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린 마젤이 놀랄만큼, 북 클래식 수준 높아요"

손준현 2017. 1. 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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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최연소 나이로 ‘조선 국립교향악단’ 수석피아니스트 발탁.

"경직됐지만,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피나는 훈련을 하니까 테크닉이 뛰어나요. 2008년 뉴욕필 평양 공연 때 조선 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한 로린 마젤한테 직접 들었는데 ‘테크닉이 세계적인데다,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처음 봤다’고 했어요." 특히 북한의 음악교육은 ‘종합체’(전인교육)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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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15년 피아니스트 김철웅
24일 하우스콘서트 무대 연주
북, 바그너·라흐마니노프 금지
하루 9시간 연습 테크닉 탁월

[한겨레]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씨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아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5살 최연소 나이로 ‘조선 국립교향악단’ 수석피아니스트 발탁. 평양무용음악대학과 러시아 국립 차이콥스키음악원 졸업. 아버지는 북한 도지사급, 어머니는 대학 국문과 교수, 외할머니는 평양 최대 백화점 지배인(사장)….

2002년 남쪽으로 오기 전까지 피아니스트 김철웅(43)은 ‘북한에서 잘나가는’ 젊은이였다. 탈북 동기는 “자유로운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연이 있다.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온 김철웅은 음대 여자 동기생에게 프러포즈하려 리샤르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을 연습했다. 그런데 누군가 신고해 국가안전보위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 평양에서 내 음악인생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북한을 떠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남쪽으로 온 지 15년, 김철웅은 백제예술대 외래교수, 서울교대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오는 24일 서울 성동구 성수카페에서 열리는 518회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는 그를 1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북에서 온 지 오래됐지만 이번 무대를 통해 피아니스트로서 온전히 대중과 만난다고 생각하니 기대도 크고 데뷔 무대처럼 설렙니다. 앞으로 하우스콘서트는 물론 더 많은 연주 무대에 설 각오입니다.”

그는 2009년 미국 카네기홀 연주 등 해외공연 경험이 풍부하다. 이번 하우스콘서트의 연주곡은 쇼팽의 녹턴 20·21번과 프렐류드 4번, 드뷔시의 네 개의 작은 모음곡, 함경도 민요 돈돌라리 등이다. 한국에서 키운 첫 제자 이민지와 함께 연주하는 곡도 있다.

남북의 클래식음악 환경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북쪽도 남쪽과 같아요. 바이엘, 체르니, 쇼팽 에튀드는 똑같고, 동요를 편곡한 ‘아동단가’나 ‘혁명군놀이’를 친다는 게 좀 달라요. 대학에서는 쇼팽·리스트·그리그·무소륵스키·쇼스타코비치 등을 배웁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으로 갔다고, 바그너는 히틀러가 좋아했다고 금지곡이에요. 라벨·거슈윈도 금지인데, 드보르자크는 허용됩니다. ‘아메리카’ 등을 작곡했지만, 민족주의자라는 거죠.”

러시아 유학 시절엔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무소륵스키, 글린카를 많이 연습했다. “제가 차이콥스키음악원 다닐 때가 사회주의 붕괴 직후라, 북한 유학생은 저와 첼리스트 두 명밖에 없었어요. 대사관에서 자며 학교 다녔는데, 반찬이 김치밖에 없는 시절이었죠. 개인적으론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과 ‘시즌스’ 6월과 11월을 좋아합니다.”

김철웅은 북한 클래식음악의 수준이 높다고 했다. “경직됐지만,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피나는 훈련을 하니까 테크닉이 뛰어나요. 2008년 뉴욕필 평양 공연 때 조선 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한 로린 마젤한테 직접 들었는데 ‘테크닉이 세계적인데다,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처음 봤다’고 했어요.” 특히 북한의 음악교육은 ‘종합체’(전인교육)를 지향한다. “대학 피아노 전공의 경우, 2년간 조선 장단·조선무용·발레가 필수과목인데다, 작곡 대위법·악기 편성법·조율법·화성악 등 음악가로서 종합체를 만드는 교육을 합니다. 제가 편곡까지 하는 건 그런 교육 덕분이죠.”

그가 한국 주민증을 얻은 지 15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서울로 모셔왔다. 가정을 꾸려 7살 딸과 5살 아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이방인’처럼 느낄 때가 잦다. 그래서 북을 떠나온 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탈북인의 자녀를 모아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싶습니다. 평화의 메신저 역할이지요.”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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