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선 교수, 등장만큼 퇴장도 멋졌어야

김태석 입력 2017. 1. 18. 10:20 수정 2017. 1. 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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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선 교수, 등장만큼 퇴장도 멋졌어야



(베스트 일레븐)

최근 프로축구계 최대의 화두는 누가 한국프로축구연맹 차기 총재에 오르냐는 것이었다. 곧 임기가 끝나는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의 후임자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권 총재가 재선을 통해 임기를 늘리려는 의사도 없었다. K리그 구성원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전체 살림살이를 총괄해야 할 수장에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는 이 모습은 스폰서로부터 외면 받는 K리그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씁쓸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문선 명지대학교 기록전문대학원 교수의 프로연맹 출마 선언은 아무도 예상 못한 상황이었기에 신선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새 시즌을 앞두고 한국 프로축구계의 수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어 표류하는 듯한 느낌까지 줬던 K리그를 한번 살려보겠다는 책임감과 소명 의식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현재 K리그의 최대 문제점은 수장을 뽑는 일이 만만치 않은 분위기 그 자체에 있다. 그래서 신 교수의 깜짝 도전은 많은 주목을 받았고, 도전 자체만으로도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설령 돈키호테식의 돌출 행동이었다고는 해도, 리더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더 나은 K리그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진취적 자세는 근래 K리그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또, 무력감에 빠진 K리그에 반드시 필요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신 교수가 겉으로 드러냈던 뜨거운 의지만큼이나 아쉬운 한 가지가 있다. 놀라운 총재 선거 출마 선언처럼 마무리도 멋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신 교수는 지난 16일 오후 3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제11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선거에서 과반수 찬성표를 얻지 못해 낙선한 후, 취재진에게 “부정행위가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입후보하지 않은 권 총재 측이 대의원들에게 향후 4년간 스폰서 금액 150억 원을 낼 수 있다는 의향을 전달면서, 비슷한 규모의 후원금을 신 교수가 유치할 수 있겠느냐고 한 대의원에게 물어봤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자신이 단독 출마한 선거에서 입후보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심각한 훼방을 당했다고 여기고 있으며, 그 누군가가 현재 총재이니 부정 선거가 아니냐고 말했다.

낙선에 대한 아쉬움은 이해한다. 더 나아가 그토록 호소했음에도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 대의원들의 선택에 대한 씁쓸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상당히 아쉽다.

먼저 든 아쉬움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표심을 읽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번 총재 선거의 최대 화두는 승부 조작 사건 등 최근 10년 사이에 리그의 근간을 흔들만한 초대형 악재가 터지고 흥행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K리그를 위해, 밖에서 쌀을 구하고 밥을 지어줄 수 있는 새로운 리더를 총재로 세울 수 있을지 여부였다.


만약 입후보하지 않은 권 총재가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신 교수의 주장이 옳다손 치더라도, 권 총재가 대의원들에게 말하고 다녔다는 4년간 최소 150억 원에 달하는 스폰서 금액은 K리그 회원 팀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아마 권 총재가 이점을 굳이 대의원들에게 설파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해도, K리그 전체 대회원의 주류인 각 K리그 팀들은 이점을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 프로축구가 온당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을 가진다는 건 분명 환영할 만한 얘기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보다는 실체를 원했다. 이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4년간 150억 원 유치할 수 있느냐는 말을 왜 하느냐는 반발보다는, 내게 맡겨준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호소와 실체적 계획 제시가 먼저였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 교수의 도전은 환영할 만했지만, 애석하게도 각 대의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부족했다.

그보다 더 아쉬운 점은 떠나면서 보인 모습이다. 신 교수는 선거 직후 “부정 행위가 있으면 결과를 받아들이지 말고 항의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더라도 경기 종료 후 아무리 항의한다고 한들 결과를 바꿀 순 없지 않나? 어쨌든 경기는 끝났다. 나는 당당히 승복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축구인답게 승복하는 자세다. 하지만 선거는 축구가 아니다. 선거는 구성원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부정은 있어선 안 된다. 그의 주장대로 올바르지 못한 선거가 실제 진행되어 왜곡이 있었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문제다. 감상적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 확실히 짚어야 할 부분이다. 깨끗하고 공정한 K리그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신 교수라면 더욱 그렇다.

만약 그 발언이 신 교수가 낙선이 속상해 툭 던진 네거티브적 발언이었다면 그건 더 문제 있다. 이는 신 교수가 말하는 경기 후 결과에 승복하는 축구인의 자세와 거리가 멀다. 다시 교편으로 돌아가면 그만인 신 교수와 달리, 그 발언 하나 때문에 가뜩이나 곤경에 처한 K리그의 이미지는 더욱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한국 축구, 그리고 K리그를 위한 태도였을까?

신 교수가 평소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애정이 크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그의 굳인 신념과 강직한 태도는 프로연맹 임직원은 물론 현장을 누비는 각 구단 직원들이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마무리가 더 아쉽다. 차라리 선거 결과를 공식적으로 불복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런저런 말없이 깔끔하게 대의원들의 뜻을 받들겠다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신 교수의 퇴장은 등장만큼이나 멋지고 박수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신 교수가 도전했던 자리는 프로축구계의 리더였다. 총재 자리였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책임감과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이 자리에 도전한 이가, 마치 “내가 그토록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프로축구계가 한심하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떠난 모습은 리더를 꿈꾸는 자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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