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도시장에는 '7인의 청년 사장'이 있다

2017. 1. 1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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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수제 맥주·웰빙 농산물·치킨·즉석떡볶이 등 다양한 품목, 시장 활력소

뚝도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청년 상인 7명이 9일 저녁, 시장 안 가게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민은영, 배소연, 권혁민, 지창대, 김성현, 홍성호, 양희성 씨.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수제 맥주와 재래시장 음식이 뜻밖에 잘 어울려요. 순대, 홍어무침, 도가니찜 등이 저희 가게 인기 메뉴예요.”

뚝도시장 안 도로 중간쯤 골목으로 들어서면 세련된 맥줏집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성수제맥주×슈가맨’.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곳에나 있을 법한 수제 맥줏집이다. 인사동 ‘크래프트 비어펍’에서 근무한 경험을 밑천 삼아, 김성현(36)씨가 지난해 10평 규모의 가게를 차렸다. 매장 인테리어 비용과 1년 치 임대료 등 1700만원 상당의 지원을 성동구의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을 통해 받았다. 김씨는 “3년 정도 매니저로 현장 경험을 쌓았고 독립할 때가 됐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와 창업을 결정했다”고 한다.

김씨처럼 뚝도시장에서 ‘승부'를 거는 청년들이 또 있다. 저마다 개성을 살렸다. 민은영(35)씨는 ‘호호건강마을'의 주인장이다. 견과류와 렌틸콩, 아마씨 같은 웰빙 농산물을 함께 판다. 민씨는 “묶음 판매하는 방식으로 대형 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한 품목을 마련한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배소연(22)씨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튀긴감자와 치킨을 파는 ‘감닭5900’을 운영한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배씨의 꿈은 음악치료사다. 대학원에 진학해 꿈에 한 발짝 다가서고 싶지만, 먼저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고 학비 등을 해결하고 싶어 창업을 택했다. 배씨는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아 섣불리 장담할 순 없지만 일정한 수준의 매출은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공동체 거점 기능 되살려

‘삼삼오·칠 즉석떡볶이’의 주인장 지창대(36)씨는 자신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소개했다. 늘 창업을 생각했지만 가족이 마음에 걸려 3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직접 만든 소스의 즉석떡볶이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백반과 김치찌개 등을 파는 ‘전주식당’의 홍성호(31)씨는 손맛 좋은 어머니와 협업하는 것이 무기고, 문화기획자 양희성(29)씨는 시장에서 상인·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 기획사 ‘충전소’를 차렸다. 권혁민(27)씨는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 장보기와 배달을 해주는 쇼핑몰 ‘e시장’을 시작했다.

이들 ‘청춘 사장’ 7명은 지난해 6월 앞서거니 뒤서거니 뚝도시장에서 가게 문을 열었다. 성동구가 지난해 진행한 ‘뚝도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이 든든한 힘이 됐다. 성동구는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진흥공단, 뚝도시장번영회와 함께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을 벌였다. 시장 안 빈 점포 등 남는 공간을 활용하는 사업으로, 19~39살의 청년 중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지원 대상이었다.

청년 사장들은 서류와 면접심사를 거친 뒤 40시간의 창업·경영 역량 강화 교육을 받고 나서 점포에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이들은 1년간 점포 임대료를 지원받을 뿐 아니라, 뚝도시장청년상인창업지원사업단(뚝도청춘사업단)을 통해 맞춤형 멘토링, 마케팅 콘텐츠 컨설팅 등 다양한 경영 비법도 전수한다. 청년들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장 상인들의 야유회에 참석하는 등 시장에서 함께 살아갈 채비도 마쳤다.

뚝도청춘사업단의 김강 단장은 2007~ 2013년 지인들과 함께, 문을 닫는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공소에 예술을 접목하는 공간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성수동에서 30년을 산 토박이인 그는 뚝도시장의 변화에 대해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라고 말한다. 김 단장은 “지역공동체의 거점 구실을 했던 시장의 고유 기능을 살려 ‘마트와 다른 시장’ 개념으로 뚝도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청년상회가 입점하고 젊은이들이 시장을 찾기 시작하면서, 지역사회 이벤트인 ‘썬데이 마켓’ 등에 기존 상인의 참여도 늘고 활력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다른 상인들과 협동조합 추진

‘썬데이 마켓’은 지난해 8월 시작해 한 달에 한 번씩 일요일에 뚝도시장을 가르는 도로변에서 열리는 장터다. 기존 시장과 청춘의 만남이 주제다. 외부 청년 상인도 마켓에 참여할 수 있지만 상품은 수공예품으로 제한한다. 기존 시장 상인은 먹거리를 파는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뚝도청춘사업단은 오는 4월까지 지속되는 사업이어서 종료가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 일곱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며 협업을 고민하고 있다. 시장 곳곳에서 따로 일을 벌이고 있지만, 뚝도시장과 미래를 함께하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 협업을 논의한다. 김 단장은 “청춘상회와 시장 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판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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