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모는 게 죄인가요.." 택시기사 수난시대

이창수 기자 2017. 1. 1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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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등 운전자 폭행 매년 3000건 이상 / 40일에 한 번 꼴로 구토 등 '차량 오염' 겪기도

“아, 못 줘요. 무슨 5만원이예요!”

지난달 29일 새벽 서울 종로구의 한 도로에서 60대 택시기사 이모씨와 승객 최모(50)씨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다. 연말을 맞아 술을 거나하게 마신 최씨가 취기를 참지 못하고 택시 내부에 토를 했기 때문. 택시기사 이씨는 세탁비로 5만원을 요구했으나 최씨가 이를 거부하면서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현장 중재에 나선 경찰은 “서울시 시행령에 세차 실비 및 영업손실 비용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면서도 “이런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택시기사와 승객 사이에 시비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17일에는 만취한 현직 검사가 승차요금을 내지 않고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소속 진모(41) 검사는 이날 서울 압구정동 자택 인근에서 택시요금 1만7000원을 내지 않고 내렸다가 택시기사 박모(59)씨가 “요금을 달라”며 쫓아오자 박씨의 가슴을 팔꿈치로 수차례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진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취 상태였던 진씨는 결국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연초를 맞아 신년회 등 각종 술자리가 많아지면서 택시기사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개정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으로 운전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승객들이 술에 취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18일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인천 남구 갑)이 경찰청으로부터 지난해 제출받은 ‘운전자 폭행’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운전자 폭행 처리 건수는 1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 맞는’ 운전자들은 △2013년 3271건, △2014년 3243건, △2015년 3111건 등 매년 3000건이 넘었다. 하루 평균 9~10명의 버스·택시기사가 폭행을 당한 셈인데,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 운전자 폭행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에도 만취한 서울시 구청공무원이 “택시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택시기사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때리는 일이 발생하는 등 택시기사들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폭행은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단 점에서 위험하다. 지난해 10월 서울 당산역 부근에서 만취해 택시에 탄 이모(47)씨가 ‘느리게 간다’는 이유로 3분 넘게 택시기사 조모(58)씨의 뺨과 머리를 때렸고, 이를 피하려던 조씨가 앞차를 들이 받아 결국 5중 추돌 사고로 이어져 8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7년부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개정돼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시비를 붙는 상당수 승객들이 술에 취한 경우가 많아 합의 후 불기소 처분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 실정이다. 도로 위에서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운전자 폭행이지만, 매년 전체의 채 1%가 되지 않는 30명가량만이 구속으로 이어지는 등 관련 처벌 법규들이 사실상 ‘솜방망이’란 평가다.

만취승객으로 인한 차량 오염도 대표적인 골칫거리다. 지난 2014년 서울택시조합이 103개 택시 업체 4773명의 기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피해 사례 2만5631건 중 차량오염이 42.5%(1만892건)나 됐다. 이를 서울 내 택시업체 255개사 3만6000여명에 적용하면 택시기사 1명이 40일마다 구토 등으로 인한 차량오염 피해를 겪는 셈이다.


이에 서울시에서 2015년 2월 택시운송사업약관을 개정해 구토 등으로 차량을 오염시키면 최대 15만원을 배상하도록 했지만, 법적인 강제성이 없고 취객 손님이 많은 특성상 돈을 받으려다 물리적 다툼으로 번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차량 내에서 욕설이나 인격모독 등 언어폭력도 적잖게 발생하지만 불특정 또는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공연성이 전제되지 않아 형법상 모욕죄 성립이 어렵단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에 택시 운전석과 승객 좌석 사이 칸막이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제안이 벌써 수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지만, 개인이 설치비용을 대야하는 등 문제로 가로막혀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서울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등 버스는 이미 2006년 4월부터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 격벽 설치를 의무화시킨 바 있다.

택시기사 정모(43)씨는 “승객이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걸어도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건이 장기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택시기사 박모(48)씨도 “법인택시기사들은 특히 사납금을 내야하는 등 어려운 처지인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택시기사들을 막 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전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배려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창수·임국정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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