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한 주]치매환자 돌보기
2017. 1. 18. 10:13
김광규(1941~ )
어려운 세월 악착같이 견뎌내며
여지껏 살아남아 병약해진 몸에
지저분한 세상 찌꺼기 좀 묻었겠지요
하지만 역겨운 냄새 풍긴다고
귀여운 아들딸들이 코를 막고
눈을 돌릴 수 있나요
척박했던 그 시절의 흑백
사진들 불태워버린다고
지난날이 사라지나요
그 고단한 어버이의 몸을 뚫고 태어나
지금은 디지털 지능 시대 빛의 속도를
누리는 자손들이 스스로 올라서 있는
나무가 병들어 말라죽는다고
그 밑동을 잘라버릴 수 있나요
맨손으로 벽을 타고 기어들어와
여태까지 함께 살아온
방바닥을 뚫고 마침내 땅속으로
돌아가려는 못생긴 뿌리의 고집을
치매 걸렸다고 짜증내면서
구박할 수 있나요
뽑아버릴 수 있나요
치매는 뇌의 병적인 증상으로 노년기에 많이 생긴다. 치매로 인해 서서히, 혹은 어느 날부터 부모 자식 간에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막막한가. 시인의 말대로 ‘지저분한 세상 찌꺼기 좀’ 묻히고 ‘역겨운 냄새’도 풍긴다면 상황은 더욱 더 막막하다. 자식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노인을 돌보는 일이 버겁다고 짜증낸다. 하지만 시인은 ‘방바닥을 뚫고 마침내 땅속으로 돌아가려는 못생긴 뿌리의 고집을’ ‘짜증내면서’ 구박하고 뽑아버릴 수 없다고 한다. 문득, ‘노인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간경향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