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없는 은행, '셀프뱅킹' 시대 왔다

2017. 1.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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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모바일뱅크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아… 이달말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땐 ‘비대면 거래’ 가속화

회사원 김지은씨(33)는 마지막으로 은행 영업점을 찾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예·적금은 물론 연금저축, 적립식 펀드 등 나름대로 이런저런 재테크를 하고 있지만 모두 스마트폰으로 가입했다. 웬만한 결제는 신용카드로 하고 송금 역시 모바일로 해결하는 편이라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온라인 금융거래의 ‘필수품’이었던 공인인증서도 요즘엔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계좌이체는 스마트폰에 깔린 은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지문 인증으로, 온라인쇼핑몰에서의 물품 구매는 카카오·네이버페이를 활용한다.

‘은행 없는 은행’ 시대가 빨라지고 있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결합) 발전에 따른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내 집 앞의 은행’보다 ‘내 손 안의 은행’을 더 많이 찾는 추세다. 특히 이달 말 K뱅크를 시작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의 출격을 앞둔 상황에서 ‘디지털 혁신’이 금융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2016년 12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문을 연 신한은행의 ‘S20 홍대입구 스마트 브랜치’. 손바닥 정맥 인증을 통해 스마트형 ATM으로 대다수의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신한은행 제공

금융권 ‘디지털퍼스트’ 박차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 임직원 3000여명이 짐을 쌌다. 올해도 정초부터 감원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지난해 말 KB국민은행에서 280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신한은행도 16일까지 부지점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은행원은 물론 점포 역시 축소 추세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전국 영업점은 총 4919곳으로, 1년간 총 177곳의 영업점이 사라졌다. 줄어든 점포 수만 전년인 2015년(58곳)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모바일·인터넷 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확산되면서 은행들이 수익성이 떨어지는 영업점을 없애거나 통·폐합했기 때문이다. 전체 은행 거래 중 비대면 거래가 90%를 넘어서는 등 변화하는 영업환경도 은행의 몸집 줄이기에 영향을 미쳤다.

은행원이 사라진 자리, ‘셀프 뱅킹(self banking)’이 각광받고 있다. ‘은행원 없는 은행’인 모바일뱅크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2016년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최근 6개월 내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이 43.3%로, 전년보다 6.9%포인트 높아졌다. 국민 10명 중 4명은 모바일뱅킹을 이미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루 평균 이용금액도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3조2084억원에 달했다.

이달 말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앞두고 각 시중은행들도 앞다퉈 ‘디지털 퍼스트’를 내걸고 있다. “디지털 시대엔 금융회사나 금융인이 있는 곳에만 금융이 있고 고객은 알아서 찾아온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핀테크의 무한경쟁은 이제 본격화됐다”(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디지털 금융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등 은행권 수장들의 신년사만 봐도 이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디지털 중심의 조직개편은 물론 고령층·외국인 전용 맞춤형 모바일 앱 개발(신한은행)부터 음성인식으로 송금이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KEB하나은행), 고객과 1대 1 카카오톡 채팅을 통해 금융상담을 해주는 ‘금융 봇(bot)’(NH농협은행)까지 은행 간 서비스 경쟁도 치열한 상황이다.

고비용 문제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ATM 역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설치된 현금지급기(CD) 및 ATM은 총 12만1344대로, 2013년 최고치(12만4236대)를 찍은 뒤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대당 연간 손실액이 100만원이 넘는 데다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길목에 ATM이 구조조정 1순위가 된 것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 ATM 얘기다. 은행들은 은행원 없이도 고객 스스로 대다수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스마트 ATM’을 속속 도입하는 추세다. 신한은행은 2015년 12월 도입한 셀프뱅킹 창구 ‘신한 유어 스마트라운지’를 출시한 지 1년 만에 거래건수가 43만건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가장 큰 특징은 은행 창구에서 이뤄지는 금융업무의 약 90%에 해당하는 107가지 업무를 영업시간에 관계없이 고객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엔 창구에서만 가능했던 인터넷뱅킹 신규가입이나 통장 교체, 체크카드 발급도 가능하다. 비대면 실명 확인은 고객의 생체정보인 손바닥 정맥 인증으로 한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5일 손바닥 정맥 등 생체정보만으로 카드 결제가 가능한 ‘바이오페이’를 올해 상반기 시범 도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바이오 인증 금융기술이 탄력을 받고 있다.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카드나 현금 없이도 자신의 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갤럭시 노트7의 시장 퇴출에 일시 중단됐던 금융사들의 홍채 인증도 올해 다시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은행공간 사라진다

은행업무가 가능한 공간도 전통적인 은행 영업점에서 이동식 무인점포, 스마트폰, 편의점 등으로 다변화되는 추세다. 특히 ‘3만 점포 시대’를 맞은 편의점은 생활밀착형 금융공간으로 떠올랐다. 이르면 이달 말 출범하는 K뱅크는 지점이 없다는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국에 촘촘히 뻗어 있는 편의점 점포망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전국적으로 지점 수가 1만500여개에 달하는 GS25 편의점의 ATM이 K뱅크의 오프라인 지점 역할을 대신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모든 업무를 인터넷과 모바일, 편의점 ATM으로 처리하는 게 가능해 평일 오전 9시~오후 4시로 굳어진 은행 영업시간 관행에 변화가 예고된다.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에서도 편의점의 역할이 각광받고 있다. 한은은 편의점에서 고객이 현금으로 물건값을 지불하면 잔돈을 선불교통카드에 충전해주는 방식을 올해 상반기 중 추진할 계획이다. 이후에는 소비자가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등록된 은행계좌로 잔금을 송금해주는 방식도 추진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전을 지니고 다니는 불편을 줄일 수 있고, 통화당국 입장에서도 매년 500억원에 달하는 동전 제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다만 보안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한은 조사에서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꼽은 답변(100점 만점에 72점)이 가장 많았다.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는 지문, 홍채, 정맥 등 바이오 인증 기술은 더욱 보안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신용카드나 통장 비밀번호는 유출되더라도 이후에 바꿀 수 있지만, 개인의 고유한 생체정보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유출사고가 벌어지면 속수무책이다. 한은 관계자는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이 확대되면서 개인정보 유출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증대했다”면서 “바이오인증 기술 활용 등 안전성 제고 노력과 함께 소비자 보호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급격한 디지털금융으로의 전환은 노년층 등 ‘신금융소외 계층’을 낳을 수 있다. 한은 조사에서 세대별 모바일뱅킹 이용률은 30대가 62.1%에 달했지만 60대 이상은 13.7%로 저조했다. 60대 이상 노년층 10명 중 8명(82%)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만, 이들 중 1.3명만이 스마트폰으로 금융업무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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