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의 성덕일기]작가 이무기 "한·일 위안부 합의 잘됐더라면 내 작품은 안됐겠죠"

정리 | 김형규 기자 2017. 1. 2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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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다음 웹툰 ‘곱게 자란 자식’ 작가 이무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다룬 웹툰 <곱게 자란 자식>으로 이름을 알린 이무기 작가(37)가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다음 웹툰 <곱게 자란 자식>(이하 <곱자>)은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작품이다. 이 만화는 공출과 징용,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위트와 해학을 잃지 않는다. 작가이자 배우로서 내가 찾고 싶은 절묘하고도 세련된 ‘균형’이 뭔지 제대로 보여준달까. 주인공인 평범한 시골 소녀 ‘깐난이’는 친구들이 차례로 죽임당하거나 위안부로 끌려가는 와중에 홀로 살아남아 역설적이게도 ‘곱게 자란 자식’이 되고 만다. 엉터리 위안부 문제 합의를 주도한 ‘그분’ 역시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의 ‘곱게 자란 자식’이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나를 비롯한 열혈팬들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지난겨울 중단된 연재는 재개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10번 넘게 <곱자>를 되돌려 ‘정주행’했다. 이 괴물 같은 만화를 만든 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연재는 언제 다시 시작될 것인지 직접 묻고 싶었다. 웹툰 작가 이무기(37·본명 이재철)를 지난 12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유다.

- 저는 만화에 그리신 본인 캐릭터 보고 머리는 산발에 수염도 많고 뚱뚱한 그런 원시인 같은 모습을 상상했는데 아까 뵙고서 좀 놀랐어요.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수염을 기르고 싶은 제 로망을 표현한 거고요. 또 하나는 막상 만났을 때 ‘어, 그래도 만화보단 실물이 그나마 괜찮네’ 그런 효과를 노리려고…. (웃음)”

- 거짓 무, 즐길 기 이렇게 두 글자로 필명을 쓰시잖아요.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저한테 어울리는 거 같아서. 일종의 B급 정서죠.”

- 용이 되지 못했다는 뜻인데.

“(한숨 쉬며) 지금 이름 따라가고 있습니다.”

-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해주시면….

“다음 웹툰에 <곱게 자란 자식>을 연재하다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듯 백수처럼 지내고 있는 이무기라고 합니다. 소개랄 것도 없는데…. 광주 토박이라 영화 <곡성>의 전라도 사투리 윤색작업에도 참여했었고요.”

<곱자> 주요 장면들. 위부터 세간과 끼니거리를 공출로 모두 빼앗기는 ‘피난골’ 주민들, 강제징용으로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조선 청년들, 주인공 깐난이와 친구들의 즐거웠던 한때, 위안부로 버마에 끌려간 순분이가 온몸에 문신이 새겨지고 족쇄에 묶인 채 갇혀 있는 모습.

내가 처음 <곱자>를 보게 된 계기도 질펀한 사투리 때문이었다. 꼭 <태백산맥>이나 <토지> 같은 대하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고놈은 껍따구만 조선놈이제. 요 대가리는 이미 건넛놈(일본인)이랑께?’ ‘안 바뀐다혀서 시도조차도 안 혀블믄, 우덜 자식들 대부터는 당허는 거이 억울허다는 자각조차도 못허고 살 것이요’처럼 너무나 리얼한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늘 감탄하곤 했는데, 그 유명한 ‘뭣이 중헌디?’라는 영화 대사도 이무기 작가의 작업이었다니.

“<추격자> 만든 감독님이라 해서 한 번 뵙고 싶은 마음에 하겠다고 했어요. 2박3일 동안 날밤 새우면서 고생 많이 했어요. 그 대사가 이렇게 유행이 될 줄은 저도 몰랐죠.”

- 처음엔 <인생이장난> <12단곡괭이> 같은 개그만화로 시작하셨잖아요. 일본 만화 <이나중 탁구부>를 그린 후루야 미노루 같은 느낌이었는데, 2013년 <곱자>부터 갑자기 장르가 바뀌었어요.

