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반기문 현상이 지속되는 까닭은?

2017. 1.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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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내외 反정치·反기득권 흐름 큰 원인… 평범한 보수 여권후보 선택 땐 추락 가능성도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Mad as Hell)

지난해 11월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예상 외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당황한 외신들이 쏟아낸 반응이다. 외신은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 국민들의 워싱턴과 기존 정치인에 대한 극심한 혐오가 만들어낸 ‘참화’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6월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Brexit)도 기존 질서에 대한 강한 불신의 표출이었다.

반(反)정치, 반기득권 흐름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4월 치러졌던 총선에서 갓 창당된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에서 2위를 기록했다. 여당의 아성이었던 영남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야당, 무소속 의석이 배출됐다. 호남에서도 여당이 두 석을 가져갔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촛불민심을 타고 대선주자 3강으로 도약했다. 사상 처음으로 기초자치단체장이 유력 대선주자가 됐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씨가 1월 1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견고한 지지도에 확장성까지 갖춰

2012년 제18대 대선을 전후로 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2013년부터 지금까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그리고 이재명 시장은 반정치·반기득권을 상징한다. 이들은 신상품이면서 여의도 정치권과 거리가 있는 비주류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상 또는 신드롬으로 불릴 만큼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 안철수가 하락세로 접어들고 이재명 시장은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반기문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총선 직후 실시된 <국민일보>와 지앤컴 여론조사에서 반 전 총장은 26.4%로 다른 주자를 10%포인트 가깝게 따돌리며 1위를 기록했다. 연령별로 고른 지지를 받았으며, 여야 접전을 펼치는 수도권에서도 상당한 지지율을 나타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해 9월 SBS와 TNS 여론조사에서는 21.5%로 역시 1위였다. 2위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보다 약 6%포인트 높았다. 반 전 총장은 19∼29세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 모든 지역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세계일보>와 시대정신연구소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반 전 총장은 21.3%로 문재인(25.1%) 전 대표에 이어 2위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하락세를 보였지만 60세 이상에서는 강한 결집현상이 나타났다. 그동안 반 전 총장은 보수 여권의 대선주자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촛불정국에서 피해를 본 것이다.

촛불정국 이후 문 전 대표에게 1위를 내주었지만 여론조사로 본 반기문 지지도는 여전히 견고하다. 우선 보수 여당의 지지기반인 60세 이상의 결집이 눈에 띈다. 지난 총선에서 60세 이상은 전체 유권자의 23.5%에 달했다. 이들은 투표율이 상당히 높다. 지난 총선에서 실제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를 고려한 60세 이상 투표자 비중은 28.0%로 나타났다. 지난 총선의 경우 60대 이상 투표율이 높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유권자 비중보다 투표자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대선은 총선이나 지방선거보다 투표율이 더욱 높아진다. 이번 대선에서 60세 이상 투표자 비중은 30%를 훌쩍 넘길 수도 있다. <세계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의 60세 이상 지지율은 8.5%에 불과했다.

무당층에서 반기문 지지도는 압도적으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무당층에서 반 전 총장은 25.3%였다. 9월에는 12.9%로 다소 감소했지만 신년 여론조사에서는 20.5%로 오히려 늘어났다. 최근 여론조사의 무당층은 20% 남짓이다. 반 전 총장은 앞으로 확장 가능성이 있다는 지표다. 반 전 총장은 충청, 대구·경북, 부산·경남·울산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20% 전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호남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보수 지지층이 상당히 약화됐음에도 반 전 총장은 건재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결론 나고 대선 시기가 임박하면 민심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반기문 태풍은 여전히 북상 중이다.

혼란스런 정체성, 문제는 이제부터

유엔은 국제정치의 주류 무대는 아니다. 유엔은 인권, 평등, 제3세계, 빈곤퇴치, 환경보호, 지속가능한 개발 등에 관심을 둔다. 군사적·경제적 우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의 국제정치가 주류라면 유엔은 비주류 가치를 대변한다. 비주류 가치는 주로 반정치·반기득권에서 발견된다. 반 전 총장이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유엔은 한국의 비주류 가치를 적극 옹호해 왔다. 한국 정부의 과도한 시위진압을 비판하고 전교조 인정, 국가보안법과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을 촉구했다.

반기문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유엔이 대변하고 있는 반정치·반기득권으로 상징되는 비주류 가치 때문이기도 하다. 반 전 총장은 ‘헬조선과 망한민국 시대’ 흙수저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북한 방문을 추진하던 2015년에는 ‘거의 차기 대통령’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반 전 총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여론조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 전 총장은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진보, 호남과 국민의당 지지층에서도 1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다. 남성보다 여성의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것도 특징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반 전 총장의 정체성은 혼란스럽다. 반 전 총장은 반정치·반기득권이기도 하지만 기성 정치권과 기득권을 대표하기도 한다. 반 전 총장은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 친박(親朴)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반 전 총장은 친박이 지지하는 대선주자의 이미지가 남아있다. 촛불정국 이후 반 전 총장은 박 대통령, 새누리당과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반 전 총장을 야권 대선주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권에서는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을 정도로 보수 대표성도 강하다.

이제 걸음마를 뗀 반 전 총장 앞에는 외줄 사다리가 놓여 있다.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반정치·반기득권 흐름을 탄다면 대선에서 최종 승자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평범한 보수 여권 후보가 된다면 조기에 낙마할 수도 있다. 1차 시험대는 설 연휴 전후에 발표될 주요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가 될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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