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허물 벗듯.. 쇼핑뒤 헌옷·가방 버리는 유커

김민정 기자 2017. 1. 1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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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탈바꿈.. 뒤처리 안해 호텔·지하철 등 쓰레기 몸살]
연락하면 "보관해달라"하곤 귀국.. 경찰 유실물함엔 유커 가방 넘쳐

지난 13일 오전 서울 명동의 한 관광호텔 지하 2층 쓰레기 처리장. 남자 직원 두 명이 숙박객들이 객실에 버리고 간 낡은 여행가방 10여개를 쓰레기장으로 옮기느라 진땀을 뺐다.

쓰레기장 한쪽에는 이미 버려진 여행가방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중국 상표가 붙은 헌 옷가지와 신발 등이 가득했다. 이 호텔 직원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백화점에서 새로 여행가방과 의복을 구입한 뒤 입고 왔던 헌 옷과 물건들을 헌 가방에 넣어 객실에 버리고 간 것"이라며 "연락을 해보면 '일단 보관해달라'고 하지만 찾아가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이 무단 투기하고 간 여행가방 때문에 서울 주요 관광지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날 명동 일대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업소 10곳을 확인한 결과 모두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가방 처리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객실 수가 200여개인 한 호텔 청소부는 "바퀴가 달린 여행가방은 부피도 크고 재활용도 어려워 폐기물 처리 업체에서도 수거하는 것을 꺼린다"며 "쓰레기 부피를 줄이기 위해 몸체와 바퀴, 손잡이를 하나하나 분리해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호텔은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5000원을 받지만, 호텔 직원들 모르게 몰래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돈을 받기 힘들다고 한다.

명동의 중국인 관광객 대상 여행사 대표 류모(43)씨는 "투숙객들이 '캐리어(바퀴 달린 여행가방)'를 버리고 가는 통에 호텔 관계자들의 항의를 많이 받는다"며 "중국인 관광객들은 백화점·면세점뿐 아니라 쓰레기 투기에서도 단연 '큰손'"이라고 했다.

버스 터미널이나 거리 한복판에 가방을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 쓰레기 수거는 구청과 경찰 몫이다. 경찰은 버린 가방을 발견하면 유실물로 처리해 주인을 찾을 때까지 최장 9개월 보관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여행가방은 부피가 커서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 유실물 보관함은 서울고속터미널과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발견된 유커 가방으로 미어터질 지경이다. 경찰 관계자는 "여름철에 들어온 짐에서는 악취가 나 밖에 내놓기도 한다"며 "주인을 찾으려고 가방을 열어도 헌 옷들과 다 쓰고 난 세면도구, 중국어가 적힌 물건들이 나오지만 정작 신원이 드러나는 물건은 없다"고 했다. 명동 등 중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를 관할하는 남대문경찰서도 따로 창고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방째로 짐을 버리고 가는 건 옷가지 등을 대량으로 쓰레기통에 버릴 경우 미화원이나 터미널 직원에게 제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릴 곳이 마땅치 않자 잃어버린 물건처럼 두고 가는 것이다. 서울 중구청 청소행정과에도 '명동이나 동대문 일대 매장 앞에 주인 없는 여행가방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주인을 찾아 쓰레기 무단 투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해야 하지만 중국으로 떠나버리면 그만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1인이 우리나라에서 소비한 평균 금액은 항공료를 제외하고 약 274만원이었다. 해외 관광객 중 가장 씀씀이가 크다. 한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돈 많이 쓰고 가는 건 좋지만 한국이 쓰레기장도 아니고 허물 벗어놓듯이 길바닥과 호텔에 짐을 버리고 가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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