 김정은을 신처럼 만드는 작업을 허물어야 한다. 외부정보 유입을 통해서 김씨 가문의 허구성을 알려서 주민이 분노하게 해야 한다. (한류 문화 콘텐츠를 접하는) 북한 주민에게 ‘남한이 잘사네’하는 정도 생각에서 ‘우리도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점을 갖게 해야 한다. 북한 대학생이라고 왜 한국 대학생처럼 저항의식이 없겠는가. 한국 대학생, 국민도 미국이나 일본의 민주화 시스템을 보면서 비전이 생겼다. 북한 대학생, 엘리트에게도 이런 비전을 제시해 한국과 통일하는 게 잘사는 길이고, 김정은 체제를 들어내는 일이 인간의 고유한 속성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어느 때인가 그들도 들고 일어날 것이다. 세상에서 저항정신이 제일 강한 게 한민족이다. 중국이라는 대중화 문화권 곁에서 한반도라는 조그만 땅덩이에서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유지해온 것은 어느 민족보다 우리 배달민족의 저항정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부에서 (저항의식을 갖도록) 계속 두드려주고 (정보를) 유입시켜 줘야 한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절대 포기 안 한다.”

-그러면 왜 평화협정을 주장하나.

“북한의 대남전략 중 하나는 미군의 증원 차단이다. 평화협정을 맺으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법률적 명분이 없어진다. 북한은 그것을 노린다.”

-한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효과가 있나.

“효과가 없으면 내가 한국에 왔겠나.”

-무슨 효과인가.

“효과가 없다는 사람들은 ‘북한 장마당이 제대로 돌아가고, 평양에서 계속 집도 짓고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대북제재의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숫자나 장마당 같은 경제적 현상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라.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읽어라. 제재가 강해지면 당과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의 노력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능력과 (생존)방식은 더욱 진화된다. 북한은 수령 신격화에 기초해 수령과 당이 다 돌봐준다는 개념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내가 그들(수령, 당 국가)과 상관없는 생존방식을 만들어 나가면 정권과 주민이 분리되는 분화과정이 심화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소식이나 촛불집회를 어떻게 봤는지.

“한국의 민주화 수준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 내가 덴마크, 스웨덴, 영국처럼 민주화와 복지가 제일 잘돼 있는 나라에서 근무하면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어떻게 가동되는지 주의 깊게 들여다봤다. 국회 대정부 질의 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의원들이 큰소리치는 것을 봤는데 서방에서도 이런 거 거의 없다. ‘아, 과연 대한민국이 민주화됐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촛불집회도 국민의 불만 표시를 다른 데(나라)서 볼 수 없는 (형태로),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문화축제 비슷하게 하고, 끝난 다음에 청소까지 하고…. 국민의 민주화 의식이 상당히 높다. 한국의 100만 촛불시위를 보면 한국이 전 세계 민주화운동의 선두주자로서 새로운 시민시대를 열지 않을까 하는, 아주 긍정적 생각이 든다.” 

대담=외교안보부 김청중 부장·김민서 차장
정리=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영상 =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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