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고리즘을 넘어서]③헬조선에서 출산은 사치 혹은 공포..'부포 세대' 늘어난다

이성희 기자 2017. 1. 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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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아빠가 될 수 없는 한국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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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약자석에 있는 임산부 그림에 집요하게 엑스(X) 표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더군다나 지금 낳아봤자 나보다 더 가난하게 살 텐데, 낳지 않는 게 나의 모성이라고들 해요.”

비혼여성이자 비연애인구 전용 잡지 ‘계간홀로’ 편집장인 이진송씨(30)는 저출산 심화 현상의 원인을 이렇게 정리했다. 부모도 아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 ‘헬조선’의 현실이다.

■ “아이요? 이민 가서라면 모를까”

젊은 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곤궁함 탓이다. ‘인구절벽’ 현상은 고용 불안과 높은 주거비용 및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안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아우성인 셈이다.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자는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은 6억원으로, 대개의 직장인들이 15년간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돈도 만만치 않다. 부모들은 이제 막 말을 떼기 시작한 생후 22개월부터 사교육을 시키며, 아이 1명당 한 달 평균 22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다. 아이 하나를 낳아 대학을 졸업시키는 데 드는 양육비용은 3억896만원이나 된다. 그렇게 키워도 아이가 취업하지 못하면 캥거루처럼 끼고 살며 경제적 지원을 계속해줘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거에는 결혼과 임신, 출산을 의무로 받아들였더라도 요즘 세대에게는 선택일 뿐이다. 결혼 4년차 이익형씨(38)는 “1년에 2~3번은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아이를 갖게 되면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이 매몰될 것 같다”며 “아이를 낳아 기르기 힘든 한국 사회에서 그런 환경을 극복할 만큼 아이에 대한 기대나 낳고 싶다는 절박함 등이 없다”고 말했다.

‘임신·출산=이민’이라는 인식도 만연해 있다. 이씨의 아내인 변정정희씨(36)는 “남편과 간혹 ‘임신은 우리가 이민을 결정하는 순간’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결혼 전부터 남편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조은미씨(35)도 “한국에서는 자식을 키우는 목표를 찾을 수 없다. 행복한 삶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인가”라며 “스웨덴 등으로 이민을 가면 아기를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혼을 해도 아이는 최대한 늦게 낳는다는 ‘키즈 딜레이(kids delay)’라는 신조어는 이런 세태를 방증한다. 첫아이를 낳았지만 둘째 낳기를 포기하는 기혼 여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6세 딸을 키우는 ‘워킹맘’ 이영주씨(41)는 “첫아이는 멋모르고 낳아서 어떻게든 키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둘째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여성들에게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회라는 악조건이 하나 더 추가된다. 여성의 몫으로 너무도 당연시해온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맘고리즘’은 여성 개인에게는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 등 모든 삶의 영역을 뿌리째 흔들어놓는다. 그럼에도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온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이기보다는 미래 인력을 생산하는 도구쯤으로 취급받는다. 혼자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여성은 가정을 꾸리는 순간 이중 고충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기저에는 ‘엄마처럼’ 순응하며 살지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그간 엄마(혹은 언니, 친구)를 통해 남성 중심의 가족 문화에서 여성이 엄마와 아내, 며느리 역할을 수행하며 얼마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지 목도해왔기 때문이다. “맞벌이하는 둘째 언니가 아이를 엄마한테 맡겨요. 직장도 아이 때문에 ‘칼퇴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겼죠. 거기다 종갓집 맏며느리라 명절 때마다 갖은 고생을 해요. 저는 그렇게 살 용기가 없어요. 회사생활만으로도 힘든데,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까지 할 자신이 없는 거죠.”(41세 비혼여성 강모씨)

이른바 가임기 여성으로 분류돼온 지금의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차별이 없는 것처럼 키워졌고, 그렇게 자랐다. 하지만 결혼·출산·육아를 거치면서 자신의 성 역할을 필요 이상 자각하고 강요받는 것이다.

최근 여성들이 ‘결혼할 상대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비단 경제적 조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 평등 관점을 가진 남성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성차별 문제에서 비롯된다”며 “다만 저출산 문제는 교육, 노동, 주거, 가부장적인 인식의 변화 등이 얽혀 있는 만큼 긴 호흡에서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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