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빈곤 길을 찾다-르포] 고립된 섬 '쪽방'

서대웅 기자 2017. 1. 20.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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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후빈곤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8.8%로 OECD 국가 평균(12.1%)의 4배를 넘는다. <머니S>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2017년 연중기획시리즈 ‘노후빈곤, 길을 찾다’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노후빈곤의 실태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 세대가 준비해야 할 정책대안과 제도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서울역광장에 서면 자줏빛의 서울스퀘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서울스퀘어를 중심으로 왼쪽의 세브란스빌딩과 오른쪽의 서울시티타워가 웅장하다. 양복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빌딩을 드나든다. 서울역에 내린 이방인을 맞이하는 서울의 첫인상이다.

그러나 이 광경을 한꺼풀 벗기면 도심 속 고립된 섬이 나온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이다. 서울시티타워 오른쪽 길을 건너 후암로를 따라 한블럭만 가면 된다. ‘노숙 직전 단계’의 노인들이 이곳에 거주한다.

올 들어 서울에 첫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10일 낮 12시. 서울역 인근 후암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호태씨(73)가 동자동 식도락으로 향한다. 식도락은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쪽방에 사는 사람만 출입할 수 있고 점심 때만 운영한다. 가격은 1000원. 원래 500원이었는데 물가가 올라 지난해 식비를 인상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돈 내고 밥 먹는다’는 자존감을 갖는다.

/사진=서대웅 기자

◆노숙과 세상의 경계 ‘쪽방’

김씨는 10년째 쪽방에 살고 있다. 동자동 쪽방에 살다 5년 전 인근 후암동으로 옮겼다. 그곳도 쪽방이다. 쪽방의 기준은 따로 없다. 보통 방 크기가 2평 이하고 별도의 취사시설이 없으며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면 쪽방이라고 부른다.

다닥다닥 쪽방으로 채워진 건물의 외부는 보통의 연립주택처럼 보인다. 쪽방과 비슷한 크기의 방으로 구성된 고시원의 경우 ‘OO고시원’식으로 간판을 내건다. 달동네는 멀리서 보면 달동네라는 걸 인지할 수 있다. 반면 쪽방으로 이뤄진 건물은 이를 알리는 간판 따위가 없다. 마치 빈곤층이 산다는 점을 숨기는 듯하다. 김씨는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이곳이 다 쪽방”이라고 말했지만 건물 내부에 들어가기 전까진 믿을 수 없었다.

김씨가 사는 쪽방의 월세는 20만원이다. 보증금은 없으며 공과금은 월세에 포함됐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집세다. 방 크기는 한평 반.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당한 공간은 아니다. 그저 눈비를 피해 몸을 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다. 김씨는 “쪽방은 노숙 직전 단계”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곳 서울역 인근 쪽방촌을 포함해 돈의동, 창신동, 남대문, 영등포 인근의 쪽방촌을 5대 쪽방밀집지역으로 두고 관리 중이다. 서울시 자활지원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서울 5대 쪽방밀집지역의 쪽방 수는 총 4001가구다. 3507명이 살고 있는데 이 중 1인가구가 3347가구로 대부분(95.4%)을 차지한다. 2인가구는 147가구(4.2%), 3인가구는 18가구(0.4%)에 불과하다.

연령대별로는 60대 821명(23.4%), 70대 584명(16.6%)으로 60대 이상이 10명 중 4명이다.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로 1232명(35.1%)이지만 이들은 60대가 돼도 쪽방에서 살 가능성이 크다. 김씨는 “이곳을 떠나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살 만한 동네를 찾아도 그곳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사진=서대웅 기자
/사진=서대웅 기자

◆기초연금, 최빈곤층 외면하는 ‘역설’

오후 2시30분. 김씨와 함께 한 건물로 들어갔다. 반지하에 쪽방 11개가 있다. 한층 더 내려간 지하도 마찬가지다. 화장실과 세안실은 2개 층을 잇는 계단 중간에 각각 1개씩 있다. 빨래하거나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천장 모서리엔 거미줄이 보인다. 방문 앞에는 목발도 눈에 띈다.

