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은퇴②] 안용태 전 SK 사장이 회상한 2000년 트레이드

배중현 2017. 1.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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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배중현]
안용태 초대 SK 와이번스 사장과 이호준. 안 전 사장은 2000년 해태에서 이호준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진 인물이다.
"첫 느낌이 좋았던 선수다."

안용태 초대 SK 와이번스 사장은 이호준(41·현 NC)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본 몇 안 되는 야구 관계자다.

SK NJC(현 SK 케미칼) 전무였던 안 전 사장은 2000년 2월 9일 SK 창단준비팀장으로 부임했다. 생애 첫 야구 관련 업무였다. 평생을 '합섬맨'으로 살았던 그는 그해 3월 31일 열린 공식 창단식에서 초대 사장에 올랐다.

의욕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해체된 쌍방울 선수단을 기반으로 창단한 SK는 개막 첫 달부터 휘청거렸다. 삼성과 개막전에선 승리했지만 4월 한 달 동안 5승18패(승률 0.217)에 그쳤다. 5월에도 다섯 번의 연패를 겪으며 순위 싸움에서 뒤쳐졌다. 안 전 사장은 당시를 돌아보며 "팀이 오합지졸 같았다"고 말했다.

창단 초기 투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SK. SK 제공
타선에선 한 방이 부족했다.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타자 헨슬리 뮬렌(14경기 타율 0.196 1홈런 3타점)과 타이론 혼(23경기 타율 0.317 1홈런 10타점)은 나란히 5월에 짐을 쌌다. 대체 외국인 타자로 하비 풀리엄과 틸슨 브리또를 영입했지만 국내 선수들의 부진이 아쉬웠다. 이동수(96경기 타율 0.259·14홈런·40타점)를 제외하면 장타력을 갖춘 국내 타자가 없었다.

위기 상황에서 눈에 띈 선수가 바로 해태 이호준이었다. 안 전 사장은 "5월 말에 도원야구장에서 해태를 상대했는데, 시설이 워낙 열악했다"며 "원정팀 임원실이 따로 있는데, 그나마 홈팀 임원실의 시설이 조금 나아서 정기주 당시 해태 사장께 같이 야구를 보자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떤 타자가 대기 타석에서 스윙 연습을 하는데 딱 보는 순간 어찌나 듬직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야구를 잘 몰랐지만 좀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체격과 스윙이 정말 좋았다. 마음에 들었다"며 "정 사장에게 '저 친구 누굽니까'라고 물으니까 '이호준 선수인데 우리팀에서 1.5군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트레이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SK는 2000년 5월 30일부터 홈에서 해태와 3연전을 치렀고, 이호준 트레이드는 6월 1일 단행됐다.

2000ㄴ년 6월 이적 후 SK 유니폼을 입은 이호준의 모습. SK 제공
한 마디로 선수에 '꽂혔다'. 안 전 사장은 정 전 해태 사장에게 "선수간 트레이드, 현금 트레이드 등 모든 방법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해태 구단이 고심 끝에 선수간 트레이드를 원하자 "이승호만 제외하고 원하는 선수를 찍으라"고 말했다. 왼손 투수 이승호는 고졸 신인으로 그해 신인왕을 차지한 SK의 기둥이었다. 안 전 사장은 "해태에서 투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가급적이면 프랜차이즈인 광주 출신을 원했고, 최종적으로 성영재 선수가 낙점을 받았다"고 전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코칭스태프에서 '이호준-성영재 맞트레이드'를 반대했다. 야수를 투수와 맞교환하는 것에 반발이 심했다. 성영재는 1999년 극심한 부진(5승16패 2홀드 평균자책점 6.10)을 겪었지만 10승을 경험한 몇 안 되는 SK 베테랑 중 한 명이었다.

안 전 사장은 "해태와 합의 후 단장을 불러서 트레이드를 진행하라고 하니까 현장의 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며 "강병철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 '관중들에게 재밌는 야구를 보여 줘야 하지 않나, 타격도 안 되고 투수력도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거냐. 내 선택을 따라와 달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호준-성영재 맞트레이드'는 안 전 사장이 진행한 첫 번째 트레이드였다.

해태-SK-NC를 거치면서 KBO를 대표하는 베테랑이 된 이호준. 위 사진은 2000년 SK, 아래 사진은 2015년 NC 시절의 모습. IS포토, SK 제공
'야구 초급자' 안 전 사장의 눈은 정확했다. 안 전 사장은 2002년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지만 이호준은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2003년에는 30홈런과 100타점을 동시에 달성하며 팀의 첫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이호준은 "트레이드가 됐을 때 사실 놀랐다. 손목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안 사장님이 강력하게 트레이드를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많이 챙겨 주셨다"며 "트레이드된 그해 손목 수술을 받았을 때는 병원 회복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꽃다발을 들고 앞에 서 계시더라. 이런 사장님도 계시구나 싶었다. 고마우신 분이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안 전 사장은 "정 사장께서 흔쾌하게 트레이드에 동의해 주셔서 우리가 덕을 봤다. 첫 느낌이 좋았던 선수였다. 그래서 달려들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어 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이호준에 대해 "SK에 와서 (좋은 쪽으로)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SK 이적 후에 결혼도 했고, 정말 열심히 했다. 연장 선상으로 NC에 가서도 성실하게 했다더라. 입담도 좋고 사회성도 탁월해 제2의 인생도 성공할 것으로 본다"고 은퇴 후 삶을 격려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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