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남방송 FM라디오에 잡힌다

2017. 1.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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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년 12월부터 ‘통일의 메아리’ 송출… 남한 사회 교란 목적 불구 국정원 조치 ‘아리송’

“FM 라디오를 통한 전파 전쟁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2016년 12월 23일, 라디오 동호인인 ㄱ씨가 기자에게 제보를 해왔다. ㄱ씨의 제보 내용은 이렇다. 북한의 대남방송이 2016년 12월 21일부로 FM 주파수를 증설했고, 서울 이남 지역에서도 들릴 정도로 강한 출력으로 방송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또한 ㄱ씨는 남한 당국이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인지 누구든 우연히 FM 주파수를 돌리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게 방송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ㄱ씨가 말한 대남방송은 ‘통일의 메아리’ 방송이다. 2012년 12월 개국한 통일의 메아리는 민간방송을 가장한 북한의 대남방송이다. 휴전선 인근의 개성, 원산 등지에서 하루 세 차례 2시간씩 방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의 메아리나 평양방송 등 대남 라디오 방송은 지난해 7월부터 자주 언론에 회자되는 북한의 대남 난수방송과는 성격이 다르다. 규칙성 없는 숫자만 나열하는 난수방송은 공작원 또는 공작원 훈련생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다. 대남 난수방송뿐만 아니라 남쪽에서 북으로 쏘는 대북 난수방송도 있다. 표면적으로 방송 내용에는 아무런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난수방송을 청취하거나 인터넷에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법적인 처벌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남 난수방송에 대해 1월 13일 통일부는 “남한 내 동조세력을 규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남한 사회 내에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논평은 난수방송보다는 통일의 메아리에 더 적합하다. 통일의 메아리 방송은 숫자가 아니라 아나운서가 읽어주는 보도문, 논평문을 방송한다. 남한 안에 정말 ‘동조세력’이 있다면 난수방송보다는 통일의 메아리나 평양방송을 들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지난해 7월 북한이 한강으로 띄워 보낸 대남전단의 모습/합동참모본부 제공

보도, 논평, 수필, 연재소설 등으로 구성

ㄱ씨의 말대로 FM 라디오에서 북한 방송이 들리는지 확인해 봤다. 2016년 12월 26일, 통일의 메아리 방송시간에 맞춰 FM 라디오의 전원을 올렸다. 주파수를 맞춰놓고 방송이 나오길 기다렸다. 치직거리는 소리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잠잠해진다. 뒤이어 잔잔한 음악이 흐르면서 북한 말씨의 여성 아나운서가 “통일의 메아리 방송입니다”라며 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그 뒤엔 1분여가량 행진곡 느낌의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방송 시작을 알린 아나운서는 방송시간과 방송 주파수를 소개했다. 이후에는 방송 순서를 소개했다. 보도, 논평, 수필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특이하게 방송 막판에는 연재소설이 방송된다.

2주가량이 흐른 1월 11일 오후에 다시 확인해 봤다. 통일의 메아리 FM 주파수 3곳 중 1곳에서는 방송시간이 지났음에도 치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또 다른 한군데에서는 남한 당국이 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해전파 소리만 들렸다. 하지만 마지막 한 군데에선 여전히 대남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2주 전처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방송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대남방송의 내용이 과연 남한 사람들의 심리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1월 11일 방송의 경우 시작하자마자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을 “경애하는 원수님”으로 부르며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소개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호감도가 거의 없는 남한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뒤이어 남한 소식이 이어졌다. 박근혜 퇴진운동 등을 소개한 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위인적 풍모를 남조선 각계가 칭송했다”며 익명의 시민과 학자의 말이 소개됐다. 심지어 <경향신문> 등 남한의 신문에서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보도를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를 비판한 한 진보언론 논설위원의 칼럼을 짜깁기한 뒤 “남조선에 사는 한모씨의 글”이라며 소개하기도 했다.

ㄱ씨는 “기존 통일의 메아리 방송은 FM 1개, AM 2개, 단파 2개 주파수에서 내보냈다. 그런데 AM 방송은 듣는 사람이 거의 없고, FM과 단파 방송은 남한 당국의 방해전파로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며 “실용성이 떨어지는 AM 주파수를 없애는 대신 방해전파를 우회하는 FM 주파수 2개, 단파 주파수 1개를 신설해 방송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세경 동북아방송연구회 이사장은 북한의 대남방송이 FM 라디오를 통해 들린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표했다. 박 이사장은 “제가 알기로 우리 쪽에서 방해전파는 다 쏘고 있다. 그런데 방해전파가 들어가지 않는 일부 지역이 있다. 그런 곳에서는 대남방송이 수신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ㄱ씨와 마찬가지로 “AM으로는 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AM은 폐지하고 대신 상대적으로 젊은 청취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FM 주파수를 늘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라디오보다 인터넷으로 듣는 사람 많을 것”

대남심리전 연구자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남한 당국에서 대남방송 실태를 알면서도 방해전파를 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과거에는 라디오 방송을 통한 대남 심리전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주로 심리전을 하고, 통일의 메아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라디오보다 인터넷으로 듣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방해전파를 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북한 인터넷 사이트의 경우 방통위에서 차단을 해놨지만 외국에 가거나 우회접속을 하면 차단을 다 피해서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의 메아리의 방송 내용에 대해서도 유 원장은 북한 내부의 성과주의가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대남 심리전 방송은 통일전선부에서 담당한다. 그들은 ‘우리가 김정은 동지를 위해 남조선 인민들에게 이렇게 열심히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고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김정은 찬양 위주로 방송을 한다. 우리 쪽에서 듣는지 아닌지는 두 번째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유 원장은 “남조선의 김모씨가 원수님을 찬양했다는 둥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건 대남방송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덧붙였다.

ㄱ씨는 “통일의 메아리는 국정교과서 노동개혁 등 남한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주제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다루는 편”이라며 “다른 대남방송처럼 하루 종일 찬양방송만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방송인데, 당국에서 방치를 하고 있는 점이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북한 대남방송에 대한 대응은 국가정보원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에 어떻게 2주일이 넘도록 북한의 대남방송을 FM 라디오를 통해 청취가 가능한지 질의했다. 내용을 알 수 없는 대남 난수방송에 비해 통일의 메아리 방송이 내용적으로 훨씬 위험한 것 아니냐며 방해전파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 있는지도 물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해당 정보가 비공개 대상 정보로 분류되어 있어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기자가 질의한 이후 국정원에서도 뭔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질의한 다음날인 1월 13일 오후, 이틀 전에 들었던 통일의 메아리 FM 방송을 다시 들어 봤다. 이번에 방송시간 내내 ‘뚜~’ 하는 신호만 들리거나, 치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하지만 국정원의 조치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12월 통일의 메아리는 FM 주파수 2곳뿐만 아니라 단파 주파수 1곳도 신설했다. 기존 단파 주파수 2곳이 남한 당국의 방해전파로 막혔기 때문이다. 단파 주파수 5***khz을 틀어보니 바로 통일의 메아리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날 방송은 “광장의 민의가 관철되는 그날까지 총궐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1월 10일 민중총궐기 투쟁선포 등을 전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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