김문환씨(78)가 거주하는 방문을 열었다. 김씨는 라면을 먹고 있었다. 이가 없어 라면을 최대한 불려서 먹는다. 식도락까지 5분도 안되는 거리지만 허리가 안좋아 움직일 수 없다. 나이가 많아 시술을 받지 못하고 약으로 버티는 중이다. 방안에는 시계 2개가 있지만 모두 멈춘 상태다. 작은 탁상엔 사진 하나가 놓여있다. 누군가 액자 처리를 해놨다. 노란 꽃을 배경으로 모자를 쓰고 멋있게 앉아 찍은 김씨의 모습이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기초생활보장수급 1종 대상자다. 매달 20일 60만원가량이 입금돼야 하지만 40만원정도만 받는다. 매달 25일 기초연금(옛 기초노령연금)으로 20만4010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충성의 원리’다. 이는 정부가 정한 기준소득보다 모자라는 금액만 보충해서 지원한다는 원칙으로 기초생활보장법 제3조를 적용받는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만 65세 이상인 노인은 기초연금을 신청해 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은 중위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노인에게 정부가 지급한다. 문제는 기초연금이 기초생활보장급여의 ‘공적 이전소득’으로 잡힌다는 점이다. 정부가 정한 기준소득에 소득인정액을 뺀 나머지 금액만 기초생활급여로 지급한다. 김씨가 이 경우다. 중위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오히려 최저빈곤층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셈이다.

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은 “다른 선진국가도 보충성의 원리를 적용해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절대빈곤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 실장은 “빈부격차는 노인층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이 정책은 격차를 더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일하며 매달 70만원을 버는 노인은 기초연금까지 받아 90만원으로 생활할 수 있지만 최저빈곤층 노인은 기초연금을 받아도 최대 6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김호태씨 역시 같은 처지다. 기초생활보장 1종 수급자인 그도 사실상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다. 서울역에서 걸어 5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동자동 쪽방촌. 도심 속 고립된 섬인 이곳에 사는 최하빈곤층은 복지정책에서도 고립된 상태였다.

동자동 사랑방. /사진=서대웅 기자

◆그들끼리 나누고 소통하는 곳 ‘사랑방’

김호태씨는 젊은 시절 충북 옥천에서 조적·미장일을 했다. 건축현장에서 기능공이 하는 업무다. 그는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일당으로 하루를 채웠다. 1987년 돈을 좀 더 벌기 위해 서울로 온 김씨는 기능직을 포기하고 잡노동을 시작했다. 집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일찍이 포기했다. 당뇨를 앓고 일을 그만두기 직전인 2010년 그는 일당으로 7만원가량을 벌었지만 동료와 술을 마시며 밤을 버텼다. 이후 병원비로 빠져나가는 돈도 많아졌다.

김씨가 술과 담배를 끊은 건 동자동 사랑방을 만나면서부터다. 사랑방은 지난 2007년 동자동 쪽방촌 주민을 위해 시민단체가 만든 조직이다. 김씨가 점심을 떼우는 장소인 식도락도 사랑방에서 운영한다. 공동부엌이 없는 쪽방촌을 대신해 각자가 십시일반 반찬을 내 운영하기 시작한 게 시초다. 그는 매일 사랑방을 찾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10평 규모인 사랑방엔 이날 10여명이 모였다. 그들은 차를 마시고 신문을 본다.

시민단체가 조직해 시작한 사랑방이지만 쪽방 주민들은 직접 공제조합을 만들었다. 2011년 만들어진 조합에 출자된 금액만 1억8000여만원이다. 연 2%의 금리로 최대 50만원까지 대출해준다. 동자동 쪽방 1200여가구 가운데 437명이 조합원이다. 김씨는 “사랑방과 조합이 생긴 후 이 동네가 많이 변했다. 그 전에는 밤만 되면 서로 술먹고 싸우기 바빴는데 지금은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사랑방을 통해 서로간 연대를 확인한다. 사랑방과 함께 매년 어버이날과 추석 때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잔치를 연다. 고향이 없거나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다양한 놀이도 한다. 쪽방에서 말없이 돌아가시는 어르신은 1일장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한다. 지난해에만 25명이 사망했다. 세상을 떠난 이후에야 가족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랑방에는 유언장을 비치해뒀다. 과거 사업 실패로 2년간 노숙을 한 경험이 있는 선동수 조합 간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숙하기 전에는 왜 저러고 있나 싶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까 알겠더라고. 처자식이 있어도 연락조차 못하는 그 처지는 노숙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이곳에서 누추하게 사는 사람들 보면 보통 피하죠.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다들 착해. 너무 착해서 가까운 사람한테 사기당하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그러다 보니 세상 무서워서 밖으로 못 나가는 거고. 이렇게 늙어가는 거예요.”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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