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부리는 것이 아니고 버리는 것입니다"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입력 2017. 1. 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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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타계 7주기 앞두고 저서와 관련 서적 다시 주목​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남긴 글이다. 그가 남긴 글은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빛바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그는 2010년 봄날에 제자들에게 “말빚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모든 책은 더 이상 출간치 말라”는 유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법정 스님은 베스트셀러를 포함해 많은 책을 남겼다. 출판사들은 스님의 유훈을 받들어 법정 스님이 집필한 책을 더는 인쇄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고서점에서는 초판인 듯한 오래된 《무소유》를 20만원에 팔겠다는 건이 올라 있기도 하다. 다른 책들도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님의 책이 희귀본이 되는 동안 스님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생전의 모습을 추억하며 스님이 남긴 말과 글을 엮은 ‘편집본’ 같은 책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왔다. 지인 중 몇몇은 자신이 보고 들은 대로 스님을 추억하며 스님의 말과 글을 옮겨 쓰기도 했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7년이 흘렀다. 7주기를 앞두고 새해를 열면서 법정 스님의 손글씨와 그림을 표지에 내건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는 속가에서도, 불가에서도 법정 스님의 조카뻘 되는 인연으로 인해 법정 스님을 가까이에서 지켰던 현장 스님이 엮은 산문집이다. “말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법정 스님의 유훈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책 본문에는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을 그대로 싣기도 했다.

엮은이가 머리말을 쓰고, 책 말미에 이해인 수녀가 ‘맑고 향기롭게 재단’(법정 스님이 생전 설립한 재단)에 보낸 추모사를 싣는 것으로 ‘저자’의 빈자리를 채웠다. 또 법정 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발자취, 타 종교와 두루 교류했던 이야기를 발굴 기사처럼 다루고, 법정 스님이 지인과 도반들에게 보낸 편지와 선시(禪詩)를 손글씨와 함께 나란히 소개했다.

법정스님과 법정 스님이 생전에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손 편지 © 연합뉴스·열림원 제공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강론 전문 실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에는 그동안 일부만 알려져 있던 법정 스님의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강론 전문이 실려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명동성당 강론은 명동성당 측에서 녹취를 하지 않아 그냥 묻혀 버릴 수도 있었다. 다행히 이해인 수녀가 따로 녹음을 한 CD를 보관했던 덕분에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강론의 일부가 공개되기는 했지만, 전문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욕심은 부리는 것이 아니고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린 수행자는 후세에까지 영원히 빛을 발합니다. 제가 이렇게 가난을 강조하는 것은 궁상스럽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넘치는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제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삶을 옛 스승들의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자는 뜻입니다.”

이해인 수녀와 주고받은 편지도 실었는데, 서로의 종교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 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법정 글씨, 현장 엮음 책읽는섬 펴냄 192쪽 1만2800원

“우리가 불행한 것은 따뜻한 가슴을 잃어버렸기 때문”

법정 스님은 생전에 붓으로 글씨 쓰는 것을 즐겼다. 이를 스스로 ‘붓장난’ ‘먹장난’이라고 불렀다. 지인과 도반(道伴)들에게 편지나 연하장을 보낼 때면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글을 보내곤 했다.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수도하는 산승(山僧)에게 지인들과 함께한 시간 동안 쌓인 정은 끝까지 버리지 못한 마지막 것이었으며, 그들의 안부를 묻는 ‘붓장난’은 유일한 낙이었으리라.

“가끔 붓장난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겨 써 보기도 했고, 친지들에게 궁금한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멀리서 고요히 침묵하고 있는 산의 자태를 담아 보기도 했고, 내 앞에 놓인 찻잔에서 풍겨 나오는 차향을 그려 보기도 했습니다. 원고지에 반듯반듯 금 그어진 많은 칸들을 하나하나 채워 가는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폐암으로 투병하던 중 2010년 3월11일 병원에서 퇴원해 자신이 회주(會主)를 맡아왔던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입적하기 전날 밤 그는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말했다. 평소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 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법정 스님은 가는 걸음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남은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 주었다.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청빈의 덕이 자랍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경제적인 결핍 때문이 아닙니다. 따뜻한 가슴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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