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권력자 식의 말하기 시대는 끝났다

2017. 1. 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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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권력이었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용어가 있다. 이세고리아와 파레시아다. 이세고리아는 평등한 말하기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전쟁에서 아테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은 것이 바로 이세고리아다. 참주제, 독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파레시아는 자유롭게 말하기 또는 진실 말하기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진실, 자유, 비판을 파레시아의 3요소로 꼽았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죽음까지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말하기 역사는 정치권력이 신에서 영웅(왕)으로, 영웅에서 다시 시민으로 바뀐 것과 같은 궤적을 보인다. 물론 시민은 오늘날의 시민이 아니다. 아테네에서 태어난 남성으로, 여성과 외국인, 노예는 포함되지 않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진실 말하기’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이가 푸코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하는 오이디푸스는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을 뒤늦게 알고, 자신의 눈을 파내고 유배를 떠난다. 푸코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세 단계의 진실 말하기 과정을 거친다고 해석한다. 첫째, 신(아폴론)과 예언자(테이레시아스)다. 둘째는 영웅(오이디푸스), 셋째는 시민(양치기와 하인)이다. 일본의 푸코 연구자 나카야마 겐은 <현자와 목자>(그린비·2016)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최후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양치기와 하인이라는 극히 낮은 신분의 시민과 노예들이다. 진실은 이제 영웅이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시민이 말해야 하는 것이 된 것이다.” 이 말은 권력자 방식의 말하기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 끝났음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말의 힘을 보여주는 데 연설만한 것은 없다. 그래서 연설은 때로는 부드러우면서도 과격하거나 격정적이다. 말의 힘은 포장술과 미사여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에 있다. 서툴고 투박한 연설이 감동을 주는 이유다. 이틀새 두 연설이 관심을 끌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고별연설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연설이다. 퇴임 열흘을 앞두고 한 오바마의 연설 가운데 한 문장만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이것을 선택하겠다. “시민으로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겠다.” 오바마 임기 8년을 연설로만 평가하면 매력남 그 자체다. 그의 연설에는 늘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소통과 공감이 흐른다. 무엇보다도 진정성이 있다. 고별연설에서 그가 강조한 단어는 민주주의와 시민이다. 그는 불평등과 인종문제, 편가르기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이를 극복하려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10년간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반기문은 “국민·국가를 위해 한 몸 불사르겠다”고 했다. 귀국연설에는 국가, 국민, 애국심, 권력의지와 같은 권력자의 말이 넘쳐났다. 대권 도전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기 위함이었지만 한마디로 권력자로서 말하기의 전형이었다.

반기문의 가세로 대권주자들의 말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날이 머지 않았다. 그들의 민낯이 드러날 시간이기도 하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과장과 왜곡, 거짓과 선동, 진실이 뒤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유통기한이 지난 권력자의 말하기 방식에 매달려 진실을 감추려는 시대착오적 대권주자가 있을 것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인 말하기에 충분히 지쳤다. 더 이상 대권주자들은 대놓고 거짓말하거나 뻔뻔하고도 반성과 참회가 없는, 몰염치한 작태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서민 코스프레’도 사절이다. 권력자 식의 말하기가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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