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른 길이 있다' 서예지, "연탄가스 논란보다는..'죽음보다 강한 '희망'을 공유했으면"

정다훈 기자 2017. 1. 2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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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내몰려, 감당할 수 없는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누군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죽음’ 외에는 도저히 이 아픔을 이겨낼 ‘다른 길’이 없었던 걸까. 오로지 ‘죽음’이 희망이었던 아이 정원이(서예지 분)를 만났다.

19일 개봉한 영화 ‘다른 길이 있다’(감독 조창호·제작 영화사 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기로 한 두 남녀의 자살여행을 그린 작품. 이벤트 도우미로 일하며 전신마비인 엄마를 돌보는 정원은 오랜 시간 아버지로부터 성(性)적 학대를 받아 온 인물이다. 정원이의 삶을 더욱 옥죄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구질구질한 삶의 무게보다 엄마에 대한 ‘죄책감’ 그 자체이다.

배우 서예지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영화를 본 관객들은 정원이와 아빠의 관계를 두고 또 다른 전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예지는 “제가 살아본 정원이는...물음표(?)였어요.”라고 말했다.

“정원이 가족이 이러 이러했을 것이고, 정원이가 그 전에 이랬던 아이일 것이다란 그 어떤 이야기도 감독님과 하지 않았어요. 전혀 의심 하지 않았어요. 아빠도 엄마도, 정원이도, 그리고 연탄도 죽음도....이 고통을 연기로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짜 경험해서 서예지가 맞닥뜨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거든요. ”

그렇기에 서예지는 자신이 연기한 정원의 마지막이 “감히 희망이라고 표현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원이는 아이디 ‘검은새’ 수완이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정원이는 죽음이 희망이었던 아이에요. 다시 태어났을 때 처음 마주한 수완이의 눈물이 많은 걸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모르는 사람을 고통 속에서 만났는데, 그 때 상대가 흘리는 눈물은 말을 안해도 알 수 있어요. 정원이에겐 처음 느껴보는 눈물인거죠. 마주보면서 보여준 눈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꼭 우리 힘내서 살아보자’라는 말처럼 다가오니까요.”

‘다른 길이 있다’는 2014년 촬영 이후 개봉이 늦어지며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개봉했지만, 개봉하자마자 ‘연탄가스’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극중 정원이 실제 연탄가스를 흡인 한 장면을 두고, 감독이 배우를 ‘살인미수’에 가까운 위험에 빠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커진 것. 19일 영화 제작사 및 홍보사인 영화사몸,무브먼트.MOVement 측은 “조창호 감독의 강요에 의한 횡포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며 촬영 현장에서 감독과 배우 간에 수평선상의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었고 동의 없이 촬영된 장면은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조창호 감독은 “대부분의 연기가 연탄 가스가 아니었으나 미량의 연탄 가스가 흘러 나왔음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당연히 제가 질타를 받아 마땅한 부분이며 배우의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크게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서예지 배우에게 공식적인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 밝혔다.

이번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기는 힘들겠지만, 직접 만나본 서예지의 영화에 대한 애정도의 크기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이 마음이 다른 인터뷰 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적인 부분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연탄가스 장면이 끝난 후 감독님이 ‘괜찮아? 미안하다’ 며 물어보시더라. 물론 힘들었지만, 실제로 마셨으니까 정원의 고통과 내면에 대한 표현이 나오지 않았나? 란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저 역시 정원의 마음을 생각하고 빨리 들이마셨어요. 정원인 이 순간을 기다려왔으니까요. 정원이는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며 살아왔던 아이인데, 내가 연기하면서 괴로워한다는 게 더 미안해질 정도로요. ”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든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서예지 역시 많은 걸 배우고 경험했다고 한다. 편집실과 시사회를 쫓아다니며 벌써 여덟 번이나 챙겨 본 그는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면서 “아홉번 째 관람은 극장에서 직접 표를 끊고 관객으로 보려구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처음 영화의 편집본을 봤을 때는 어두운 영화란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니 느낌이 달라졌어요. 제가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구요? 그것보다 감독님이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편집하신 부분들이 있었어요. 잘라낸 부분은 없는데, 밝아지는 느낌이 달라요. 볼 때마다 감독님 한테 ‘또 편집 하셨어요?’ 물어보면, ‘어떻게 알았어?’라고 답하시던걸요. 이게 사실 희망에 관한 영화예요. 그 느낌을 잘 살려놓으신 것 같아요.”

배우 서예지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배우 서예지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배우 서예지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저희 영화를 통해서 ‘죽음보다 강한 ’희망‘, 그리고 서로 아픔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서예지는 “‘다른 길이 있다‘ 속 배우 보다는 조창호 감독의 마음을 봐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영화는 <피터팬의 공식>, <폭풍전야>에 이어 조창호 감독이 7년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죽음‘을 향해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는 두 남녀의 고통 모두를 생생하게 짊어진 이가 바로 감독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단다.

