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기록으로 남은 용산참사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2017. 1. 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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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던 이들의 이야기… 서울시 8년 만에 백서 발간
용산참사 8주기를 하루 앞둔 1월 19일, 한 시민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청 1층 로비에 전시된 용산참사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진상규명이 돼야 할 말이 생길 것 같아요.” 생지옥과 같았다던 용산참사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보냈던 철거민 피해자는 아이에게 지난 4년 가까운 시간의 부재를 설명할 말을 아직 찾지 못했다며 괴로워하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여섯 명의 국민이 하루아침에 사망한 ‘용산참사’의 그날로부터 8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시간은 물대포와 추위로 매서웠던 그날에 꽁꽁 얼어붙어 있다. 추위가 매서워지는 겨울이 깊어질수록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시간은 2009년 1월 20일을 벗어나지 못한다. 매년 1월이 다가올수록 컴컴하고 매캐한 유증기로 가득 찬 공포의 망루와 검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이미지,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의 사이렌 소리가 머리를 맴돌아 잠을 잘 수 없다고들 한다.

정부 차원 공적 기록이라는 점에 의미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참사의 기억으로 괴로울 때마다 “차라리 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사람들에게서 용산이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하며,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시간의 흐름과 또 다른 참사의 연속에서 용산참사는 과거의 한 사건으로 잊히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사 8주기를 하루 앞둔 1월 19일,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이라는 이름의 백서가 발표됐다. 참사 8년 만에 나온 백서의 발표 주최는 공공인 서울시다. 237페이지 분량의 백서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는 1만여건의 수사기록과 9000여건의 영상과 사진자료를 살폈다고 한다. 용산참사와 관련된 관계자 50여명의 심층 인터뷰도 백서의 재료가 됐다. 시민사회, 법조계 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 위원회’ 위원 14명이 2015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백서 내용을 검증했다. 또한 서울시는 2020년까지 용산참사가 발생했던 용산4구역 안에 용산참사 전시관을 건립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발간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용산참사 백서를 “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무분별한 개발의 시대였던 지난 반세기 서울시 도시개발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안타까운 외침을 서울시는 절대 잊지 않겠다. 사람은 결코 철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이 백서는 2년 전인 용산참사 6주기 때 박 시장이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다. 다시는 이처럼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용산참사에 대한 기록화를 통해 참사를 기억하고 아픈 교훈을 되새겨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한 약속이었다. 백서의 처음 20여페이지는 용산참사 당시부터 현재까지 용산4구역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어쩌면 그 약속은 그보다 더 전에 이뤄졌다. “비록 지나간 일이지만 시장으로서, 행정책임자로서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용산참사 3주기 때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2009년 연말, 당시 정운찬 총리의 ‘유감’ 표명 담화문을 부족하지만 애써 ‘사과’로 받아들이고 355일 만에 서러운 장례를 치러야 했던 피해자들에게 서울시장의 사과는 조금이라도 한을 풀 수 있는 위로가 됐다.

백서는 바로 그 사과에서 출발했다. 서울시는 이 참혹한 사건에 어떤 책임이 있었는지? 시민들의 삶이 파괴되는 도시개발 과정에서 서울시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마지막까지 서울시가 이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참사에 책임 있는 서울시로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에 기반한 반성과 성찰이 이 백서의 출발점이다.

이번에 발표된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 백서는 공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백서가 발표되기 이전까지 정부 차원의 공적 기록은 철거민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결문이 유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국가의 기록에서 철거민들은 경찰을 죽인 사람들, 도심 테러리스트들이라는 낙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법원 판결문에는 ‘테러리스트’ 낙인 법원 판결문은 다섯 철거민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는다. 오직 진압과정에서 사망한 경찰 특공대원 한 명의 죽음에 대해서만 물을 뿐이다. 판결문에서 다섯 철거민들의 이름은 “피고인들(구속되어 재판받던 철거민들)은 망 이상림, 망 양회성, 망 한대성, 망 윤용헌, 망 이성수와 공동 공모하여 경찰을 죽였다”는 것으로만 불린다. 여전히 서럽고 서럽게 불리는 이름들이었다.

용산참사 백서의 표지

이번 백서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던 이들의 이야기, 8년이 지나 잊히고 있는 사건에 대해 비록 지방정부이지만 공공인 서울시가 나서 수많은 기록과 증언들을 모아내고 기록해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적 기록이다. 왜곡된 판결문으로만 남아 있던 공적 기록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상처가 서울시의 공식 백서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 받기를 바라본다. 아빠의 부재를 설명할 단어를 백서를 통해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이 백서는 참사의 한 측면만을 조명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화재 발생의 원인 등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은 본 백서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백서 스스로가 한계를 밝히고 있다.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 진상규명의 중요한 한 축인 경찰의 성급하고 무리한 진압작전에 대해서도 참사 발생 당시 상황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정도에서 관련 주체의 인터뷰 내용과 재판 결과 등을 인용해 정리하는 데 머물렀다.

광역도시 서울의 도시개발을 관장하는 시 정부 차원에서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참사의 구조적 원인인 재개발 문제를 다루는 참사 이전과 참사 이후의 활동 및 정책적 대안 모색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용산참사의 재발을 막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전이나 사후뿐만 아니라 참사 발생의 긴박했던 시간인 당일에라도 공적 영역에서 이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백서 발표에 대한 일부 보도에서 “용산참사의 모든 것을 담은 백서”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면에서 과장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젠 참사에 책임 있는 국가 차원에서의 반성과 성찰의 기록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이 백서가 과거의 기억으로만 박제되지 않고, 성찰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대안을 실현해 가길 바라본다. 아니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제대로 기억하고, 제대로 성찰하기 위해, 두 눈 뜨고 귀를 세워야 한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시는 시대의 난쟁이들이 하늘 끝으로 오르지 않도록, 다시는 참혹한 목격과 그 기록이 필요하지 않도록….

355일 만에 치러진 서럽던 장례식 노제처럼 눈이 펑펑 내리는 용산 8주기에,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 백서를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용산의 절규의 언어로 읽으며, 모란공원 묘역에 바친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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