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릴레이 정책 검증> 중도와 진보 오가는 김부겸의 마당발 정책

김태훈 기자 2017. 1. 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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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공립대 통합 재편 시민들 호응 미지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하겠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는 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고, 평등의 방향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군에 속하는 김부겸 의원이 1월 18일 밝힌 공약이다. 명목상으로는 좌우를 막론하고 이견이 크지 않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현실에서는 원칙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지경으로까지 치달았기 때문에 해결의 첫 단추로 비정규직 문제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이 원칙을 법제화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고, 국내 소비를 촉진시켜 경제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비정규직은 철폐 수준으로 줄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는 큰 틀의 정책방향을 제시한 것을 제외하면 김 의원이 밝힌 사실상 첫 번째 구체적 공약이라 할 수 있다. 또 김 의원이 대선주자로서 내놓거나 준비하고 있는 정책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정책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원칙적 내용을 앞세운 뒤 세부적인 정책과 공약에서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점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의원이 주로 초점을 맞추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노동문제와 관련돼 있다는 점도 잘 보여준다.

정치성향에 따른 차이 없이 대다수가 지지할 법한 내용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안전하면서도 큰 흥미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는 단점도 함께 지니고 있다. 또 다수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경우 정작 정책에서 초점이 맞춰진 계층의 현실과는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김 의원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를 제안하면서 함께 언급한 일본 아베 정부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아베 정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1억 총활약 사회플랜’에 들어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내용은 일본 내에서 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이는 대신 정규직의 임금을 낮추는 방향으로 취지와 달리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낳았다.

김 의원은 일본의 예와는 달리 “비정규직은 철폐에 가까운 수준으로 줄이고, 업무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아주 제한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하되 임금차별은 철저히 금지시키는 것”이라며 사실상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의원은 “젊은층에서 취업을 위해 대기업으로 몰리는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임금을 더 받는 대기업으로 가는 것인데,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지기 위해 대기업의 양보를 이끌어내려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도 일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각에 따라 기업의 임금동결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비판도 가능한 지점이다.

김 의원은 민주당 대선주자들 가운데 자신의 보수·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자평한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가운데 가장 중도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고, 당내의 주류 분위기가 바뀌어 온 것과는 무관하게 일관된 입장을 지켰다는 것이다. 또 보수적인 대구지역 유권자들을 결국 설득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점에서도 입증이 됐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은 “부산·경남지역은 스윙보터로 바뀌고 있으니, 이제 마지막 남은 취약지역이 대구·경북인데, 야권에서는 이 지역에서 나만큼 표를 가져올 수 있는 후보가 없다”며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야권에 대안이 있을까 고민하는 중도나 합리적 보수 유권자들에 대해서도 그만큼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자신의 공약을 총괄하는 의미로 내건 ‘국가대개혁’이라는 슬로건에는 노동개혁 외에도 정치·재벌·교육개혁까지 4개의 세부항목이 포함돼 있다.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정치개혁 과제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와 ‘지역주의 극복 및 중대선거구제’다. 둘 다 개헌과 관련된 내용이다. 김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지역주의 정치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방안 모두 다당 체제보다는 양당 체제가 들어서기 쉬워진다는 공통점도 있다.

“현재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하에서 만들어진 4당 체제는 우연적이고 불안정한 체제라 어떤 식으로든 재편되거나 바뀌는 것이 불가피하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하나로 합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권도 공조체계를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김 의원은 여야 양당구조가 보다 안정적일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김 의원은 제3지대가 역할을 하는 대신 야권 내부에서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당 외부를 향해서는 중도적인 이미지를 보이고, 당 내부에서는 진보적 의제를 내세우는 데 밀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의원과는 계파가 다른 민주당의 한 의원도 “김 의원이 현재는 지명도가 낮아 대선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겠지만, 정치권 안에서 적대하는 세력을 만들지 않으면서 당내 입지를 꾸준히 강화하는 모습을 보면 다음 정부 때는 위상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노동·정치·재벌·교육 4부문 국가대개혁 노동개혁 정책에 중도적인 시각이 들어가 있는 반면, 재벌개혁 정책에서는 진보적인 색채가 유지되는 등 양면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점이 김 의원이 제시한 정책방향의 특징이다. 김 의원은 “대통령의 임기는 기껏해야 5년이지만, 재벌 총수는 대를 이어가며 누리는 무소불위의 영원한 절대권력”이라며 “재벌 대기업 위주의 한국 경제는 불공정·불균형·불평등의 ‘3불 경제’이자 재벌과 모피아의 기득권과 탐욕이 넘치는 약탈경제”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재벌 지배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순환출자 해소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제안하고 있다. 또 재벌과 대기업의 갑질 근절을 위해 공정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동이사제 도입도 들어가 있다. 중도에 가깝다는 이미지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이다. 이 입장 역시 시각에 따라서는 현실성이 낮다거나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의 여지는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재편한다는 정책방향은 교육개혁 정책을 제시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대학입시제도가 계층이 대물림되는 절차로 굳어져 버린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교의 계층화와 부모의 재산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균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만드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전국의 국·공립대를 통합해 예컨대 서울대는 인문학부, 부산대는 상경학부, 전남대는 사회과학부인 식으로 학부체제로 운영하는 정책이다. 이와 함께 학생 선발은 대입 자격시험으로 일원화해 등급 없이 합격·불합격만 판별하는 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극소수인 재벌을 향한 재벌개혁 정책은 시민 다수의 호응을 얻을 수 있지만, 이미 학업능력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굳어진 일종의 기득권 체제 때문에 김 의원의 교육개혁 방안이 얼마나 반향을 일으킬지가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 정책에 대해 이미 과거 진보정당을 비롯해 교육계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요구가 나왔지만, 동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그러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당내 다른 주자들도 이와 비슷한 정책을 제시하며 오히려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어느 주자가 제시한 정책이든 간에 국민의 요구가 크면 당 차원에서도 뒤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다소 앞서나간 듯 보이는 정책이라도 정책대결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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