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하트 속에서 '천년 사랑' 맺을까

2017. 1. 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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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古都 부여 스토리 투어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성 남문지에 자리한 하트 모양의 '사랑 나무' 아래에서 연인이 사랑을 약속하고 있다.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이 그림같은 풍광을 펼쳐놓고 있다.
백제 동성왕 때 쌓은 성흥산성
국내 최고의 인공연못 궁남지와 포룡정

백제의 도읍지였던 충남 부여에는 산성이 많다. 유명한 부소산성을 비롯해 청마산성, 석성산성, 증산성, 성흥산성 등이 대표적이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산에 테를 두른 듯 쌓은 테뫼식 산성인 성흥산성은 부소산성의 명성에 가려 있지만 역사적이나 전략적 가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산성이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성흥산에 오르면 부여·논산·강경·한산·홍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날이 좋으면 익산의 용화산과 장항제련소까지 바라볼 수 있다. 드넓은 전망을 갖고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옛날의 성터가 있다’고 적었다. 이 산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4호로 지정됐다.

부여군 임천면에 자리한 성흥산(해발 268m)은 옛날 백제의 수도 부여로 드는 뱃길인 백마강(금강) 언저리에 솟은 산이다. 동네 뒷산처럼 야트막하지만 산정에 오르면 부소산을 끼고 돌아 남쪽으로 실뱀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백마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서해에서 백마강을 거슬러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감시하는 데는 그만이다. 부여 땅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잡히고 그 너머로 논산 반야산과 익산 미륵산까지 눈 안에 들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이에 백제의 성왕이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기 전 동성왕은 백마강 수로를 살필 수 있는 이 산에 성을 쌓았다. ‘동성왕 23년(501년) 8월에 가림성(加林城)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에게 성을 지키도록 명령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이 토석혼축성(돌과 흙을 섞어 쌓은 성)이 바로 성흥산성이다. 당시 이 지역의 이름은 가림군이었다. 백제시대에 축조된 성곽 가운데 축조 연대가 확실한 유일한 데다 옛 지명을 알 수 있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가림성 수성의 임무를 받은 위사좌평 백가는 산성을 지키라는 동성왕의 명령에 불만을 품고 기회를 노리다 사냥에 나선 왕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뒤이어 즉위한 무령왕에게 잡혀 처형당한다.

이 산성은 사비로 천도한 538년보다 37년이나 앞서 축조됐다. 이는 웅진으로 침투하는 적을 막기 위한 배후 방어선의 기능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흥산성은 백제 패망 이후 백제 부흥 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까지 군사·지리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산성 입구는 남문지다. 성루나 성문이 남아 있지 않다. 산성은 둘레가 1.5㎞, 성벽 높이는 3∼4m에 이른다. 30분이면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성벽 아래 산비탈이 가팔라 쉽게 오를 수 없다.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성이 험하고 견고해 공격하기가 어렵다’고 했을 만큼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우물 3곳과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등이 남아 있다. 1990년대 홍수로 인해 기존 산성이 무너지면서 보수공사를 하면서 옛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오랜 세월 풍상을 겪으며 숱한 역사를 지켜봤을 거대한 느티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높이 20m, 몸통 둘레 5m에 수령 400년을 훌쩍 넘긴 이 나무는 ‘사랑나무’로 불린다. 나무 한쪽으로 부드럽게 꼬여 퍼져나간 가지 하나가 나무 몸체와 어우러져 커다란 ‘하트’ 모양을 그려낸다. 완벽한 하트는 아니어도 제법 그럴싸하다.

굳이 하트 모양이 아니더라도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가지는 고루 넓게 퍼져 넉넉한 모습을 펼쳐놓고 땅 위로 드러난 거대한 뿌리는 흙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다. 주변이 탁 트인 성벽 위 한쪽에 우뚝 솟아 중중첩첩 이어지는 산줄기들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드라마 ‘계백’ ‘여인의 향기’ ‘신의’ 등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사랑나무라는 이름은 드라마 ‘서동요’ 방영 후 서동왕자와 선화공주가 이곳에서 사랑을 나눴다고 해서 붙은 이름. 달콤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곳을 찾는 연인과 부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날씨 좋은 날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하트 모양 안에서 찍는 사진이 압권이다.

부여를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궁남지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있는 곳이다. 궁남지는 ‘궁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634년 백제 무왕 때 만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다. ‘삼국사기’에 ‘궁궐의 남쪽에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를 파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궁남지는 1965년 복원한 것이다. 원래 규모의 3분의 1쯤이라고 한다.

궁남지 내 ‘뜬 섬’에는 포룡정(抱龍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백제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에 살던 용이 나타나자 의식을 잃은 뒤 무왕을 잉태하게 됐다는 탄생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뜬 섬으로 이어지는 나무 다리를 건너면 정자로 들어갈 수 있다.

■여행메모
성흥산성 바로 밑 주차장까지 포장 도로… 마·연 주제로 한 전통음식 등 먹거리 풍성

수도권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부여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이후 당진영덕고속도로, 서천공주고속도로를 잇달아 타고 가다 서부여나들목에서 나오면 편하다. 부여가림성은 부여 읍내에서 4번국도를 타고 부여대교를 건넌 뒤 규암교차로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다 군사삼거리에서 임천면으로 빠져 '성흥산성' 방면으로 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부여로 가는 버스를 탄 다음 임천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성흥산 중턱까지는 좁은 아스팔트 도로가 만들어져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성곽 남문지 밑에 주차장과 매점·화장실이 있다. 주차장에서 사랑나무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낙화암과 고란사, 백마강을 비롯해 부소산성, 정림사지 오층석탑,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등 백제문화 유적은 대부분 부여 읍내에 몰려있다. 부소산성 정문 맞은편 '백제의 집'(041-834-1212)에서는 마와 연을 주재료로 한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낙화암 아래 구드래 나루터에 자리한 나루터식당(041-835-3155)은 백마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매운탕과 장어구이를 잘하기로 이름난 집이다.

부여=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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