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번역기.. 사라지는 번역가?

정상혁 기자 2017. 1. 1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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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등 인터넷 번역기 AI 도입
단어별로 번역하는 수준에서 맥락 파악하는 방식으로 진화
"비문학, 기계번역 대세 될 것"

소설가 겸 번역가인 배수아(52)씨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구글 한·영 번역이 놀랍다. 복문이나 긴 문장은 아직 어려운 것 같지만 단문일 경우 거의 완벽해 보인다. … 구글 번역 덕에 예전이라면 적어도 이틀은 매달렸어야 할 일을 한나절에 해치운 듯하다." 배씨는 "한·영 번역가들의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덧붙였다. "문학 번역은 아직 아니라고 위안하는 목소리도 많은데, 문학 언어란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 문학 번역가들의 신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글 등 인터넷 번역기가 인공지능(AI)을 탑재하며 상당한 성능 향상을 보이자 번역계가 들썩이고 있다. 문장을 단어별로 쪼개 번역하던 수준에서 나아가, 문장 전체를 통째로 해석하는 데다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어의 경우 아직 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없지만, 영어·중국어 두 언어 간 번역은 인공지능 기능 도입 이후 인간의 번역과 55~85% 정도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다음 달엔 수십 장짜리 문서를 2~3초 내로 번역해주는 국내 번역 사이트(지니트랜스)까지 나온다. 이미 번역계엔 "실용서 위주의 번역은 금세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스위프트 데이터 구조와 알고리즘'이라는 미국 원서를 번역 중인 정보통신기술회사 넥스트플랫폼 동준상 대표는 "번역기 덕에 관련 외국 문서 검토 시간을 30% 가까이 줄였다"고 했다. 번역가 배충효(37)씨는 "번역기 성능 향상으로 번역가들의 위기감이 상당하다"며 "비문학 쪽은 조만간 기계 번역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추세가 문학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셰익스피어 '햄릿' 첫 장(章)의 경우 어색한 번역도 여전히 있지만, 구글 번역기와 번역가의 결과물이 상당 부분 일치했다. 대사 "Long live the king!"을 넣자, "폐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라고 번역된다. 최근 '햄릿'(창비)을 번역한 설준규 한신대 명예교수는 이 부분을 "국왕 전하, 만수무강!"으로 번역한 바 있다. 15개 국어를 구사하는 번역가 신견식(44)씨는 "이제 번역기가 전문 번역가들이 참고할 정도의 수준으로 도약했다"며 "기계 번역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번역가는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해석 외에 외국어를 모어(母語)로 가장 탁월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번역가 3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10명이 "번역기를 써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어떤 단어가 가장 일반적으로 자연스레 쓰이는지 알고 싶을 때"(한국화·안송원) 등이 주 이유였다. 30명 전원이 "아직 독자들이 돈을 내고 읽을 만한 수준의 번역은 시기상조"라고 답하긴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매우 신선한 번역문이 나올 수 있다"(박소진)는 긍정적 의견도 있었다. 번역가 이데 슌사쿠(일본어)씨는 "번역기가 번역가를 뛰어넘게 될 때, 번역가는 역사적인 역할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깨끗이 은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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