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실전' WBC 전사들 '2006 이승엽처럼'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2017. 1. 22. 15: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3년 WBC 대표팀 시절의 이승엽. 이석우 기자

김인식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은 겨우내 선수 구성을 하며 KBO리그 각 구단에 선수 차출에 적극 협조해주기를 바랐다. 속내를 살펴보면 선수 차출에 소극적인 팀도 있다는 의미로도 들렸다.

실제로 대표팀에 주력선수를 보내는 각 구단 관계자의 심리는 복잡하다. 특히 WBC처럼 시즌 개막 전, 열리는 대회라면 여러 계산이 따르곤 한다. 해당 선수가 대표팀 일정에 따라 페이스를 조기에 끌어올렸다가 정작 정규시즌 들어서는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든다.

이번 대표팀에 무려 7명을 합류시키는 두산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2연패를 한 데다 올해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라 있는 두산이 여러 선수를 대표팀에 보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 따른 영향도 어느 정도 받지 않을까 하는 시선이 곁들여지고 있다.

WBC 출전이 정규시즌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거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탄력을 받는 선수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롤모델 ’이라면 2006년 1회 WBC의 이승엽(삼성)이 우선 거론된다.

이승엽은 가볍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2006년 WBC를 맞았다.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에서 2년을 뛰고 요미우리로 팀을 옮겼다. 최고 인기 팀으로 둥지를 옮기는 것이지만 1년짜리 계약으로 기회이면서 모험이기도 했다.

이승엽은 이적을 결정하고 맞은 WBC에서 대활약을 했다. 한국야구 전설의 한 페이지가 된 1라운드 일본전 역전 투런홈런을 시작으로 홈런 5개를 터뜨리며 대회 홈런왕까지 올랐다. 이어 요미우리에서 맞은 첫 시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타율 0.323에 41홈런 108타점을 올리며 요미우리 4번타자로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또 그 해 말에는 요미우리와 4년 총액 30억엔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터뜨렸다. 어쩌면 WBC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은 2006년 이승엽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싶을지 모른다.

2005년 지바 롯데 순회코치로 이승엽을 전담 지도했던 김성근 한화 감독은, 당시 이승엽에 대해 ‘기술적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에서 플래툰 시스템 속에 2년을 보내며 치열한 생존 경쟁을 겪었고, 두번째 시즌에는 홈런을 30개 쳐내며 시련을 멋지게 극복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뿐 아니라 기술적으로 성장했다.

이같은 치열함을 통해 이승엽은 더욱 단단해졌다. 겨울 훈련을 더욱 충실히 했다. 자기 관리도 한층 더 철저해졌다. 대구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중심으로 한 체력훈련은 물론, 식단조절까지 하며 겨울을 보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낸 이승엽은 3월의 WBC에서 빛날 수 있었고, 그 여세를 개막 초반까지 몰고 갔다.

WBC 출전 선수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체력 문제다. 3월 초 페이스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여파로 정규시즌에서는 내림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WBC에서 활약한 뒤 정규시즌 들어 스윙이 무뎌진 선수가 종종 있었다.

그 해 이승엽은 연이은 이벤트를 이어갈 만큼 정신적·체력적 준비가 잘 돼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포지션이 1루수였던 것도 조금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유격수 또는 2루수, 포수 등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수비에서 체력소모가 적기 때문이다. WBC 출전 선수라면, 참고 삼아서라도 이승엽의 2006년 이력을 살짝 펼쳐볼 만하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