“그 전엔 제 웹툰 제목처럼 인생을 장난처럼 살았어요. 솔직히 웹툰을 하면서도 내가 작가란 의식이 전혀 없었고요.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애들이 커서 아빠 만화를 봤는데 전부 ‘양아치 개그물’이면 어쩌나 싶은. 아이들에게 보여줄 만한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역사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참에 제대로 해보자 한 거죠.”

- 그럼 위안부 소재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어느날 할머니한테 우리 동네에도 위안부로 끌려간 분이 있었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우리 먼 친척 중에…’라면서 소곤소곤 말씀하시는 거예요. 집에서 누구 듣는 사람도 없었는데. 갑자기 소름이 확 돋았어요. 멀게만 느꼈는데 내 주위에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곱자>에 나온 임신부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얘기도 실제 저희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그때 제가 받은 그 소름끼치는 느낌을 작품으로 보여주자, 이 생각 하나로 시작한 거죠.”

“대체 연재는 언제쯤 재개하실 거예요.” 유병재는 팬들을 대표해 재촉했고, 이무기 작가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곱자>는 ‘평범한 시골 소녀 이야기’, 아니 ‘소녀만 평범한 잔인한 이야기’다. 깐난이의 아버지는 일본의 앞잡이가 된 조선인에게 얻어맞아 목숨을 잃고, 세 오빠는 강제징용돼 죽거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 마을에서 제일 예뻤던 친구 순분이는 위안부로 끌려가 버마에서 처참하게 죽는다. 온몸에는 일본군들이 유희로 새겨놓은 문신이 그려져 있고, 아편 중독과 성병으로 원래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괴물’ 같은 형상이 된 채로. 실제 정옥순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도망치다 일본군에게 잡혀서 온몸에 문신을 당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버마 이야기 그릴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버마의 위안소에 갇힌 순분이 발에 채워진 족쇄와 문신이 새겨진 몸을 그리다보니 스스로 너무 끔찍해서 나중엔 잘 안 보이게 명암 처리를 어둡게 해버렸어요. ‘몬스터’라는 부제가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몬스터가 일본군이라고 일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결론은 순분이가 몬스터였다는 거죠. 그런 상황이 평범한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 작품 자문은 어떤 방식으로 하세요.

“대부분 자료 검색을 이용해요. ‘나눔의 집’은 갈 엄두도 못 냈어요. 제가 웹툰 그린다면서 그분들의 상처를 더 후벼팔 용기도 없었고요.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확한 고증을 위해 검토를 나름대로 철저히 하고요. 예전에 교수님들한테 몇 번 여쭤본 적도 있는데 만족스러운 답을 별로 못 얻어서 지금은 그냥 제 방식대로 하고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펼쳐보이는 <곱자>는 솔직히 보기에 편한 만화는 아니다. 중간중간 작가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꼭 봐야 하는데 볼 때마다 괴롭다’거나 ‘재밌는데 너무 무섭고 읽기 힘들다’는 댓글들에 나도 동감한다. 그걸 그리는 사람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구상할 때는 저도 슬픈 감정이 차오르지만 머릿속으로 수백번씩 그 장면을 반복하다 보면 막상 그릴 땐 별 생각이 없어져요. 원고 보낼 땐 내가 표현하려고 한 게 잘 안된 거 같다는 생각에 늘 후회를 하는데, 막상 보면서 울컥했다는 댓글을 보면 저도 위로받기도 하고. 그나마 내 마음이 전달이 되긴 했구나 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죠.”

-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안 여쭤볼 수가 없는데.

“그게 참 아이러니한 건데요. 합의가 잘됐으면 제 작품이 잘될 수가 없거든요. 하도 현실이 답답하다 보니 사람들이 <곱자>를 더 보게 되는 거 같고, 그런 점에서 저는 이런 난세에 득을 본 셈이라 할머니들께 항상 죄송한 마음이 들죠.”

- <곱자>를 꼭 봤으면 좋겠다 상정한 독자가 혹시 있나요.

“마음속으론 느그들 봐, 느그들 이야기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기도 한데, 사실 뭐 그분들이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 그런데 왜 다시 연재 안 하세요. 휴재기간이 1년이 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팬들은 외압 때문이 아닌가 걱정했어요.

