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억압에 분노한 작가들 의기투합"

안광호 기자 2017. 1. 1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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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블랙리스트 풍자 ‘곧, 바이’전 ㅣ 기획자 고경일 교수
ㆍ일본 유학시절 위안부 피해자 풍자·미국선 야스쿠니 풍자전도
ㆍ소녀상 제작 작가 등 20여명 참여…오늘 국회 의원회관서 개막

‘곧, 바이!’ 전시회를 기획한 고경일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아래는 고 교수가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 ‘그날’. 정지윤 기자

“예술인들의 창작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차별하고 탄압하겠다는 발상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박근혜 정부에서 소위 ‘찍힌’ 문화예술인들이 ‘풍자전’을 연다.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 등 20명이 나섰다. 이들은 전시회 이름을 ‘이제는 헤어지고 싶은 것들’이라는 의미를 담아 ‘곧, 바이!(soon bye)’전으로 정했다. 20일부터 31일까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다. 전시회를 기획한 고경일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49)는 “현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은 작가들과 그러한 행태에 분노한 작가들이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경향신문과 만난 고 교수는 자신을 ‘대학 강단에 선 풍자만화가’로 소개했다. 1987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만화 명문 교토 세이카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만화를 공부한 후 2001~2002년 이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부 시절에는 현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특히 ‘천황’, 우익, 종교단체 등 일본에서는 금기로 여겨지는 주제들을 카툰으로 풍자하는 전시회를 열면서 일본 우익들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상명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일본 우경화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미국에서 ‘야스쿠니 풍자만화전’을 열었다. 이후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원전 문제 등 사회 이슈들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목소리를 내왔다.

고 교수는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곧, 바이!’전 기획에 들어갔다. 대통령 풍자그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팝아티스트 이하 작가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김운성 작가 부부 등이 ‘재능기부’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전시회에서는 풍자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판화, 조각, 사진, 회화, 영상 등 모두 58점이 선보인다.

작품의 풍자 수위는 높은 편이다. 이하 작가의 ‘샤먼 코리아’는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에 ‘국정농단’의 핵심 최순실씨가 그려져 있다. 고 교수의 ‘그날’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세월호 참사 아이들 옆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미용시술을 받는 박 대통령을 묘사했다.

이렇다보니 전시회 장소를 빌리는 등의 준비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고 교수는 “전시회 타이틀이나 작품 내용을 들은 국회 사무처에서 난색을 표했다”면서 “풍자의 수위가 너무 세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회 기획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나서 국회 사무처와 협의한 끝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것으로 최종 합의됐다. 전시회 개막일인 20일 오후 8시부터 90분간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린다.

그는 전시 장소를 국회로 정한 이유에 대해 ‘침묵하는 국회의원들의 동참’을 위해서라고 했다. 고 교수는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에도 여전히 침묵하는 국회의원들이 많다”면서 “국가기관이 권한을 남용해 문화예술인들의 생존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만큼 책임자 처벌과 별개로 국회가 행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 제도적인 보완 등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전시회가 끝난 이후 다음달부터는 광화문광장에서 2차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사태’를 규탄하기 위한 캠핑촌을 꾸려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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