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이제 시민 편에 서고 싶다"

2017. 1.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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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개혁 목소리 높이는 전현직 경찰관들… “대통령만 쳐다보는 조직이 가장 큰 문제”

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공개된 청와대 비밀노트는 경찰 조직을 뒤흔들었다. 작성자가 누군가로부터 경찰 인사 청탁을 받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나간 이후 노트의 작성자가 박건찬 경찰청 경비국장으로 밝혀졌다. 박 국장이 청와대 재직시절 작성한 노트에는 누구 서장의 조카, 차장의 조카사위, 누구의 남편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 이름 옆에는 희망부서, 청탁 당사자로 추정되는 이름의 청와대 관계자, 군 관계자, 국회의원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여타 언론은 후속 취재를 통해 메모에 등장한 50여건의 청탁 중 상당수가 실제 인사로 이어졌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주말집회 때도 경찰은 ‘정권의 하수인’이라고 비판받는다. 시민단체가 집회신고서를 제출하면 경찰은 당연한 듯이 제한 통고를 내린다. 법원에서 집회를 허용한다는 가처분 판결이 나와야 그때서야 경찰은 집회 신고를 받아들인다. 집회 참가자 수를 지나치게 적게 추산해 매번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경찰 내부에서 ‘경찰은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다’라며 꾸준히 경찰 개혁 목소리를 높여 왔던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2017년 경찰 조직이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장신중 경찰인권센터 소장은 2013년 양구경찰서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대표적인 경찰 내부 개혁론자로 손꼽혔다. 퇴직 이후에도 장 소장은 경찰인권센터를 통해 현직에 있는 후배들이 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시민이 경찰 고위직 인사권 행사 고민할 때

장 소장은 현재 경찰 조직의 최대 문제점으로 “인사권자인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는 점”을 꼽았다. 경찰이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가 도입돼도 결국 경찰은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 소장은 청와대가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경찰 고위직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고민할 단계가 됐다고 봤다. 물론 그가 구체적인 구상까지 말한 것은 아니다. 지방 경찰청장을 투표로 뽑을 수도 있고, 현재 유명무실화됐다는 지적을 받는 경찰위원회 위원들을 국회가 선출하도록 하는 방식도 있다.

장 소장은 “예를 들어 법원에서는 차벽으로 집회장 전체를 틀어막는 것을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촛불시위 때마다 차벽으로 집회장을 막고 있다. 시민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서울경찰청장이 지금처럼 집회 관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소장은 경찰이 정권의 눈치를 봐왔던 태도가 수십년간 계속돼 지금과 같은 뻣뻣한 집회·시위 대응으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2011년 장 소장은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집회가 매일 열렸다. 그는 “집회·시위에 관해서 경찰은 군사독재 시절부터 하던 전통 그대로다. 인권보호담당관 시절 대학생들의 평화집회를 원천 봉쇄로 막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나보다 계급이 높았던 기동단장이나 경비국장하고도 무지 싸웠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수직적인 인사권이 남아있는 한 경찰에 충성하는 사람이 조직을 움직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소장은 7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등과 함께한 인권콘서트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토론자들은 경찰의 과도한 집회·시위 통제와 경찰 노동조합 등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장 소장이 2000년 7월 설립에 힘을 쓴 경찰 커뮤니티 폴네띠앙 회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폴네띠앙은 동두천 여경 자살사건에 강압적인 감찰이 있었다는 의문을 제기했던 박주민 의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현직 경찰관인 유근창 폴네띠앙 회장(경남경찰청 소속)은 폴네띠앙을 “시민의 편에 서서 호흡하려고 하는 경찰들의 친목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 경찰 노동조합 등 경찰 개혁 현안에 대해 연일 폴네띠앙 커뮤니티와 단체 채팅방에서 격론이 이어진다는 것이 유 회장의 설명이다. 특히 경찰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일선 경찰관들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나, 경찰의 독립성 차원에서나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고 한다. 다만 유 회장은 “내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필력이나 논리는 충분하다. 다만 아무래도 현직에 있는 회원들이 400명가량 되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때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장신중 소장은 “제가 퇴임한 2013년 정도에는 경찰 내부의 개혁 목소리가 많이 위축돼 있었다. 저도 5번 정도는 감찰 때문에 경찰 일을 그만둘 뻔했고, 새로운 경찰청장이 올 때마다 싸웠다”며 “저처럼 매번 이름을 걸고 싸우라고 후배들에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당시 최소 7명의 경찰관들이 내부게시판에 경찰 수뇌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했다가 파면을 당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경찰 조직의 과도한 성과주의를 비판한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이다. 박윤근 경사의 경우 2008년 촛불집회를 전후한 시점부터 경찰 내부 조직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가 파면됐다. 박 경사의 파면을 재고해 달라는 글을 쓴 양동열 경사도 파면당했다. 파면당한 경찰관 중 6명은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무궁화클럽 회원이었다.

조규수 무궁화클럽 공동대표(광주북부경찰서 경위 퇴직)는 “나는 2010년 퇴직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몸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역시 현직에 있을 때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며 “지구대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경찰서장이 수박이나 냉커피를 들고 수고한다며 찾아오는 일들이 있었다. 경찰서장이 지구대 경위를 찾아오는 일이 세상이 어딨나. 계속적으로 감시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제 지방자치경찰제 도입 생각해 봐야

무궁화클럽은 현재 경찰 관련 단체 중 집단행동을 가장 많이 하는 그룹이다. 고 최경락 경위의 죽음과 관련해 무궁화클럽은 최 경위 죽음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을 문건유출 사건으로 둔갑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전직 경찰관의 양심고백이 있은 뒤에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경찰의 독립성을 위해 자치단체별로 나누어진 자치경찰제 도입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선진국에서는 지방청장을 시민들이 뽑기도 하고 자치경찰제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 우리끼리도 그런 제도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의견이 오가고 있다”며 “현재 우리 경찰은 정부의 의도에 따라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집단이 돼 있다. 경찰도 지방분권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지금처럼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회를 한다고 해서 전국에 있는 경찰관을 마음대로 다 동원할 수가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한 조 대표는 퇴직 경찰관들의 법정단체인 경우회의 존재 역시 경찰 조직의 이미지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경우회가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줬다는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 경우회법에 분명히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돼 있는데, 과연 경우회가 그동안 법을 잘 지켜왔는지 의심된다”며 “현직 때도 정부의 하수인 노릇을 어쩔 수 없이 해왔는데, 퇴직해서까지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전직 지방경찰청장까지 지낸 분들도 가입을 꺼리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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