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위해 연극 올린 세월호 엄마들 배우 다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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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맞서 연극인들이 서울 광화문에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세웠다.
세월호 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23·24일 이 무대에서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을 올린다.
치유 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 세월호 어머니들은 이제 배우가 다 됐다.
그는 안산 지역축제와 스토리텔링 연극을 만들었고, 세월호 이후 다양한 문화기획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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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맞서 연극인들이 서울 광화문에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세웠다. 공공극장이 거의 외면했던 세월호, 일본군 위안부, 해고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천막극장이다. 세월호 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23·24일 이 무대에서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을 올린다. 세월호 가족 김명임, 김춘자, 김성실, 김순덕, 이미경, 박유신, 김정해씨가 배우로 출연한다. 안산에 기반을 둔 극단 걸판의 오세혁 작가가 대본을 쓰고, 역시 걸판의 김태현 연출가가 참여했다. 치유 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 세월호 어머니들은 이제 배우가 다 됐다. 김 연출가한테 4·16가족극단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안산 지역축제와 스토리텔링 연극을 만들었고, 세월호 이후 다양한 문화기획에 주력하고 있다.
2015년 ‘극단 노란리본’ 첫 만남
연극에 마음 여는데 몇 달 걸려
비정규직 애환 담은 작품 하며
대사 한마디에 울고 실수에 웃고
‘배우 꿈’ 딸 대신 무대 선 엄마도 광화문 블랙텐트서 23·24일 공연
-단원고와는 참사 전부터 인연이 있었지요?
“2014년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걸판 단원 한 명이 단원고 연극반을 맡아 작품을 준비중이었어요. 그 단원 말로는 침몰 순간에도 연극반 단톡방에서 서로 카톡을 주고받았다고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메시지 옆 숫자가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1·2학년으로 이뤄진 연극반의 1학년들은 충격이 컸지만 ‘우리끼리라도 공연하겠다’고 했어요. 그해 청소년연극제에서 단원고가 특별상을 받았어요.”
-가족극단은 어떻게 생겼나요?
“2015년 10월 말 쯤 세월호 어머니들은 치유 목적으로 연극 수업을 제안받고,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셨을까 하고. 그런데 제안만 받은 거고 마음의 준비는 안 돼 있었어요. 마음을 열기까지 몇 달이 걸렸죠. 먼저 4~5분만 모시고 희극 위주로 희곡 읽기를 했어요. 리딩하면서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도록요. 그 중 가장 맘에 든다는 작품이 <그와 그녀의 옷장>이었죠. 2016년 3월쯤 새로 어머님 4분이 들어와 지금의 8명이 됐어요. 그해 7월에 쇼케이스를 진행하고, 10월 말 <그와 그녀의 옷장> 전체를 본 공연으로 올렸죠.”
이후 공연은 일사천리다. 11월4~6일 서울 대학로 마리카소극장에서 시작해 안산 경기도미술관, 당진, 은평구, 서울 성미산 동네연극축제, 부산에서 잇달아 공연했다.
-연극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학부모 중 많은 분이 반월 시화공단 노동자고, 비정규직이 많아요. 세월호 이전 어머님들의 이야기라고 봐도 되고, 그동안 어머님들을 위로했던 안산시민 이야기라고 봐도 됩니다. 옴니버스 극인데요, 아버지의 옷장, 어머니의 옷장, 아들의 옷장으로 이뤄졌어요. 옷장 속의 작업복, 경비복, 투쟁조끼, 너무 입히고 싶었던 양복과 넥타이 등을 소재로 비정규직의 애환을 그렸어요. 하지만 코믹 코드가 촘촘해, 막 웃다가 순간 눈물을 훔치는 그런 내용입니다.”
-출연 가족들을 소개해주세요.
“김명임(수인 엄마)씨가 리딩하는 모습을 보며 ‘아, 공연이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장 안정적으로 연기하고 애드리브도 자유자재입니다. 늦게 얻은 아들인 수인의 첫 출근을 보고 싶었지만 결국 참사로 못 보게 됐잖아요. 이번에 아들 출근을 돕는 엄마 역을 하며 많이 아팠고 연극을 통해서 큰 위로를 얻는다고 합니다. 아들 역을 맡은 김춘자(동수 엄마)씨는 연기를 가장 어려워 하던 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연기가 많이 느셨죠.(웃음) 동수 엄마는 아들 역을 하다가 아들 생각에 많이 울었고요.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그런가 하면, 김성실(동혁 엄마)씨는 우리 극단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입니다. 마음을 모으고 규칙을 제시하며 단체를 이끕니다. 김순덕씨는 생존학생 애진이의 엄마입니다. 희생학생 엄마들이 생존학생 엄마를 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희생학생 어머니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함께하자고 했어요. 아빠 역을 맡은 이미경(영만 엄마)씨는 진실규명에 누구보다 앞장섭니다. 그 덕에 저도 많이 배웁니다.”
-어머님들마다 사연이 다 많은 것 같네요.
“박유신(예진 엄마)씨는 에너지 덩어리죠. 다역을 맡으면서도 정확하고, 코믹 연기를 잘 살린달까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던 예진이는 수학여행 가기 전날 늦게까지 연습하다 왔대요. 카톡 메인 사진에는 아직 서울예대 엠블럼이 있어요. 딸의 꿈을 대신 이루려고 연극을 했는데 너무 잘 맞는대요. ‘우리 딸이 연극을 선물한 것 같아’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김정해(주현 엄마)씨는 늘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노란리본에서 꿈을 이룬 셈이죠.”
-연습이나 공연 중에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텐데요.
“어머님들이 연습실 바닥을 손으로 때려가며 파안대소할 때가 기억에 남네요. 내용이 재밌어, 실수가 재밌어 함께 웃었어요. 대사 한 마디에 울컥하는 순간도 있었죠. 이를테면 순애의 대사 ‘지겹죠? 이렇게 싸우는 게. 이렇게 싸우러 계속 와주는 게. 이렇게 싸우러 계속 와주는데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게’라는 대목입니다.”
-블랙텐트에서 공연하는 느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예술인으로서 예술의 방식으로 규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했기 때문이라면 세월호 어머님들로 구성된 ‘노란리본’의 공연이 딱 맞다고 생각했어요.”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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