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여적]보수의 정치적 올바름

2017. 1. 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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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7일 새누리당 탈당파 30명이 별도의 교섭단체를 구성하면서 보수정당 단일대오가 무너졌다. 새누리당 탈당파는 당명을 ‘바른정당’으로 정했다. 바른정당은 새로운 보수를 표방하며 국회의원 소환제, 알바 보호법 등 개혁적인 법안을 선보였다. 하지만 바른정당이라는 이름은 낡았다. 오랫동안 보수세력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바른’이라는 표현으로 포장해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보수세력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심기 위해 ‘올바른 교육’에 집착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고 불렀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교육감 중에도 올바른 사람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보수세력은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위해 ‘올바른 교육감 추대 전국회의’를 열었다. 보수 교육감 단일화나 국정 교과서 찬성운동에 나선 단체들 중에는 올바른교육시민연대, 바른교육교수연합, 바른교육학부모연합 등 ‘바른’이라는 명칭을 쓰는 곳들이 유독 눈에 띈다.

1월 9일 개혁보수신당 인사들이 새 당명을 '바른정당'으로 확정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대표적인 보수 시민단체다. 단체 이름 때문인지 여기 있는 분들도 바른 것을 참 좋아한다. 바른사회의 공동대표를 지낸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서울대 교수)은 2011년 5월 ‘올바른 국가정체성 정립 시급하다’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이 강연에서 박 위원장은 역사교과서에 “좌파민족주의가 여과없이 실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을 강조하는 등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국가정체성을 밝혔다. 이념적 이유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유독 인연이 깊었던 법무법인의 이름도 ‘바른’이다.

사실 ‘올바름’은 진보 측의 언어다. 성차별, 인종차별 등 편견이 담긴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대학가와 시민사회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불만과 짜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올바르다’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해온 것은 보수세력이다. 보수의 ‘올바름’에 대한 시민의 환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거리의 분노가 되어 정권교체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기존의 보수세력과 다른 합리적 보수를 추구한다는 이들마저 올바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탈당은 했지만 새누리당의 유전자는 바꿀 수 없었나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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