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활어 뱃길로 들여오자" 뚝도시장 살린 상상력

2017. 1. 1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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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동구·지역 청년 시장 살리기, 활어 공급 운반선 확보가 과제

서해 5도 짙푸른 바닷속에서 놀던 활어가 뚝도시장에서 펄떡거린다. 시장에서 ‘연평도 횟집’을 운영하는 양병현 대표(오른쪽)와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이 활어를 보여주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해에서 한강을 따라 배가 들어오는 날은 하루 매출이 400만원을 훌쩍 넘었어요. 시장 안쪽의 작은 횟집에도 사람이 넘쳐났죠.” 지난해 뚝도시장에 횟집 ‘연평도’를 연 양병현(38)씨는 겨울철이라 연평도에 배가 뜨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지난해 5월20일 서울 성동구 뚝도시장은 1000여 명의 주민들로 떠들썩했다. 연평도·대청도 등 서해 5도에서 갓 잡은 자연산 활어와 싱싱한 수산물을 파는 직거래 장터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장터에서 판매한 광어·농어·우럭·해삼 등은 서해 5도 어민들이 직접 잡은 것들로, 운반도 어민들이 맡았다.

새벽에 연평도를 출발한 어선은 경인 아라뱃길을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 9시간 만에 뚝섬나루에 도착했다. 어민들이 싣고 온 활어와 해산물 800㎏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모두 동났다. 뚝도시장번영회 김준한 회장은 “이런 신나는 판이 벌어진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시장이 살아 꿈틀댔으니”라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1962년 개장한 뚝도시장은 1990년 말까지 4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설 만큼 번창했다. 동대문·남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손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2001년 대형 할인점이 주변에 들어서고, 재래시장을 찾는 주민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상가 공실률이 30%에 이를 만큼 불황을 겪었다. 지금은 130여 개 점포만 영업을 하고 있다.

시장의 쇠락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상인들과 지역 청년·예술가·성동구 등이 2014년부터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뚝섬나루에서 나왔다. 시장 살리기에 골몰하던 이들은 뚝도시장에서 불과 250m 거리에 배가 들어올 수 있는 접안시설(뚝섬나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경인 아라뱃길과 한강을 이용해 서해에서 잡은 싱싱한 자연산 활어를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시작됐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성동구 유통관리팀에서 ‘뚝도활어시장’ 조성 사업을 담당했던 김평선 팀장은 “구상은 누구나 반길 만큼 참신했다. 그렇지만 전례가 없어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다.

아이디어가 나왔으니, 다음 단계는 부딪쳐보는 일이었다. 서울시한강사업본부에 한강을 통해 뚝섬나루까지 배가 들어올 수 있는지, 접안시설은 사용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고기잡이 어선을 200대 이상 갖고 있는 인천 주변의 어촌계 20여 곳에 전화하거나 방문해 사업에 관해 설명했다. 어촌계장들은 대부분 사업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안정적으로 활어를 공급하려면 수산물을 보관하는 집하장과 일정 규모의 운반선이 필요하다며 어려워했다. 그러던 중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한강 뱃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2015년 4월 서해 5도에서 출발한 어선 세 척이 인천을 거쳐 여의도까지 8시간을 달려와 국회에서 ‘활어 시식회’를 열었다는 뉴스였다.

김 팀장은 시식회에 활어를 댄 박태원(58) 연평 어촌계장과 만났다. 박 계장은 “서해 5도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안정적인 판로가 없어 주변에 널린 신선한 수산물을 잡아도 팔지 못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아라뱃길을 이용한 어선의 입·출항 문제와 선착장 설치 등을 놓고 국민안전처를 비롯해 인천해양경비안전서, 한국수자원공사, 한강사업본부, 서해 아라뱃길 정책추진단의 협의가 이어졌다. 2015년 시범 사업으로 10월과 11월에 두 차례 활어축제를 열었고, 이 축제에서 3600여 명의 주민이 서해에서 갓 잡은 싱싱한 활어를 즐겼다.

성동구는 시범 사업에서 자신감을 얻어 지난해 6월부터 뚝도 활어시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장 안에 ‘연평도’ 등 횟집 세 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9~12월까지 매달 둘째·넷째 주 금요일에는 뚝섬나루에서 서해 5도 수산물을 직접 거래하는 ‘장 서는 날’을 열었다.

장 서는 날’은 서해 5도 조업이 재개되는 3월부터 다시 열 계획이다. 대신에 요즘은 매주 금요일 인천에서 트럭으로 횟감들이 올라온다.

자연산 활어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집하장 시설도 지난해 말 설치를 마쳤다. 다만 관리 등의 문제로 아직 운영을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횟집 ‘연평도’의 양 사장은 “최근 서해 5도에서 공급하는 활어의 양이 일정하지 않아 문제”라며 “활어의 안정적인 공급이 시급하다”고 했다. 원활한 활어 공급이 이뤄지려면 전담 운반선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수산물 유통 과정을 총괄하기 위해 서해 5도 어촌계와 시민단체, 뚝도 상인회가 참여하는 협동조합도 설립했다. 성동구는 올해도 뚝도 활어시장을 열 수 있도록 한강 변에 선착장과 판매장을 설치하는 등 힘을 쏟을 계획이다.

지역 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뚝도활어시장은 여전히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그렇지만 이들은 상상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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