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해냈다, 또 할 수 있다" 아듀, 버락 오바마

2017. 1. 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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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뉴욕타임스> 독자들은 오바마의 가장 큰 유산으로 그의 기품과 가치를 꼽았다. 버락 오바마는 계층을 아우르는 소통과 가식 없는 삶으로, 흑인 대통령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에 영감을 줬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

8년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 10일(현지시간) 고별 연설장에서 다시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우리는 해냈고(Yes, we did.), 또 할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도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희망을 역설했다. 시작도 끝도 박수를 받은 대통령 오바마의 8년은 단순히 업적과 성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의 결정 뒤에는 가식 없는 삶과 기품 있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오바마를 존경했고, 그의 마지막 길을 아쉬워했다. 지성과 카리스마는 물론 공감력과 유머감각까지 갖춘 ‘인간’ 오바마의 매력은 미국과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희망과 화해·관용·다양성의 상징으로

오바마는 2008년 대선 캠페인 동안 ‘변화’와 ‘희망’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그가 가져온 ‘변화’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두려움을 내세워 ‘변화’를 주창한 트럼프와 대조된다.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완성한 정책이 별로 없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란 핵협상 타결, 쿠바 국교정상화, 건강보험 개혁, 기후변화 대처노력, 금융위기 극복, 소수자·여성 인권 신장 등 오바마 행정부의 8년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해 내디딘 한걸음이었다.

5일 오바마는 대국민 편지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기초를 다졌다”며 집권 8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변화는 결코 쉽지 않고 빨리 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가 이룬 업적이 트럼프 행정부를 만나 물거품이 될 위기에 있다는 것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또 총기규제, 이민개혁 등 채 이루지 못한 정책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8년 전 오바마가 취임할 당시 금융위기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안팎으로 악재가 팽배했다. 임기 내내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정책이 막혔지만 오바마는 품위를 잃지 않았다. 오바마케어 추진을 앞두고 공화당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했다. 공감과 소통의 정치는 57%에 달하는 임기말 지지율로 돌아왔다. 민주당 정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지만 ‘마이티 덕(레임덕 없는 대통령)’ 칭호를 들었다.

오바마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야기는 진보의 이야기”라고 강조한 오바마는 더 많은 사회복지망을 구축하려 했고, 밖으로는 핵 없는 세상을 꿈꾸며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려 했다. 오바마는 늘 긍정을 말했다. 그는 고별편지에서 “미국의 가장 좋은 날들은 아직 우리 앞에 있다”며 “미래의 진보를 만든 사람은 여러분(미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례식에서 치유의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장면은 상징적 이다.

7일 <뉴욕타임스> 독자들은 오바마의 가장 큰 유산으로 그의 기품과 가치를 꼽았다. 독자들은 “미국에 자부심을 갖게 해준 지도자” “신념을 절대 잃지 않은 대통령” “모범적인 아버지이자 남편” “쿨한 지도자” 등 오바마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인상깊게 평했다. 계층을 아우르는 소통과 가식 없는 삶으로, 흑인 대통령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에 영감을 줬다.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미국 출신 백인 어머니를 둔 오바마의 유년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결혼 2년 만에 곁을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해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지만 곧 파경을 맞았다. 이후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외조부모의 손에 컸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자)로 성장한 배경은 타인에게 공감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자양분이 됐다.

오바마는 불법이민자의 법률상담 등을 보장하는 ‘이민 개혁’을 추진했다. 2012년 재선을 앞두고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를 선언한 데 이어 임기 중 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여성지 <글래머> 기고문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며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성들의 책무”라고 밝혔다.

미국 역사에 남은 갈등의 상처도 봉합하려 애썼다. 취임 9개월 만에 핵무기 군비축소 노력과 다자외교 노력을 인정받아 200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해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오바마가 제시한 ‘핵무기 없는 세상’ 비전은 정책으로 이어졌다. 2015년 12월 타결된 ‘이란 핵협상’은 오바마 외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된다. 36년간 숙적이었던 미·이란 관계는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또 그는 지난해 3월 미 현직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냉전의 장벽을 허물었다.

2009년 1월 20일 취임선서하는 오바마. /미국 정부

퇴임 후 정치지도자 양성에 나설까

지난해 5월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원폭을 투하한 일본 히로시마를 찾았다. 그러나 ‘사과 없는’ 방문으로 “어정쩡한 과거사 봉합을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지나치게 신중해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은 이슬람국가(IS) 대응, 시리아 내전 문제는 결국 풀지 못하고 주도권을 잃었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143년 만에 탄생한 흑인 대통령도 인종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경찰 총격에 흑인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지난해부터 미 전역에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는 운동이 일었다. 최근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재임 기간 흑백 갈등 해소에 진전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6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1961년생인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만 55살로, 퇴임 대통령 중 4번째로 젊다. 아직 젊은 그가 대통령직 퇴임 이후 맡을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는 오바마재단 본부가, 워싱턴에는 개인사무실을 둘 것이라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오바마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둘째딸 사샤의 학업이 끝나는 2019년까지 워싱턴에 머무르기 때문에 오바마가 대통령 임기 동안 추진했던 정책과 관련해 민간활동을 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지난달 미 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기후변화, 건강보험, 형사사법개혁, 최저임금 문제 등에 관심 있는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해 ‘정치지도자 양성’의 뜻을 밝혔다. 또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고 재건하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도 했다. 이미 5권의 책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오바마는 지난해 대선 이후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퇴임 후 1년간 책을 쓸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다음날인 21일에는 하루 종일 밀린 잠을 잘 것이라고 말해 8년 동안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는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윤정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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