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침공 노리는 '퓨처스리그 지배자' 한동민

양형석 2017. 1. 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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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2년 연속 퓨처스리그 홈런왕 차지한 '한발장' 혹은 '동미니칸'

[오마이뉴스양형석 기자]

야구 선수들에게 등 번호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OB 베어스의 원년우승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은 21번에서 '불사조' 박철순의 투혼을 떠올리고 8~90년대를 지배했던 해태 타이거즈의 왕조시대가 생생한 팬들에게 선동열의 18번과 이종범의 7번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IMF 시절 많은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61번은 말할 것도 없다.

현역 시절 통산 300홈런-267도루를 기록했던 KBO리그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 '리틀 쿠바' 박재홍의 등 번호는 62번이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박재홍은 고향 팀 KIA 타이거즈를 잠시 거쳐 SK와이번스에서 은퇴했다. 사실 특정팀에서 10년 이상 활약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팀에서도 '레전드' 대우를 받지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물론 KBO리그에 정식으로 명예의 전당이 생겨난다면 분명히 이름을 올리겠지만.)

하지만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박재홍이 남긴 족적은 남다르다. 현대 시절 KBO리그 최초의 30-30시대를 열었고 인천 프랜차이즈 최초의 우승도 박재홍이 뛰던 1998년에 달성했다. SK에서도 뛰어난 활약으로 두 번의 우승을 함께 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박재홍의 은퇴와 함께 비어있던 62번을 덥석 챙겨간 선수가 있다. 이 사건(?) 때문에 인천의 야구 팬들로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발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SK의 거포 기대주 한동민이다.

'레전드' 박재홍의 은퇴와 함께 등장한 거포 유망주
 한동민은 2013년 유독 기념일마다 홈런을 때리며 유명세를 탔다.
ⓒ SK 와이번스
부산에서 태어난 한동민은 부산, 경남 지역의 야구 명문 경남고를 나왔다. 당시 경남고에는 한동민의 1년 선배로 청소년 대표 이상화(kt 위즈)와 이재곤(롯데 자이언츠)이 있었고, 동기로는 장성우와 하준호(이상 kt)가 있었다. 한동민은 쟁쟁한 동료들과 함께 2년 연속 청룡기 우승을 차지하며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지만 정작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상위 지명을 받은 동료들과 달리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경성대로 진학한 한동민은 대학 시절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했고 2011년엔 야구월드컵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확실한 자기 포지션이 없고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 속에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9라운드(전체 85순위)로 SK에 지명됐다. SK가 10라운드로 지명한 대구고 외야수 김호은이 대학진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SK에 입단한 선수 중에는 한동민이 최하위 지명이었던 셈이다.

한동민은 마무리 캠프는 물론 스프링캠프조차 참가하지 못했지만 2012년 5월 1군의 부름을 받고 5월 3일 KIA전에서 대타로 출전하며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어깨 통증으로 잠시 팀을 이탈했던 한동민은 7월에 다시 1군에 올라와 6경기에서 2안타를 때리며 데뷔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한동민은 프로 2년 차 시즌이었던 2013년 62번을 달고 자신의 이름을 야구 팬들에게 깊이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좌익수와 우익수, 1루수로 번갈아 출전한 한동민은 주로 4번 타자와 5번 타자에 배치되며 99경기에 출전해 타율. 263 14홈런 52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한동민은 그해 공휴일이나 국경일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여왔는데 어린이날 역전 만루홈런을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제헌절, 개천절에 각각 홈런포를을 쏘아 올렸다. 심지어 자신이 등번호를 가져 간 박재홍의 은퇴식이 열린날에도 여지없이 홈런을 기록했다. (물론 한동민이 모든 기념일에 홈런을 친 것은 아니다.)

2013년 SK의 차세대 중심타자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지만 한동민은 2014년 더 나아진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저런 부상으로 67경기 출전에 그친 한동민은 타율 .252 3홈런24타점을 기록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한동민은 2014 시즌이 끝나고 병역의무를 해결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했다.

2년 연속 퓨처스리그 홈런왕, SK에서 드문 좌타 거포 유형
 SK에는 한동민 같은 좌타 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매우 드물다.
ⓒ SK 와이번스
과거에는 상무가 2군 선수들이나 드나들던 곳이었지만 최근엔 팀에서 애지중지하는 특급 유망주이나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1군의 주전급 선수도 대거 들어오곤 한다. 한동민이 입대한 해에도 '무등 메시' 김선빈(KIA)이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멀티 플레이어 이원석 등이 상무 유니폼을 입었다(심지어 상무의 라이벌팀 경찰 야구단에는 롯데의 '월드 스타' 전준우와 KIA의 올스타 2루수 안치홍도 있었다).

하지만 한동민은 쟁쟁한 1군의 스타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2015년 퓨처스리그에서 유일하게 20개 이상의 홈런(21개)을 때려내며 홈런왕 타이틀을 따낸 한동민은 2016년에도 22개의 홈런으로 2년 연속 퓨처스리그 홈런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타율 역시 .365(4위)로 매우 높았고 OPS(출루율+장타율)는 무려 1.195에 달했다. 군 생활 2년 동안 퓨처스리그를 지배했다고 표현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한동민은 9월 21일 전역 후 곧바로 1군에 등록됐지만, 전역 직후에 보여준 플레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1군에서 6경기에 출전한 한동민은 18타수 5안타 3득점 1도루(타율 .278)를 기록했지만 기대했던 장타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SK는 KIA와의 치열한 순위싸움 끝에 6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가을야구 막차 티켓을 놓쳤고 한동민의 짧았던 1군 나들이로 그렇게 마무리됐다.

어차피 한동민의 진짜 승부는 2017년이다. 물론 SK 외야는 한동민이 아무리 퓨처스리그를 초토화했다고 해서 쉽게 뚫을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박재상, 이명기, 김강민, 조동화, 정의윤, 김재현 등으로 구성된 SK의 외야진은 양과 질 모두 10개 구단 정상급이다. 1루에도 오랜 기간 붙박이 1루수로 활약하고 있는 베테랑 박정권과 작년 76경기에서 19홈런을 때려 낸 거포 최승준이 버티고 있어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동민은 SK 선수단 전체에서 흔치 않은 좌타 거포형 선수다. 이 장점을 잘 특화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트레이 힐만 감독의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 한동민의 별명 '한발장'은 코믹하긴 해도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닉네임은 아니다. 사실 한동민에게는 한발장 외에도 '동미니칸(역시 박재홍과 묘한 연관관계가 있다)'이라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 '리틀 쿠바'의 등 번호를 물려받은 한동민이 팬들에게 어떤 별명으로 불리게 될지는 2017시즌 활약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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