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장 일감 반토막.. 그마저도 인맥 없으면 못구해

신정선 기자 입력 2017. 1. 20. 03:08 수정 2017. 1. 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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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앞둔 서울 새벽시장 돌아보니]
시끌벅적 구인·구직 흥정 사라져
인력 중개인에 잘 보인 사람만 미리 연락 받고 일터로 향해
최근엔 여성들도 많이 나와 "식당보다 고돼도 짧아서 좋죠"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5번 출구 뒤편엔 서울에서 가장 큰 새벽 인력 시장이 있다. 매일 200~300명이 모인다.

지난 16일 새벽 3시 35분. 구로구청 직원 네 명이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10여분 만에 성인 남성 7명이 들어갈 만한 쉼터 두 곳이 생겼다. 천막 안에는 난로와 보리차도 준비됐다. 오전 4시가 넘자 등산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50~60대 남성들이 쉼터로 잇따라 들어섰다. 오전 5시 30분~6시가 되자 100여명이 들락거렸다. 쉼터 앞에는 승합차가 5~10분에 한 대꼴로 정차했다가 대여섯 명씩을 태우고 떠났다.

의외로 조용했다. 인력시장 현장에서 시끌벅적하게 '구인·구직 흥정'이 벌어지는 풍경은 없었다. 황모(57)씨는 "요즘은 오야지(인력 중개인)에게 잘 보이는 사람만 연락을 받고 일을 얻어간다"고 말했다. 오진석(61)씨는 휴대전화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인력사무소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는 "이곳도 인맥 사회"라며 "얼마 안 되는 일자리가 오야지와 안면이 있거나, 고향이 같은 일꾼에게만 돌아간다"고 말했다.

새벽 인력시장은 건설업이 활황이던 1970년대에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현재 서울에는 7곳(5개구)이 남아있다. 구로·광진·동작구에 1곳, 양천·중랑구에 2곳씩이다. 지난 12~19일 새벽 인력시장 5개구 5곳에서 만난 많은 구직자는 "겨울엔 여름에 비해 일자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데, 올겨울은 불황 탓에 작년 겨울보다도 일감이 절반으로 줄었다"면서 "이렇게 힘든 겨울은 IMF(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설 명절이 코앞인 요즘, 날품 가장은 어떻게든 이 계절을 넘겨보려고 새벽 인력시장을 찾는다. 요즘 인력시장은 미리 통보받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대기소로 바뀌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받아 오는 오야지는 작업 1~2일 전에 구직자에게 연락을 한다. 오야지가 일꾼을 고르는 기준은 지연(地緣)이나 인맥. 작업의 숙련도와는 크게 상관없다고 했다. 요즘 기술직 일당은 20만~25만원, 일용직은 11만원 안팎이다. 이들 일당 10%와 차비(4000~5000원)가 오야지의 몫이다. '을'의 처지인 일꾼들은 '갑'인 오야지의 선택만 기다린다. 지난 17일 중랑구에서 만난 강모(60)씨는 "한 달에 20일쯤 일거리를 잡는다. 일을 구하는 데 별 어려움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인력 시장에선 '상류층'에 속한다.

12일 광진구 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일용직 20년 차 서모(56)씨는 한때 공무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오야지에게 잘 보여야 하니 일당을 제때 못 받아도 항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30년 철근 업무 숙련자 유모(61)씨도 "이번 달에 나흘 일했다"며 "매일 나와 보지만 일은 없다.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했다.

최근엔 여성들도 새벽 인력시장에서 자주 눈에 띈다. 구로구에서 만난 여성 김모(56)씨는 "식당에서 일하다 일용직으로 나섰다"며 "12시간 내내 일해야 하는 식당보다 고되지만 일하는 시간이 짧아서 좋다"고 했다. 여성은 현장에서 주로 자재 정비를 맡는다고 한다.

17일 오전 6시 7분 중랑구 면목역 3번 출구 앞. 일감을 찾아 모여 있던 70여명은 승합차를 타고 현장으로, 혹은 빈손으로 자리를 떴다. 김모(56)씨는 오전 6시 30분까지도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혹시나 '땜빵' 자리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한숨을 쉬던 나씨는 "그래도 내일 또 나와야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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