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대 격변의 산업]눈치 보는 자동차업계 결국 현대차도

임성영 2017. 1.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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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수출 선적. 현대차 제공.
[이데일리 임성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국내 자동차업계에 미묘한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현대차그룹은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관세’ 압박에도 미국에 추가적인 공장을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전일 앞으로 5년간 미국 현지에 31억달러(한화 약 3조6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히면서 미국 내 신규 공장 건립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 여전히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일관하고 있지만 미국지역 투자 계획이 지난해(21억 달러)보다 50%나 늘어난데다 멕시코 공장 설립 당시 투입된 비용이 10억달러(1조1700억원) 정도였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의식한 태도 변화로 해석된다.

트럼프가 아직 한국 자동차 업체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포드, 크라이슬러, BMW 등에 이어 현대차그룹이 다음 타깃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 판매량 668만7000대 중 10%인 66만8000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특히 기아차는 1조원을 투자해 지난해 9월 멕시코 공장을 준공했으며 당초 멕시코 공장 연간 생산량(40만대)의 60%를 북미로 수출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이 트럼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 입장에선 이번 투자 규모 확대 발표로 트럼프 당선인의 불편한 심기를 맞춰 시간을 벌어 놓고 ‘꼭 공장 건립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고 말해 향후 미국 시장 내 수요 상황에 따라 신규 공장을 설립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좋은 구실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현대차의 현재 미국 시장에서의 공장 가동률과 SUV 라인업 확대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추가로 공장을 지을 이유는 충분하다. 이로 인해 현대차의 미주지역 내 2공장 설립 검토 얘기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오기도 했다. 이 곳에서 올해 새롭게 출시하는 소형 SUV 등을 생산할 것이라는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와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앨라배마 공장 건립에는 17억달러를 투자했으며 지난 2005년 완공 후 쏘나타와 아반떼, 산타페를 생산하고 있다. 연간 생산 능력은 37만대다.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은 12억달러를 들여 지난 2007년 완공했다. K5와 쏘렌토, 싼타페를 생산 중이며 연간 34만대의 차를 생산할 수 있다.

두 공장 모두 가동률이 100%다. 현대차그룹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 단 한 차례(2013년)을 제외하곤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왔다. 수요는 증가세를 보이는데 더이상 생산할 캐파가 없으니 추가 공장을 설립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흘러나온 것. 특히 최근 SUV 라인업과 생산라인이 부족한 현대차의 제2공장으로 무게가 쏠렸다.

업계관계자는 “싼타페가 지난해 현지 판매량이 급증하며 두 곳의 미국 공장에서 생산 중인데다 올해 출시하는 소형 SUV, 인기 차종인 투싼 등을 판매하기 위한 추가 생산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77만5005대를 판매하며 전년대비 성장률이 1.7%에 그쳤다. 성장률이 낮았던 이유로는 미국 현지에서 인기 있는 SUV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점이 꼽힌다. 현대차 미국 판매 차량 중 SUV 비중은 28.3%(20만대)였다. SUV 비중이 절반 이상(59.6%)이었던 기아차와 차이가 크다. 기아차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총 64만7598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년대비 3.5% 성장했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차 역시 수년 전부터 미주지역 내 신규 공장 건립을 고민해 왔다. 하지만 지역을 선정하는 등 본격적으로 공장 설립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신규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선 해당 시장의 업황과 달성 가능 판매량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수 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해야 하고 공장을 돌리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규 공장 설립은 과거의 추이보다 전망이 중요한데 미국의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어렵고 현대차의 성장률도 최근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공장을 추가로 지었는데 생산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가동률이 떨어지고 비용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현대차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대한 압박 수위는 취임일에 다가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이에 백기를 드는 자동차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가장 먼저 미국 자동차 ‘빅3’가 트럼프에 무릎을 꿇었다.

포드는 지난 3일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를 들여 멕시코에 소형차 생산공장을 세우려고 했던 계획을 접고 전기차·자율주행차 생산을 위해 미시간주 공장에 7억달러(약 82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멕시코에 공장 7개를 가동 중인 피아트크라이슬러도 미시간주·오하이오주 공장에 10억달러(약 1조1700억원)를 투자해 일자리 2000개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제너럴모터스(GM)도 미국 내 생산시설에 10억 달러 투자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도요다는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앞으로 5년간 미국에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성영 (rosa834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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