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U-20 월드컵 멤버, 정경호를 기억하나요?

손병하 입력 2017. 1. 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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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U-20 월드컵 멤버, 정경호를 기억하나요?



(베스트 일레븐=창원)

작지만 빨랐던, 화려하진 않지만 다부졌던, 무엇보다 피치 위 곳곳을 다람쥐처럼 누비고 다녔던 정경호를 기억하는가? 2007년 캐나다에서 열렸던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이청용·기성용·최철순·심영성·신영록 등과 함께 한국 축구 U-20대표팀 일원으로 활약하며 우리들에게 꽤 깊은 감동을 선사했던 정경호를 기억하는가? 경남 FC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해 피치 곳곳을 누볐던 정경호를 기억하는가? 아마 잊고 지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던 정경호가 4년 만에 프로 무대로 돌아왔다. 2013년 광주 FC를 마지막으로 프로 무대에서 내려간 정경호는 2017년 새롭게 창단한 안산 그리너스 FC의 맏형으로 다시 프로축구 무대에 입성했다. 정경호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내셔널리그 소속이던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뛰었는데, 지난 시즌을 끝으로 울산 현대미포조선이 해체되고 일부 선수들이 안산 그리너스에 합류하면서 다시 프로축구 무대를 밟게 됐다.

정경호는 청소년 시절 각급 대표팀을 거친 유망주였다. 앞서 언급했듯 2007 FIFA 캐나다 U-20 월드컵에도 출전했을 만큼이었다. 프로에서도 나름 족적을 남겼다. 2006년 경남 FC 창단 멤버로 합류한 정경호는 신인이었음에도 23경기에 나서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프로 2년차였던 2007년에도 별다른 징크스 없이 꾸준한 활약을 펼쳤고, 이후 전남 드래곤즈와 광주 FC 등을 거치며 자신만의 영역을 다져나갔다.

그러나 광주 소속으로 활약했던 2013시즌이 끝난 후 갈 곳을 잃었다. 광주에서 나왔으나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 정경호는 상주 상무 소속이었던 2011년부터 조금씩 기량이 내림세를 보였는데, 제주 유나이티드와 광주를 거치면서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아 다른 프로팀들로부터 외면 받고 말았다. 그때 정경호가 선택했던 게 내셔널리그에 소속돼 있던 울산 현대미포조선이었다. 갈 곳 없었던 정경호로선 다른 선택이 없었다.

“사실 그때는 1년만 있으면 다시 프로팀으로 갈 줄 알았어요. 그래서 ‘1년만 뛰자’란 생각으로 울산 현대미포조선에 입단했죠. 그런데 1년만 뛴다는 그 생각은 잘못 된 것이었어요. 1년 뒤 저를 불러주는 곳도 없었을 뿐더러, 그 안일한 생각 때문에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도 제대로 뛰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시간은 1년, 2년 흐르더군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프로팀이 멀어졌어요. 당연히 사람들에게서도 잊혀갔고요.”


그러나 정경호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2016년, 내셔널리그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마친 정경호는 울산 현대미포조선이 해체되면서 안산 그리너스에 합류했다. 신생팀 안산 그리너스가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나온 선수 중 다수를 영입했는데, 정경호도 그 안에 포함됐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다시 프로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얻은 정경호는 그래서 지금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도무지 다시 이뤄질 것 같지 않았던 K리거의 꿈이 현실로 이뤄진 만큼, 절대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요즘 모든 게 행복해요. 다시 K리거로 뛸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기쁘고요. 제가 울산 현대미포조선으로 입단하던 해 결혼을 했는데, 아마추어 무대에서만 뛰다 보니 아내에게 자랑스러운 남편의 모습을 별로 보이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 자랑스러운 남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안산이 신생팀이라 만만치 않은 시즌이 되겠지만, 후배들과 합심해서 우리들만의 저력을 보여주겠습니다.”

20대 초반, 통통 튀는 파릇파릇함을 보였던 정경호는 어느새 서른을 넘겨 고참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어린 선수가 많은 안산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다. 프로 경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경호가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이전까지는 혼자만 잘하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후배들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이흥실 안산 감독도 정경호가 많은 역을 해줘야 한다며 적잖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비로소 고참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정경호다.

정경호는 울산 현대미포조선에 있었던 3년을 결코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비록 아마추어 축구 선수로 살아야 했지만, 그곳에서도 축구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좋은 동료와 지내며 또 다른 축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셔널리그에 머무는 동안에도 다시 K리거가 되겠단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 덕에 다시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 있었고, 이제 간절하게 꾸었던 그 꿈을 멋지게 펼칠 일만 남았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손병하 기자, 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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