“정원과 수완, 두 인물을 죽음으로 이끈 ‘희망’을 정말 고통 속에서 아름답게 그려내셨어요. 많은 이들이 이 점을 봐주셨으면 해요.”

한편 2013년 3월 SKT의 CF로 연예계에 데뷔한 서예지는 같은 해 5월 정우성이 메가폰을 잡은 삼성 갤럭시S4 브랜드 필름 ‘나와 S4 이야기-4랑’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정우성의 여자’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빅뱅 지드래곤 GD의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무비 속 그녀. tvN 드라마 ‘슈퍼대디 열’과 tvN 시트콤 ‘감자별 2013QR3’, JTBC ‘라스트’, KBS 드라마 ‘무림학교’ 등을 거쳐 현재 KBS2 월화드라마 ‘화랑’ 에서 숙명공주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김재욱과 서예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다. 낯을 가리는 성격상 쉽게 상대배우와 친해지기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그는 극중 설정상 “재욱 오빠와 가까워지길 원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영화 속 수완과 정원이는 원래 모르는 사이잖아요. 그대로 어색한 감정이 표현됐어야 했기 때문에 촬영 중에도 실제로 그렇게 하길 원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는 아예 저를 몰랐으면 해요. 가볍게 인사하고, 촬영 내내 전혀 안 친해진 채 그렇게 촬영했어요. 오빠가 ‘너랑 정말 친해지기 어려웠다’란 말도 했는데, 제 의도는 아니었어요. 재욱 오빠도 알게 된지 3년이 됐으니까 이제 조금씩 친구처럼 다가가는 게 있어요. ”

실제로 인물의 내면에 이입하는 걸 원했던 서예지는 엄마로 등장하는 배우 강애심과도 거리를 두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엄마랑 깊은 대화를 하는 친구가 아닌데, 엄마 역 배우와 인간적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영화 속에서 모성애가 느껴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

서예지의 말투는 조용 조용하면서 작은 파동이 일렁거렸다. “많은 이들이 제 목소리가 준엄하다고 느끼나봐요. 나는 즐겁게 말 하고 싶은데. 집중모드로 느껴지나봐요. ”

서예지와 배우 이순재, 김미경과의 인연은 유독 깊다. 특히 ‘감자별 2013QR3’에서부터 인연을 이어온 배우 이순재씨와는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 발간 된 이순재 연기 인생 60주년 기념서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속에는 쟁쟁한 배우와 연출들이 이순재에게 보내는 글 챕터와 나란히 서예지의 글이 담겨 있다. 그는 ‘오래 오래...끊임없는 친구 같은 나의 할아버지 이순재 선생님’이라고 적었다.

“그 책 보셨어요? 60주년 기념식날도 가고 싶었는데, 일정이 겹쳐서 참석하지 못했어요. 유독 이순재 선생님이랑 인연이 깊어요. 선생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많이 들었던 게 컸나 봐요. 선생님께서 직접 글을 써달라고 의뢰를 주셨어요. 선생님이랑 한 달에 2번 정도 자주 만나요. 자주 통화하고 선생님이 출연하신 ‘시련’, ‘사랑별곡’, 세일즈맨의 죽음‘ 등 연극도 빠짐없이 보러갔어요. 최근엔 제 친언니 주례도 해주셨어요. 감사한 분이죠.”

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5년 차 배우로 한 걸음 한 걸음 힘 있게 걸어나가는 배우. 그녀에게서 문득 ‘감독의 길’에 대한 의지가 보였다. ‘감독을 꿈꾸고 있냐’고 묻자, 대뜸 “제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어요”란 말이 돌아왔다.

“아직 20대 후반이긴 하지만, 제가 살아왔던 길을 글로 쓰고 싶어요. 스펙타클한 일들이 많았거든요. 연출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많이 꿈꾸는 것 같아요. 나중에 가서 능력이 생긴다면,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음. 배우 중에는 처음으로 재욱 오빠에게 도와달라고까진 이야기한 상태입니다. 작품의 내용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더 이야기할게요.”

“활발한 성격의 친구들이 다가오면 오히려 쉽게 못 친해지고, 나이 있으신 어른들과 친해지기 쉽다”고 하는가하면, 스스로를 “재미 없는 성격이다”고 말하던 서예지의 인터뷰는 뻔하지 않아 흥미로웠다.

어디에서나 변함없이 ‘갈대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던 그는 변화무쌍하게 갈대처럼 흔들리지만 뿌리가 깊어 절대 안 뽑히는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끝까지 배우를 하고 싶고 제가 선택한 이 길을 끝까지 가야겠다고 다짐해요. 어떤 하나의 이미지만이 아닌 매 작품마다 이질감 없이 흔들리며 변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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