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인터내셔널'-국가주의 초월한 '나의 애국가'

2017. 1. 18. 10: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 어린 시절 소련에서 ‘인터내셔널’은 아주 특별한 노래였다. 사회주의 간판을 내건 사회였지만, 오히려 그만큼 신성한 노래로 분류된 ‘인터내셔널’은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작은 행사들이 있을 때에는 보통 적백(赤白)내전(1918~1921년) 시절의 노래나 혁명 또는 내전을 테마로 했던 후대의 노래들을 부르곤 했다. 아주 큰 행사일 때에는 소련의 국가(國歌)를 불렀다. ‘인터내셔널’은 국가가 아닌 공산당과 그 외곽단체, 즉 공청(공산청년단)이나 소년공산당 등의 당가(黨歌)였다. 이 노래는 인생을 바꿀 만한 중요한 계기가 주어졌을 때에만 부를 수 있었다. 예컨대 소년공산당이나 공청 입단식 때다. 그럴 때에 ‘인터내셔널’을 부르는 것은 당의 이상에 평생의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였다. “이 노래를, 선열들이 적들에게 잡혀 총살당하기 직전에 불렀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에, 정말로 아무렇게나 다룰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는 느낌을 늘 받을 수 있었다.

신성불가침한 영역처럼 취급된 노래인데, 나는 이 노래를 그 어떤 노래보다 더 좋아하고 혼자서도 자주 부르곤 했다. 음치인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에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다른 노래들은 대부분 보편보다 어떤 민족·국가적 특수에 더 치우치곤 했다. 소련의 국가만 해도 좀 그랬다. “자유로운 공화국들의 불멸의 연합을, 영영토록 위대한 러시아가 단결시켰다”. 소련은 분명히 러시아 민족만의 국가도 아니고 150개나 되는 민족들이 공존했던 곳이었는데, 이런 나라를 대표했던 노래의 첫줄부터 “위대한 러시아”가 나온다는 것은 특히 유대계인 나로서는 적지 않기 듣기가 불편했다. 반대로 ‘인터내셔널’은 완전하게 보편적이었다. “노동자의 군대”가 벗어날 “굴레”도, “대지의 저주 받은 땅”도,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도 계급사회가 존재하는 이상 어느 시대에도 어느 지역에도 해당될 수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마음대로 쉽게 가서 볼 수도 없는, “우리나라” 테두리 바깥의 넓디넓은 세상의 모든 피억압 민중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더욱더 이 노래와 친숙해진 계기는 행사 때 보통 잘 불러주지 않던 그 구절의 내용들을 한 번 책에서 읽고 나서였다. 소련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았지만, 제5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 테마는 반군사주의 투쟁이었는데, 그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군대에서도 파업하자”, “대오에서 벗어나라”, “우리 사이에 평화를 맺고 다같이 폭군들과 싸우자”, “저 식인종들이 계속 고집을 피우면 (…) 우리 총탄이 아군 장군들을 향해 날아갈 것을 저들이 알게 될 것이다”. 군에서의 반란, 그리고 혁명을 부르짖는 이 노래에서 특히 고급장교들을 “식인종”이라 지칭한 것은 커다란 해방감을 안겨줬다. 비록 소련 군대라 해도 나는 사람을 규율의 노예이자 살인기술자로 만드는 군대를 체질적으로 증오했다. 그래서 우리 당의 신성한 당가에서도 이런 반군사주의적 정서들이 적지 않게 반영된 것은 나에게 그야말로 복음 같은 소리였다.

최근 러시아부터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까지 반체제적 성격의 집회에 가면 자주 ‘인터내셔널’을 듣는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들리지만 해외에서 ‘인터내셔널’은 여전히 국경 없는, 지구별 같은 크기의 ‘민중 나라’의 국가다. 내 여권의 색깔이 어떻든 간에 ‘인터내셔널’이야말로 나의 애국가라는 생각은 지금도 강하다.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주간경향 공식 SNS 계정 [페이스북] [트위터]

▶모바일 주간경향[모바일웹][경향 뉴스진]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