“사실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별거 아니었거든요. 웹툰 작가들이 가는 인터넷 카페에 박원순 서울시장 지지서명이 한번 올라온 적이 있었어요. 제가 박원순 시장한테 무슨 상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냥 서명했는데 그게 블랙리스트라고. 뭐 거창한 일을 해서도 아니고 이유가 너무 자잘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어요.(웃음)”

- 아니, 블랙리스트시라니 전 부럽기만 합니다.

“외압 때문에 휴재한 거라고 해야 명분이 서는데, 사실 그것 때문은 아니고요(웃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잠 잘 때랑 밥 먹을 때 빼고는 하루에 14~15시간씩 책상에 앉아 그림만 그려야 하거든요. 허리 디스크가 오고 컴퓨터만 켜면 현기증이 나더라고요. 지금도 편도선과 현기증 약을 먹고 있습니다. 작품 기다리고 계실 독자들한테 엄청 미안하죠. 사실 이전 시즌 마무리한 후에 한번도 제 만화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요. 용기 내서 딱 한번 들어가봤는데 마지막회 댓글이 2000개 넘게 달렸더라고요. 무슨 내용일지 아는데 그거 읽으면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아서 그냥 나와버렸어요.”

이무기의 작품을 여럿 즐기며 그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과 동질감이 느낀 것은 아마 그와 나의 취향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그걸 확인하고 싶어 사전 질문지에 넣어뒀던 질문을 그가 내게 먼저 했다.

“근데 주성치 좋아하세요?”

- 저는 되게 영향 많이 받았어요.

“제가 20대 초에 인생 롤모델 4명을 제 나름대로 엄선했거든요. 그게 허영만 화백님 하고 개그맨 최양락씨, 그리고 주성치 하고 미국 프로레슬러 더락이에요.”

- 저랑 똑같으신데요. 와, 어떻게 이렇게 겹치지.

“주성치는 지금에야 말씀드리는 건데, <곱자>에 일본군 나오면 먹구름 끼는 장면이 있어요. 판타지 요소로 넣은 건데. 이걸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다가 얼마 전에 주성치 영화를 다시 몰아보는데 <쿵푸 허슬>에 그 장면이 딱 나오는 거예요. 어찌나 민망하던지.”

-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시골 살았고 20대까지도 집에서 농사 돕고 그랬죠. 인생을 준비한다거나 앞으로의 희망 이런 거랑은 거리가 멀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3박4일 가출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해도 전 ‘그게 가출이냐, 외출이지’ 하고는 집에 두 달을 안 들어간 적도 있어요. 공고에서 꼴등을 두 번이나 했으니까, 막 살았다고 봐야죠. 만화를 시작한 것도 간단히 말하면 농사짓기 싫어서. 그래도 어릴 적 시골 정서가 작품 할 때 도움이 많이 됐죠.”

- 그래도 갑자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게 신기하네요.

“어려서부터 만화책은 엄청 좋아했어요. 밭에서 삽질하다가도 갑자기 드넓은 밭 위로 그림이 막 펼쳐지고 그랬어요. 노가다 뛰면서 일할 때도 하늘에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막 떠올라요. 그럼 손가락으로 무릎에 막 그려보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산에서 태권브이가 나타난다든지 엉뚱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런 게 다 상상력이나 창작의 원천이 된 거 같아요.”

- <곱자>의 내용 전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내용상으로는 이미 절반 훨씬 넘어 왔어요. 늘 제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전 다음 시즌에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요. 앞으론 고구마 먹다 사이다 드시는 것처럼 통쾌한 장면들이 좀 많이 들어갈 겁니다. 마지막 장면은 이미 생각해 둔 게 있어요.”

- 연재는 언제쯤 재개하실 계획인지.

“저는 3월로 생각하는데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어요. 지난해에도 봄 되면 돌아온다고 했다가 지금 벌써 겨울이 되고 해가 바뀌었는데. 아마 그림 안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거 보면 독자들한테 조리돌림당할 것 같아요.(웃음)”

<정리 |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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