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선의 숨은 프레임 - 자긍 vs 자학

기자 2017. 1. 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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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왕년엔 어땠다며 유난히 옛날 얘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가 과거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나이 들수록 누구나 과거를 더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지도자라면 그래선 안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불가분이지만 과거에 힘을 쏟는 만큼 미래 를 개척할 에너지는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그럴 조짐이 보인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을 신호탄으로 대선의 막이 올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시계도 빨라지는 분위기다. 벚꽃 대선은 아니더라도 진달래나 철쭉 대선이 될 수 있다. 주자들도 분주해졌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일성으로 ‘정치교체’와 ‘국가 대통합’을 외쳤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권교체’ ‘국가 대청소’와 대비되면서 프레임 경쟁도 본격화됐다.

문 전 대표는 최근 출간된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주류 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를 망쳐온 근본 원인의 확실한 청산’을 외쳤다. 그 대상은 ‘친일에서 반공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화장만 바꾼 허위의 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절호의 계기라면서, 탄핵이 없으면 “혁명밖에 없다”고도 했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풍토”의 청산을 공언한 것과 상통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친일·부패·기득권 세력이 판치는 ‘실패한 나라’이고, 이승만·박정희 묘소 참배 거부는 당연하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연설을 통해 “우리가 이룩한 국제적 위상 뒤에는 그만큼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있다”면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어 다시 세계 일류 국가를 만드는 데 제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를 건국·산업화·민주화의 기적을 일군 ‘성공한 나라’로 평가하고, 그 과정의 부작용을 치유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노무현 묘소에 모두 참배하는 것이 이상하진 않지만 정체성은 모호하다.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런 인식의 차이는 이번 대선의 숨겨진 진짜 프레임이다. 자랑스러운 나라와 부끄러운 나라, 자긍(自矜)과 자학(自虐)의 문제다. 과거의 잘못은 시정해야 하지만 오직 나의 잣대, 현재의 기준,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겠다면 위험하다. 그리고 개인이든, 국가든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면 과거보다 미래를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국민에게, 특히 미래 세대에게 대한민국은 ‘헬조선’이고, 권위(establishment)를 부정해야 하는 나라다.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나라, 출생률은 최저이고 자살률은 최고인 나라, 최상층의 부(富)만 급속히 늘어나는 정의롭지 못한 나라다.

실제로 그런가. 그렇지 않다.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상황이 더 나쁜 것도 아니다. 국가 신용등급은 올랐고, 무역 수지도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살림이 어렵다지만 해외 관광객은 꾸준히 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오르내리니 학력에 맞는 ‘좋은 직장’ 취업이 어려운 것은 이상하지 않다. 자살률 증가와 빈부 격차 확대를 말할 땐, 그 이면에 있는 급속한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심지어 세계 꼴찌 수준인 우울증 치료율 등도 함께 봐야 한다.

민주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민주·진보 진영에서는 보수의 집권을 독재의 귀환처럼 여기며 여전히 민주 대 반(反)민주 프레임을 시도한다. 오는 6월이면 민주항쟁 30년이 된다. 민주화는 민주투사들 공이 크지만, 1970∼1980년대 광범위하게 형성된 중산층과 고학력층, 즉 넥타이 부대가 있었기에 지속 가능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대립이 아닌 통합의 측면에서 봐야 하는 이유다.

역사의 중대한 분기점이다. 그만큼 과거보다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정치는 선악을 재단하는 종교나 도덕과 달리, 희망을 파는 비즈니스다. 과거의 잘못은 사법 시스템에 따라 척결하면 된다. 지금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은 앞선 세대의 피땀으로 기적을 일군 위대한 나라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구호는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 이틀 뒤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다시 위대한 미국(Make America great again)’이었다. 파괴와 저주보다 창조와 축복의 캠페인 경쟁을 벌여야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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