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뜨거웠던 KBO 기록강습회

입력 2017. 1. 22. 15:57 수정 2017. 1. 2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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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최익래 인턴기자] “이 두 장의 종이만 있으면 3시간이 넘는 야구 경기의 모든 플레이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어때요? 매력적이지 않나요?”

KBO(한국야구위원회) 기록위원회가 주최한 2017 서울 기록강습회(이하 강습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기록위원회는 지난 19일(목)부터 21일(토)까지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수강자 300명을 대상으로 기록의 A부터 Z까지 낱낱이 강의했다.

작년부터는 서울까지 올라오기 힘든 지방 팬들을 위해 직접 내려가 강습회를 펼쳤다. 지난해 부산에 이어 올해 광주까지 모두 성황리에 마감했다. 올해 서울 강습회 신청은 한 시간 반 만에 마감됐다. 웬만한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예매 열기다. 그 뜨거운 현장을 담아봤다.

#‘스피치 강의까지 수강’ 효과적 전달을 위한 노력

기록위원회가 강습회를 주최한 건 프로 원년인 1982년부터다. 원년에 두 차례 강습회를 연 뒤 한 번씩 진행했으니 올해가 37번째다. 현재 KBO에서 1군과 퓨처스리그 기록을 담당하는 이들 대부분이 강습회에서 길러낸 인재다.

2002년 기록위원회에 입사한 뒤 2003년부터 올해까지 15년간 강습회에 참여한 진철훈 기록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진 기록위원은 “강습회에 대한 인기가 뜨거워질수록 부담이 된다. 하지만 그만큼 준비를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기록위원들은 지난해 사무실로 스피치 강사를 초빙해 약 두 달 여간 꾸준히 교육을 받았다. 기록에 대한 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낱낱이 꿰고 있지만 그걸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건 아예 다른 문제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KBO 최초로 2500경기 기록을 맡아 금자탑을 세운 김태선 기록위원은 “사실 스피치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내 차례가 되면 곧바로 기록 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기-승-전-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젊은 참가자가 많은 만큼 그들과의 소통에도 신경을 쓴다”고 강조했다.

김태선 기록위원은 충암고등학교 시절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김성근 감독과의 ‘썰’을 풀 때면 장내가 폭소로 뒤덮였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기록을 배우고자 참여한 학생들은 기본적인 기록 표기법부터 기록위원들도 어려워하는 자책점까지 3일에 걸쳐 배웠다.

스무 명 이상의 기록원들이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 곳곳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수강생들이 기록원 앞에 줄을 잔뜩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 덕에 기록원들은 정작 쉬는 시간임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진철훈 기록위원은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수강자들도 많다. 이건 그만큼 야구팬들의 수준이 정말 높다는 의미인 것 같다. 오히려 질문해주는 게 더 고맙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진 기록위원은 “배지현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도 우리 강습회 수강생 출신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증을 받았는데 SNS에 올려주는 덕에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력분석원이 꿈이에요!” 최연소 참가자의 희망가

이번 강습회 최고령 참가자는 1957년생으로 올해 60세를 맞은 남성이다. 반면 최연소 참가자는 2004년생 장민제(13) 군이다. 오는 3월 중학교에 진한다. 아직 앳된 얼굴의 장민제 군은 “야구가 좋아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독학으로 기록을 배웠다”며 열정을 과시했다.

블로그 등에서 기록 정보를 얻어 자체 기록을 했던 장 군. 하지만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강습회를 신청했다. 그는 “운동에는 소질이 없지만 수학을 곧잘 한다. 전력분석원이 꿈이다. 이 강습회도 꿈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막상 들어보니까 어렵더라. 확실히 체계적으로 배우는 게 다르긴 다른 것 같다. 수강하길 잘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부모님이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환경에도 장 군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다녔다. 삼성 팬인 할아버지 때문에 삼성-롯데의 경기를 보다가 홈런을 뻥뻥 쳐대는 이대호를 보고 롯데에 빠졌다고 한다. 이번 강습회에도 할아버지와 함께 참여했다.

기록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웬만한 성인들보다 눈이 빛나는 장 군이지만 “이대호가 과연 롯데에 돌아올까요? 요즘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에요”라고 되물을 때면 영락없는 13세 소년이었다.

장 군이 생각하는 야구의 매력은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장 군은 2015년 프리미어12 4강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야구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기록위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진철훈 기록위원은 “경기 흐름이 대번에 바뀌는 게 야구의 가장 큰 묘미인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두 장의 종이에 담는 기록의 매력 아닐까?”라고 말했다.

어쩌면, 강습회에서 수강생들과 기록위원들이 주고받은 것은 단순히 기록 이야기가 아닌 야구에 대한 열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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