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에 경제 샌드백된 한국

입력 2017. 1.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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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외교 리스크가 경제로 전이… 험난한 2017년 한국 경제

국익 앞에는 어디에도 천사는 없다. 한국 경제가 2017년 벽두부터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일본은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하고 있다. 외교 리스크가 경제로 전이되면서 한국 경제의 목줄을 죄고 있는 셈이다. 설마하던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사태 진화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공백이 생긴 상태여서 정부 차원의 전면적인 대응조차 힘든 상태다.

사드 배치를 반대해온 중국은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조치)을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관광 부문을 죄더니 올해 들어서 자동차 배터리, 항공과 화장품으로까지 영향력이 확대됐다.

지난해 8월 인천시 연수구 송도신항에서 동북아 최대 규모 크루즈 '퀸덤 오브 더 시즈'호를 통해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 이석우 기자

중국, 관광·화장품·배터리 전방위 압박

지난달 30일 중국 민용항공총국이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앞두고 제주항공, 아시나아항공, 진에어 등 3개 항공사가 신청한 전세기 운항신청을 불허했다는 소식이 베이징 여행업계에 전해졌다. 한국 정부에 전세기 운항을 신청했던 중국 항공사들도 운항신청을 철회했다. 양국의 전세기들은 중국관광객(유커)을 춘제 기간 한국에 실어 나를 예정이었다. 전세기가 뜨지 않는 만큼 유커의 국내 방문은 줄어든다.

중국 민항국은 전세기 운항 불허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는 사드 배치에 따른 불만으로 실력행사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당국은 오는 4월까지 한국행 여행객을 20%까지 줄이라는 지침을 관광업체에 하달해 한국행 전세기 운항 중단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불똥은 크루즈 관광으로도 튀고 있다. 지난해 크루즈선을 타고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195만명으로, 2년 만에 약 2배가 늘었다. 경제유발효과는 5조4000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당초 올해 240만명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연초부터 한국을 기항하겠다고 약속했던 크루즈선들의 취항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크루즈선 승객의 90%가 중국인이다. 앞서 중국은 2013년 일본과 관계가 악화되자 대일본 크루즈선 취항을 사실상 중단했다. 일본에서 뱃머리를 돌린 크루즈선들이 제주와 부산을 찾으면서 동북아에서 한국이 주요 취항지가 되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해수부 관계자는 “여러 상황이 좋지 못해 지금으로서는 200만명을 사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화장품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3일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2016년 11월 불합격 화장품 명단’을 발표했다. 수입 허가를 받지 못한 제품 28개 중의 19개가 애경, 이아소 등 한국산 화장품이었다. 해당 한국산 제품만 총 11톤에 달했다. 이 제품들은 모두 반품 조치됐다. 질검총국은 샘플에 대한 위생허가 등록증명서 미제출, 미생물 기준 초과, 등록한 것과 다른 성분 사용 등을 문제삼았다. 겉으로는 한국산 제품들이 중국의 법·규정을 위반한 것처럼 보이지만, 무역보복 때 즐겨 쓰는 비관세장벽(국내 규정 등을 이유로 수입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해명을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통관이 깐깐해질 것이라는 얘기는 진작에 있었다”며 “중국 측을 자극할까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수출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제품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29일 중국 공업화신식부가 발표한 ‘신에너지 자동차 보조금 지급 차량 5차 목록’을 보면 493개 차량 모델 중 삼성SDI와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없었다. 이날 오전 공업화신식부는 한국 업체의 배터리가 장착된 차량 모델 4종을 보조금 지급 차량 목록에 포함했다가 오후에 급히 제외하기도 했다.

정부는 사드 배치를 결정한 직후 중국의 무역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한 중국이 그러지는 않을 것”(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며 일축했다. 중국의 한국산 화장품 반송조치에 대해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반송된 19개 제품은 중국 화장품 관련 규정을 위반한 데 따른 조치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사드 배치로 인한 무역보복은 없다는 얘기다.

정부 주장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이미 한한령을 반영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주요 화장품 제조사 주가는 최근 석 달간 두 자릿수씩 하락했다. 하나투어·모두투어 등 관광주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 등 항공주도 약세가 계속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인 삼성SDI와 LG화학 역시 주가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비난여론이 심해지자 수출담당 부처인 산업통상부는 11일 중국 당국의 한국산 화장품 무더기 금수조치 문제를 한·중 FTA 공동위원회 공식안건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필요한 경우에는 장관급 회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공식안건 상정을 포기했다. 중국 측과 사전 의제를 미리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뒷북도 제대로 치지 못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9일 김포공항에서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치에 따라 일본으로 일시귀국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박민규 기자

일본, 통화스와프 중단에 어업협정 늑장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자 일본은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 카드를 던졌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6일 내각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원화를 일본에 주고, 그 대신 엔화를 받아오는 양국 간 계약이다. 일본 돈 엔화는 한국이 경제위기를 당했을 때 외환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외환보유액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일 통화스와프를 종종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 한국에 배푸는 일종의 시혜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2001년 7월 한·일 정부는 2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700억 달러까지 규모를 확대했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자 규모를 줄였다. 2015년 2월 완전히 사라졌다. 지난해 8월 한·일 정부는 통화스와프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논의는 매끄럽지 못했다. 지난해 말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한국의 누구와 협상을 할지 알 수 없다”며 협상 중단을 시사했다. “(소녀상 문제는) 경제외적인 문제여서 일본 측이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판단하던 기재부는 뒤늦게 법석을 떨었다. 기재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정치·외교적 원인으로 한·일 통화스와프 논의가 중단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정치·외교적 사안과 무관하게 한·일 간 경제·금융협력은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은 자칫 한·중 통화스와프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재부는 더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도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는데, 오는 10월 만료된다. 한·중 양국은 지난해 4월 만기 연장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이는 사이가 좋았을 때 얘기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은 일본에 통화스와프 확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한국은 중국을 찾았고, 한·중 통화스와프가 합의되자 일본이 뒤늦게 뛰어들었다. 결국 일본 측의 요청으로 한·중, 한·일 통화스와프가 동시에 발표됐다. 당시 한국은 중·일 간 경쟁을 부추겨 통화스와프를 맺었던 것인데, 이제는 두 나라로부터 동시에 외면당하는 꼴이 됐다.

7개월째 타결이 이뤄지지 않는 한·일어업협정도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일어업협정이 타결되지 않으면 한국 배들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들어가서 조업을 할 수 없다. 일본 측 EEZ는 갈치가 많이 잡힌다. 최근 값이 치솟는 ‘금갈치’의 원인이다.

협상전문가인 김기홍 부산대 교수는 “한국이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공백 중인 것을 틈타 양국이 한국을 흔드는 것”이라며 “국제 역학관계로 볼 때 정치와 경제가 따로 간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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