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컬처랜드]이 형님, 어깨 힘 쫙 빼니 꽤 정감 있네

김교석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입력 2017. 1. 2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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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예능 ‘아는 형님’ ‘한끼줍쇼’ 캐릭터 변신한 강호동

강호동이 지난달 자신이 출연하는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 가수 이상민에게 얼굴을 잡힌 채 놀림을 받고 있다. 강호동은 최근 각종 예능에서 기존의 ‘강한 형님’ 캐릭터와 다른 친근한 모습을 보여준다. JTBC 제공

강호동의 코미디가 거북했다. 출연자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재미와 웃음을 강요하는 듯 에너지로 밀어붙이는 진행방식도, 높은 데시벨로 소리치는 오버 액션도, 덩치에 안 맞는 귀여운 척도, 동생들을 거느리는 ‘형님 예능’의 관계망도 딱히 유쾌하게 즐길 만한 타입은 아니었다. ‘형님’과 ‘에너지’로 요약할 수 있는 강호동식 예능은 한마디로 부담스러웠다. 이는 독특한 취향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유·강’ 쌍두마차 체제가 굳건했을 때부터 강호동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예능MC였다.

그는 준비된 웃음과 강하게 밀어붙이는 에너지를 신봉했다. 최근 가수 비가 <아는 형님>에 출연해 호탕하게 웃으면서 윽박지르는 듯한 강호동의 형님 리더십의 실체에 대해 증언한 바가 있다. 강호동이 원하는 에너지 레벨을 따라오지 못하거나 기회를 못 살리면 유·무언의 압박을 당하는 까닭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장난삼아 고백한 것이다. 강호동 주변에 늘 인위적인 개인기와 리액션을 장기로 삼는 붐, 이특, 이수근 등의 선수들이 포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유하자면 강호동은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표정으로 관객을 대하지만 살벌한 훈련과 군기가 존재하는 서커스단의 단장인 셈이다.

이처럼 강호동의 짜여진 방송 진행 스타일과 전형적인 캐릭터는 공교롭게도 그의 공백기에 진행된 예능 패러다임의 전환과 맞물려 낡은 옛것으로 밀려났다. 일상성과 정서적 교감이 재미 요소가 된 시대는 에너지와 덩치로 웃음을 만드는 쇼버라이어티의 문법을 고수하는 강호동에게서 날개를 앗아갔다. 추락은 끝을 몰랐고 결국 지난해 10월, 지상파 방송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졌다.

그런데 위기는 기회와 맞닿는다고 했던가. 강호동은 그 시점부터 바닥을 세게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는 형님>은 다시 치고 올라갈 체력을 마련한 발판이다. 익숙한 강호동식 형님 예능이고, 그가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과거처럼 강력한 진행자가 아니라 샌드백 역할에 가깝다. 이경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꼬붕’은 이수근 한 명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더 막무가내에다 거칠 것 없는 은지원과의 캐릭터다.

강호동은 김희철에게 쉴 틈 없이 놀림을 당하고 민경훈의 돌발 항거에 속수무책으로 당황한 기색을 드러낸다. 구시대 박쥐, 제일 뚱뚱한 박쥐라고 구박하는 서장훈과는 티격태격 말다툼을 한다. 에너지로 촬영장을 압도하던 강호동이 어느덧 김영철과 함께 대부분의 출연자에게 당하는 지경에 놓인 것이다. 시청자들은 강호동이 당황하고 상처받는 모습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 불가능할 것 같았던 강호동의 캐릭터 변신은 원점이라 할 수 있는 판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강호동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기어를 한 단계 더 올렸다. 지금까지 수차례 변신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큰형의 자리를 양보하거나 중심에서 비켜난 적이 없었다. 늘 힘센 큰형 노릇을 하며 넘치는 에너지로 동생들을 이끌었는데, <한끼줍쇼>에서 은사급 선배 이경규를 만나 ‘행님~’ ‘형~’ 등등 아랫사람다운 애교를 부리며 쫓아다닌다. 덩치와 이미지에 맞지 않게 정감 어린 동네 풍경에 심취하고, 새소리, 피톤치드에 집착하는 소녀적 감수성을 마음껏 뽐내다 혼난다.

그런 강호동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경한데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진다. 아이들만 보면 말을 건네는 강호동의 소통 의지는 이경규에게 영혼 없는 기계적이고 가식적인 방송이라고 구박을 받긴 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강호동에게 인위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비판이 따라다녔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꽤나 매력적인 반전이다.

강호동은 이경규를 만나면서 그동안 해오던 역할과 캐릭터를 펼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놓였다. 강호동의 기존 캐릭터가 아예 발붙일 수 없는 환경이다. 이경규는 강호동에게 분량 뽑기 위주의 습관적·가식적인 방송은 그만하라고 ‘버럭’하고 특유의 오버 리액션에는 ‘할 말을 잃었다’고 돌직구를 던진다. 이처럼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기존 캐릭터에 균열이 생겼고, 그토록 원하던 변신의 씨앗이 열매를 맺기에 이르렀다.

올 한해 가장 기대되는 예능인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장 먼저 강호동의 이름을 올린다. 그는 작년 한 해에 JTBC에서만 <아는 형님> <마리와 나> <쿡가대표> <천하장사> <한끼줍쇼> 등에 5편 연속 출연했다. 지난 수년간 거듭된 실패에도 멈추지 않은 도전과 실험이 드디어 결실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모처럼 맞이한 성공에 멈추지 않고 한층 더 나은 변화를 모색하는 몸부림과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희화화할 줄 아는 변화(<신서유기>)는 너무 형님 캐릭터라 정이 안 가던 강호동에게 처음으로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그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정서적 교감이 되는 오늘날 트렌드에 맞는 캐릭터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긴 슬럼프를 겪으며 바닥을 치는 동안에도 샅바를 놓지 않고 밀어붙였던 질곡의 시간들이 드디어 보상을 받을 때다.

<김교석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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