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보고 싶었다"..'법알못' 막내기자의 재판 방청기

유덕관 입력 2017. 1. 21. 10:26 수정 2017. 1. 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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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30분 법원 도착..8시 입장가능 안내문에 '좌절'
생수병 뺏기고 입장..최순실·안종범 들어서자 '웅성'
최씨는 방청석 쪽으로 시선 안줘..안 전 수석은 '초췌'
최·안 변호인들 많은 질문으로 지연작전에 점점 지쳐
그러나 누가 잘못하고 있는지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한겨레]

‘최순실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나는 법원의 ‘법’ 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소위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그런 내가 지난 19일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최순실 사건 5차 공판 현장을 찾았다.

내 발걸음을 이끈 것은 “최순실을 보고 싶다”는 재판 방청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는 기사였다. 나도 최씨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재판을 지켜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19일 새벽 5시 다소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 첫 지하철을 탔다. 5차 공판은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는데, 이번 공판부터 방청권이 추첨에서 선착순 배부로 바뀌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선착순에서 밀리면 뭐라고 보고하지’ 등 오만가지 걱정을 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오전 6시30분께 도착한 법원청사는 썰렁했다. 굳게 닫힌 서관 1층 현관문 앞에는 “일반인 8시 입장 가능’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선착순으로 하기로 했으면 입장 시간도 안내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투덜거리며 돌아서는데, 30대 남성 2명도 닫힌 문 앞에서 허탈해 하고 있었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서울 구로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이형석(34)씨는 “국민적 관심사인 최순실을 직접 보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시간을 맞춰 다시 청사를 찾았다. 날을 잘못 잡은 것일까? 방청권 배부 시간이 다가왔지만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가 ‘돗자리’ 깔고 기다리는 현장은 전혀 없었다. 50여명이 줄을 섰다. 방청권이 배부되는 좌석은 80석이다. 그나마 법조계나 기자 등 ‘관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최순실 재판’ 방청권을 받기 위해 시민들이 줄 서 있다.

법정 출입구 앞에는 언론사 카메라 병풍이 쳐 있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청권을 받았다. ‘물품 엑스레이’에 가방을 올리고 몸 수색을 받았다. 그 순간! ‘삐∼’ 경고음이 울렸다. 원인은 물통. 피고인들에게 던질 수도 있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생수병을 빼앗겼다.

내 자리는 36번. 세 번째줄인데 앞 두 줄이 완전히 비어 있어 재판을 지켜보기가 수월했다. 오전 10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수석이 들어서자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몇몇 방청객은 더 잘 볼 수 있을까 일어나기도 했다. 내 자리는 피고인과 증인이 들어오는 옆문 코 앞이어서 ‘몰래 사진을 찍어 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최씨는 얼굴을 가리려는 듯 입가에 손을 올리고 들어왔다. 방청석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피고인석에 앉자마자 몸을 변호인 쪽으로 획 돌렸다.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하는 게 보였지만, ‘도끼눈’을 뜬 방청객들의 시선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뒤이어 안 전 수석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는데, 신문·방송에서 본 것보다 초췌한 모습에 방청객들이 놀라워했다.

공판은 증인으로 채택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대한 검사 쪽 신문으로 시작됐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검사와 변호사가 언쟁을 주고 받는 장면은 없었다. 각자의 주장을 증인으로부터 확인받는 것이어서 지루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오후 변호인단의 반대 신문이 시작되자 긴장감이 흘렀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의 변호인단이 “이 부회장 잘못도 있다”는 식으로 몰고 가자, 이 부회장이 발끈했다. 변호인단이 “길게 설명할 것 없다.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만 말하면 된다”며 말을 자르자, 이 부회장은 “이것만큼은 꼭 이야기를 해야 겠다”고 맞섰다. 변호인단은 시종일관 공격적이었다. 최씨 쪽 변호인은 ‘이 부회장은 박사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나?’ 같은 뉘앙스로 질문을 던져 이 부회장을 자극했다. 안 전 수석 쪽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을 혼내듯 호통을 쳤다. “이 부회장은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 아니냐?”라고 ‘공격’하자 이 부회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부회장의 목소리는 기어 들어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보다 못한 판사가 “증인 힘들죠? 이제 거의 끝났어요”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변호인단은 방청객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았다.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이들을 변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변호인단의 태도는 듣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분명했다. 변호인단이 준비한 질문이 너무 많아, 보는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했다. 예정된 신문 시간(오후 3시)도 훌쩍 넘겼다. 한 방청객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려는 게 변호인단의 전략임이 분명하다. 시간 끌기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신문은 오후 6시에 끝났고, 저녁 식사 뒤 7시30분에 공판이 다시 진행됐지만 일반 방청객들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재판이 끝날 때까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법정 바깥에 마련된 방청권 회수함에는 주인 떠나간 방청권이 쌓여만 갔다. 조아무개(64)씨는 “여러차례 공판에 참석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방청객 수는 줄어들고 있다. 국민들이 뉴스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푸념했다.

분명 공판 과정은 길고 지지부진했다. ‘법알못’인 나는 물론 일반 방청객들에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재판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한 유명한 드라마 대사처럼 “이 어려운 것을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이 됐으면 좋겠다. ‘어마어마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한 재판은 앞으로도 엄청나게 열릴 것이다. 김기춘, 이재용, 우병우, 박근혜….

글·사진 유덕관 기자 ydk@hani.co.kr

한 시민이 ‘최순실 재판’ 방청권을 받고 있다.
최순실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가 들어서자 기자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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