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무덤관리 폐끼치기 싫어"..일본, 폐묘 확산

권성근 입력 2017. 1.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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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일본에서 최근 조상의 무덤을 처분하는 '폐묘'가 확산되고 있다. 폐묘까지는 아니더라도, 잡초가 자라 무덤을 덮어버리는 '황폐무덤', 사용자가 불분명한 '무연고 무덤' 등도 증가 추세에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폐묘를 포함해 묘를 이장한 건수는 2010년도에는 약 7만 2180건이었으나, 2015년도는 9만 1567건으로 5년 새 약 2만건이 급증했다. 최근 일본 야후뉴스가 최근 확산하고 있는 폐묘 및 황폐무덤, 무연고 무덤 등에 대해 취재·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사이타마(埼玉)현 사이타마시의 한 묘지에서 폐묘가 진행됐다. 그 과정은 간단했다. 묘비를 크레인을 이용해 제거한 후, 그 아래에 묻혀있던 유골함 항아리를 꺼내는 것이 전부다. 향후 항아리 안에 보관된 유해는 건조·분쇄시켜 바다에 뿌려졌다. 폐묘를 의뢰한 80대 남성은 "내 세대에서 무덤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무덤 관리로 자식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무연고 묘지가 되는 것도 싫어서 아예 폐묘를 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폐묘로 무덤이 빈 것을 보니 안심이 된다"라고 말했다.

폐묘 후 유골은 주로 여러 사람의 유골이 함께 보관되는 '합장묘'나 납골당으로 옮겨지기도 하고, 앞서 80대 남성의 경우처럼 분쇄 후 바다나 산에 뿌려지기도 한다. 폐묘 코디네이터인 고니시 마사미치(小西正道,38)는 "하루에 3번 폐묘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폐묘 희망자가 최근 1,2년 새 증가세가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 황폐해진 '황폐무덤'도 증가하고 있다. 구마모토(熊本)현 히토요시(人吉)시에 위치하는 한 공동묘지는 오랜세월에 걸쳐 덤불로 덮였다. 지금은 사람이 도끼로 덤불을 헤쳐야 겨우 묘비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다. 2013년 히토요시 시당국 조사에 따르면, 해당 시에 위치한 묘지에는 총 1만 5128기의 무덤이 있는데, 이 중 42.7%가 '무연고 묘지'로 드러났다. 돌보는 사람이 없는 묘지가 절반 가까이에 이른 것이다.

황폐무덤과 무연고 묘지의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미야자키(宮崎)시는 이 문제에 대한 묘안을 일찍이 마련했다. 미야자키시는 2년에 걸쳐 무연고 묘지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상했다. 이에 따른 대책은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 구상은 다음과 같다.

무연고 묘지로 간주되는 무덤 앞에 간판을 설치해 일정기간 내에 시 당국으로 연락이 없으면 폐묘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 대신 '합장무덤'을 마련해 무연고 묘지로 판명된 묘의 유골을 단체로 안치하는 것으로, 당국에 의한 폐묘인 셈이다. 또 시영묘지에서는 묘 1기당 연간 2000엔(약 2만원) 전후의 관리비를 징수하기로 했다. 시 당국의 묘지 풀베기나 수도요금, 쓰레기 처리 등의 최소한의 비용을 분담하기 위해서다. 미야자키시 당국은 "관리비를 걷지 않으면, 언젠가는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무덤을 사용하는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는데도 유용하다"라고 말했다.

다이이치 생명경제연구소의 고타니 미도리(小谷みどり, 47) 수석연구원은 장례식이나 무덤의 문제를 20년 이상 연구해 왔다. 그는 앞으로 일본에서 무연고 묘지는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타니 연구원은 "현재 60~70대인 분들의 경우, 무덤에는 부모 그리고 함께 산 적이 있는 조부모가 안치돼 있다"며 "그로 인한 친밀감에서 후소들이 성묘를 하고 있지만, 핵가족으로 자란 그들의 자녀세대는 연간 1~2회 정도 조부모를 만나는 등 친밀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향후 성묘하는 사람이 감소해 무연고 묘지가 증가할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단숨에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저출산이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종래와 같은 무덤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무연고 묘지의 급증을 예상할 수 있는 데이터도 있다. 일본 전국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다이 이치 생명경제연구소가 2009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3.9%만이 자신의 향후 무덤이 "무연고 묘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절반이 넘은 50.3%의 응답자는 자신의 향후 묘지에 대해 "언젠가는 무연고 묘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무연고 묘지나 황폐무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에 대해 고타니 연구원은 "친구끼리 혹은 양로원 동료들과 같이 혈연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합장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합장한 후 절이나 비영리법인, 학교, 시설, 기업체 등이 관리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같은 움직임은 일본 각지에서 확산되고 있다. 가고시마(鹿?島)현 아이라(?良)시의 사회복지협의회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98년 대신 묘를 돌봐주는 '묘지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묘지기 대행 서비스로는 일본 전국의 선구적 존재인 셈이다.

묘지기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시 당국의 담당 직원에 따르면, 이들은 정기적으로 묘지를 방문해 묘비를 닦고 헌화하는 등 묘지를 돌본다고 하다. 그리고 연간 1회 정도는 묘지 모습을 촬영해 고객들에게 보낸다. 시 당국에 묘지기 서비스를 신청하는 고객들은 70%이상이 가고시마 현 밖에 거주해 성묘하러 오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묘지기 대행은 최근 몇년 전국에 확산되고 있으며, 시행업체 시 당국 뿐 아니라 사설 기관까지 다양하다. 오이타(大分)현 사이키(佐伯)시의 묘지기 대행 업체 '에버그린'은 장애인을 고용해 묘지기 대행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버그린은 10~60대의 장애인15명과 직원 5명이 묘지기 서비스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묘 관리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는 연간 계약건수가 300건수가 넘어섰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젊은이들 중에는 자신뿐 아니라 조상의 묘에 무관심한 추세로, 향후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인구감소가 진행되면 무덤 황폐화, 폐묘 등의 추세는 막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 남성(35)은 "조부모가 돌아가신 후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성묘를 가도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분의 묘는 없다"면서 "열심히 성묘를 하던 고모도 돌아가시고, 부모님도 성묘를 열심히 하지 않아 아마 지금쯤은 조부모의 묘는 황폐화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나를 위한 무덤도 필요하지 않다"며 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ch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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