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SK 신임단장, 성공 스토리의 두 얼굴

이준목 입력 2017. 1. 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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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팀 가지 않겠다던 염경엽, 논란 많은 SK행

[오마이뉴스이준목 기자]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의 SK행이 결국 현실로 성사됐다. 당초 거론되었던 감독직은 아니지만 어쩌면 더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는 단장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이유야 어찌됐든 논란의 여지가 남을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염경엽 SK 신임 단장은 광주제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1991년 태평양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 시절 초창기에는 수비형 내야수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크게 두각을 나타낸 편은 아니었다. 염 단장의 현역 시절 통산 타율은 0.195에 불과하다.

염단장은 오히려 은퇴 이후 프런트와 지도자를 거치며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친정팀인 현대에서 운영팀장과 수비코치를 역임했고, 이후 LG로 소속을 옮겨 스카우트, 운영팀, 수비코치 등을 거쳤다. 2011년에는 넥센으로 팀명이 바뀐 친정으로 돌아와 작전-주루코치로 일하다 2012년 넥센 감독으로 깜짝 발탁됐다.

초보 사령탑임에도 불구하고 염 단장은 넥센에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한국시리즈 진출-4년 연속 가을잔치행이라는 화려한 성과를 올리며 팀을 일약 신흥강호로 발돋움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지난해 박병호-강정호-유한준-손승락-밴헤켄(시즌 중반 복귀) 등 투타의 주역들이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 꼴찌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넥센을 전문가들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3위로 이끈 장면은 단연 백미였다. 삼국지 제갈량에 비유한 '염갈량'이란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지난해 LG와의 준플레이오프를 마지막으로 돌연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며 마무리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구단 운영진과의 불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현실이 돼 버린 염경엽의 SK행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패배 이후 자진 사퇴를 발표한 염경엽 전 감독.
ⓒ 넥센 히어로즈
염 단장은 이미 넥센 감독 시절이던 지난해부터 SK행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차기 시즌 SK 감독에 내정되어 2016 시즌 종료 이후 넥센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SK는 당시 김용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재계약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멀쩡히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감독이 다른 팀의 차기 사령탑으로 내정되었다면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염 단장과 넥센 구단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도 이적설과 무관하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염 단장은 소문을 강하게 부정하며 "나를 자꾸 흔들면 정말 떠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언론뿐 아니라 이적설로 자신을 압박하는 넥센 구단에 대한 항의성의 메시지였다. 염 단장은 시즌 종료 후 실제 넥센 사령탑에서 사임하는 상황에서도 SK행에 대해서는 끝까지 부정했다. 1년 정도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넥센은 구단과 상의도 없이 돌연 일방적으로 시암을 발표한 염 단장의 결정에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결국 사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원만하게 마무리했다. SK도 염 단장의 영입을 부정하며 트레이 힐만 신임 감독을 영입하면서 이적설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민경삼 전 단장이 물러나고 돌연 염경엽 단장의 SK행이 결국 성사되며 상황은 다시 미묘해졌다. SK는 지난 겨울 염경엽 단장의 넥센 사령탑 사임 이후부터 접촉했고 선수 육성과 시스템 구축에 능력을 보인 염 단장이 차기 단장으로 적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해외연수를 준비 중이던 염 단장은 SK의 적극적인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 넥센과의 계약이 마무리된 만큼 염 단장의 SK행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어찌됐든 말바꾸기로 신의를 저버린 모양새가 되어 도의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해 거론된 내정설이나 사전 접촉설과는 무관하다는 게 양측의 입장이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염 단장은 지난해 '내 야구관에 밀약과 배신은 없다", "팀을 그만둔다고 바로 다른 팀에 가지 않는 게 넥센에 대한 예의이자 인간의 도리" 같은 발언을 통해 강한 어조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본인의 말대로라면 지금 염 단장은 인간의 도리도 저버리고 넥센을 배신한 꼴이 됐다. 만일 감독이 아니라 단장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면, 정치인 뺨치는 '기름장어 화법'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SK 구단 역시 아무리 염 단장이 필요했다고 해도 굳이 이런 식의 구설수를 자초하면서 영입을 강행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SK는 왜 염경엽에게 단장을 맡겼나

SK가 염 단장을 영입하며 의도한 포석은 분명해 보인다. 현역 프로선수를 지냈고 감독까지 지낸 경기인 출신 단장의 영입으로 프런트의 권한을 강화하고 시스템 야구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SK는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전성기 시절 이후 김용희-이만수 감독 체제를 거치며 프런트 중심의 육성 야구로 방향을 선회하려고 했으나 시행착오를 겪었다.

SK의 선택은 아직 한국야구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신임 외국인 감독의 약점을 노련한 프런트를 통하여 보완하며 현장과 프런트의 분업화 체제를 보다 공고히하려는 계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염 단장은 넥센 사령탑 시절부터 시스템을 구축해 젊은 선수들을 즉시 전력감으로 키우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염 단장은 넥센 감독으로 일한 것은 4년뿐이지만 사실 은퇴 이후 경력으로 놓고보면 현대와 LG를 거치며 프런트로 일한 시간이 더 길었다. 그만큼 현장과 행정 양쪽에서 프로야구단의 전반적인 실무에 모두 능숙하다는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염 단장은 사실 오래전부터 감독보다는 단장직을 야구인생의 최종 목표로 거론할 만큼 애착을 보여왔다는 후문이다. 최근 프로야구는 10개 구단 중 5개팀에서  경기인 출신 단장이 선임될 만큼 프런트의 전문화가 유행을 타고 있다. 염 단장은 경기인 출신 단장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경력을 자랑한다. 감독까지 지낸 단장은 한화 박종훈 단장에 이어 두 번째인데 포스트시즌과 한국시리즈진출 경험을 가진 단장은 염 단장이 유일하다.

염 단장의 부임으로 더욱 주목받게 된 것은 다음 시즌 넥센과의 비교다. 넥센은 염 단장의 후임으로 역시 프런트 출신인 장정석 신임 감독을 임명하여 화제를 일으켰다. 지난해 넥센의 돌풍이 감독 염경엽의 능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넥센 시스템의 힘이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염경엽 단장과 직접적인 대결은 아니지만 다음 시즌 넥센과 SK의 맞대결 역시 새로운 라이벌 구도로 주목할 만하다.

평범했던 선수시절을 거쳐 프런트와 감독으로서, 그리고 이제는 40대의 나이에 경기인 출신 단장으로서 인생역전의 성공신화를 이뤄낸 염경엽 단장이 SK에게도 결실을 이뤄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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