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선경기+큰 절+헹가래..김병수 감독의 특별한 고별식

김현기 입력 2017. 1. 22. 09: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병수 서울 이랜드 신임 감독이 21일 경남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영남대와 연습 경기 뒤 영남대 선수들에게 큰 절을 받고 있다. 출처 | 서울 이랜드 페이스북

[남해=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제자들의 큰 절을 본 스승은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기 위해 경기장 밖을 잠시 빠져나갔다.

지난 21일 오후 경남 남해에 위치한 남해 스포츠파크 주경기장.프로와 대학팀이 겨울 전훈지로 자주 찾는 이 곳에선 이날도 K리그 챌린지 서울 이랜드와 대학 강호 영남대의 연습 경기가 펼쳐졌다. 전훈 시즌에 열리는 흔한 연습 경기처럼 비춰질 수 있으나 사연을 아는 이들에겐 어느 때보다 특별한 대결이었다. 김병수(47)란 지도자가 두 팀 격돌 중심에 서 있었다. 서울 이랜드 감독으로 이날 벤치에 앉은 그는 지난 9일 부임하기 전까지 대학 강호 영남대를 9년간 지휘했다. 이날 경기는 갑작스럽게 영남대를 떠난 김 감독이 제자와 학부모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고, 또 제자들의 축하를 받는 무대였다. 제자들의 변함 없는 실력을 확인하는 장이기도 했다.

◇‘형님 김병수호’와 ‘원조 김병수호’

“청·백전 보는 것 같네.” 권성진 서울 이랜드 사무국장의 말처럼 두 팀은 마치 한 팀을 둘로 쪼갠 듯 거의 비슷한 스타일의 축구로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하프라인을 중심으로 좌·우 10m씩 20m 남짓 되는 공간에 필드플레이어 20명이 밀집되어 서로를 무너트리기 위한 오밀조밀한 축구가 이어진 것이다. 개인 기량이나 볼을 다루는 센스는 ‘구력’을 갖춘 서울 이랜드 선수들이 나았으나 수비수들부터 빌드업(공격 작업)해서 적진을 무너트리는 조직력과 패스워크는 ‘원조 김병수호’인 영남대가 오히려 우위였다. 전반을 팽팽한 접전 속에 0-0으로 마친 김 감독은 “영남대 빌드업 굉장히 잘 하지? 못 막겠지?”라고 서울 이랜드 선수들에게 물은 뒤 “볼을 중구난방으로 돌리니까 어려운 거야. 좌·우로 휘젓는 ‘스윙 게임’을 하기 위해선 빠른 패스가 필요하다. 경기 스타일을 빨리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후반 들어 테스트 멤버 3명 등 11명을 모두 바꾼 서울 이랜드는 더욱 고전했다. 결국 후반 중반 아우들에게 한 골을 내주고 올 겨울 전훈 2연승 끝에 처음으로 쓴 맛을 봤다.

김병수 서울 이랜드 신임 감독이 21일 경남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영남대와 연습 경기 뒤 영남대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남해 | 김현기기자

◇“갈 길이 멀다”…‘대학 명장’ 닉네임은 잊었다

김 감독은 영남대를 맡으면서 대학 축구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울리는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 본선 진출 수훈갑이 됐던 그는 부상으로 프로에선 각광받지 못했으나 2008년 영남대 감독을 부임한 뒤 지도자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영남대는 그의 지도 아래 2010년 춘·추계연맹전을 모두 우승했고, 2013년엔 U리그 왕중왕전을 제패했다. 지난해엔 전국체전 금메달 등 4개 대회 우승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김승대(옌볜) 이명주(알 아인) 임채민 신진호(이상 상주) 손준호(포항) 등 각급 대표를 지낸 수준급 선수들은 그가 만들어낸 역작이다. 그럼에도 프로와 인연이 없었던 김 감독에게 승격에 목마른 서울 이랜드가 드디어 손을 내민 것이다. 김 감독이 조련을 시작한 지 어느 덧 2주 가까이 됐다. 이날 형님들을 상대로 결승포를 넣은 김경훈은 “예상했지만 두 팀 축구가 많이 비슷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 감독에겐 갈 길이 여전히 멀다. 그는 “결국 영남대처럼 가야하는데 턱 없이 부족하다”며 “선수들이 패스하고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반응도 너무 느리다. 해야할 일이 많다”며 앞을 내다봤다.

김병수 서울 이랜드 감독(왼쪽)이 21일 경남 남해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영남대와의 연습 경기 뒤 영남대 선수들의 큰 절을 받자 눈물을 흘리자 김현준 영남대 감독대행이 다독이고 있다. 남해 | 김현기기자

◇큰 절과 헹가래, 그리고 눈물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90분 격전이 아니었다.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영남대 선수들이 치른 스승에 대한 축하 행사였다. 경기 뒤 이젠 상대팀 사령탑이 된 김 감독에게 인사하기 위해 다가선 영남대 선수들은 일제히 큰 절을 올려 고마움과 축하를 동시에 담아 보냈다. 김 감독이 와락 쏟아지는 눈물을 경기장 뒤에서 훔치고 돌아오자 제자들은 그를 헹가래치며 우승 못지 않은 기쁨을 누렸다. 김 감독은 “사실 아깐 나도 모르게 영남대를 지도하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착각이 들더라”며 “(영남대 선수들과)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제서야 이별 행사를 하게 됐다. 떠날 때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반드시 잘 해서 제자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다. 내 축구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이니까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경훈은 “감독님이 우리 학교에서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나섰다. 오늘은 경기력도 좋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며 김병수 감독 고별 경기를 맞아 더 많이 준비했음을 털어놓았다.

silva@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