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인터내셔널'-국가주의 초월한 '나의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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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불가침한 영역처럼 취급된 노래인데, 나는 이 노래를 그 어떤 노래보다 더 좋아하고 혼자서도 자주 부르곤 했다. 음치인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에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다른 노래들은 대부분 보편보다 어떤 민족·국가적 특수에 더 치우치곤 했다. 소련의 국가만 해도 좀 그랬다. “자유로운 공화국들의 불멸의 연합을, 영영토록 위대한 러시아가 단결시켰다”. 소련은 분명히 러시아 민족만의 국가도 아니고 150개나 되는 민족들이 공존했던 곳이었는데, 이런 나라를 대표했던 노래의 첫줄부터 “위대한 러시아”가 나온다는 것은 특히 유대계인 나로서는 적지 않기 듣기가 불편했다. 반대로 ‘인터내셔널’은 완전하게 보편적이었다. “노동자의 군대”가 벗어날 “굴레”도, “대지의 저주 받은 땅”도,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도 계급사회가 존재하는 이상 어느 시대에도 어느 지역에도 해당될 수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마음대로 쉽게 가서 볼 수도 없는, “우리나라” 테두리 바깥의 넓디넓은 세상의 모든 피억압 민중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더욱더 이 노래와 친숙해진 계기는 행사 때 보통 잘 불러주지 않던 그 구절의 내용들을 한 번 책에서 읽고 나서였다. 소련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았지만, 제5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 테마는 반군사주의 투쟁이었는데, 그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군대에서도 파업하자”, “대오에서 벗어나라”, “우리 사이에 평화를 맺고 다같이 폭군들과 싸우자”, “저 식인종들이 계속 고집을 피우면 (…) 우리 총탄이 아군 장군들을 향해 날아갈 것을 저들이 알게 될 것이다”. 군에서의 반란, 그리고 혁명을 부르짖는 이 노래에서 특히 고급장교들을 “식인종”이라 지칭한 것은 커다란 해방감을 안겨줬다. 비록 소련 군대라 해도 나는 사람을 규율의 노예이자 살인기술자로 만드는 군대를 체질적으로 증오했다. 그래서 우리 당의 신성한 당가에서도 이런 반군사주의적 정서들이 적지 않게 반영된 것은 나에게 그야말로 복음 같은 소리였다.
최근 러시아부터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까지 반체제적 성격의 집회에 가면 자주 ‘인터내셔널’을 듣는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들리지만 해외에서 ‘인터내셔널’은 여전히 국경 없는, 지구별 같은 크기의 ‘민중 나라’의 국가다. 내 여권의 색깔이 어떻든 간에 ‘인터내셔널’이야말로 나의 애국가라는 생각은 지금도 강하다.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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