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 Tech 10] 무기 역사 이끈 '짝퉁' | 미국 첨단 폭격기 B-29 부러워한 소련 불시착 비행기 그대로 복제해 Tu-4 개발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17. 1. 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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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폭격기 B-29(위)와 이를 그대로 복사한 소련 Tu-4 폭격기. Tu-4가 비록 짝퉁이었지만 B-29를 복제하면서 습득한 기술은 소련 전략 폭격기의 개발을 선도했다.

짝퉁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립국어원에서 제작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당당히 등재된 표준어이니, 그만큼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사품, 모작(模作)과 같은 단어들에 비해 짝퉁은 저질, 불법처럼 부정적인 의미가 유별나게 강하게 풍긴다. 그런데 분명히 짝퉁 제작 행위가 불법이고 나쁜 것임에도 커다란 지하 시장이 존재하고 있다.

원작의 가격이 비싸서 짝퉁이라도 소비하려는 이들이 존재하고, 이런 욕구를 만족시켜 이득을 얻고자 하는 공급자들이 있기에 짝퉁 시장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개 짝퉁 하면 중국을 먼저 떠올리지만 한국도 이런 불명예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단속이 강화돼 국내의 짝퉁 생산은 예전보다 덜 하지만 여전히 짝퉁 시장이 존재한다. 쉽게 카피할 수 있는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분야는 더하다.

이처럼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이나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할지 모른다. 누릴 수 있는 이익이 크면 클수록 짝퉁이 등장할 확률은 높다.

이익이 없다면 당연히 짝퉁이 나타날 수 없으니 어쩌면 경제 원리를 가장 충실히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경제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짝퉁을 자주 목도할 수 있는 분야가 또 있는데 바로 무기의 세계다.

물론 무기도 크게 보면 공산품이므로 일반 상품처럼 각종 권리가 보호되고 있다. 당연히 특정 무기를 국내에서 제작하기 위해서는 원저작권자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 국내에서 생산한 KF-16 전투기나 터키 현지에서 제작한 K-9 자주포가 그런 사례다. 사실 무기는 갈수록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므로 자체 개발이 힘든 경우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하는 경우도 많다.

무기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베끼기

하지만 전시나 이에 준하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상대의 무기가 좋으면 무단으로 복제해서라도 사용해야 한다. 물론 그저 베끼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기가 어렵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싸워야 한다. 어쩌면 짝퉁이 가장 먼저 탄생하고 적극적으로 사용된 분야가 무기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총, 칼처럼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무기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기의 제작에 많은 기술 요소가 투입되고, 이를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하면서 무단 복제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무기는 정식으로 값을 치르고 직접 도입하거나 기술을 도입해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개발국과 우호 관계여야 가능하다.

무기는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쉽게 사거나 노하우를 얻을 수 없는 특수한 상품이다.

적대국 관계면 애로 사항이 더 많다. 대등한 수준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전력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 무단 복제를 하게 된다. 그것도 전쟁의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무기라면 더하다.

하지만 무기는 단지 겉만 그럴듯하게 흉내만 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밑에 숨어 있는 기술이 더욱 중요한데 이는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무기를 노획해 분석해 보거나 간첩 활동을 벌여 기술을 습득하는 차선책을 사용한다. 일반 상품이라면 제소(提訴)도 가능한 불법적인 행위지만 무기의 경우는 이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막거나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확보하려 하는 창과 방패의 싸움만 있을 뿐이다. 무기의 세계에서 이런 보이지 않는 경쟁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소련의 Tu-4 폭격기다.

소련이 Tu-4를 제작하는 모습.

베껴서 습득한 기술 발전시켜 Tu-95 개발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B-29 폭격기를 앞세워 일본을 초토화했다. 이를 지켜본 소련에 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B-29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소련은 미국에 기술 공여를 요청했지만, 종전 후 소련과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한 미국은 거부했다. 소련은 불과 종전 2년이 지난 1947년에 B-29를 그대로 복제한 소련 최초의 전략폭격기 Tu-4를 등장시켰다. 단지 겉모양만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 역설계를 통해서 모든 부분을 완벽할 만큼 그대로 재현했다. 너무 심하게 베끼는 바람에 미국에서 B-29를 생산하는 도중 실수로 생긴 흠집까지 그대로 재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이런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944년 일본 본토 폭격에 나선 B-29 폭격기들 중 사고로 인해 가까운 소련의 연해주로 날아가 비상 착륙한 폭격기가 있었는데 이를 나포한 것이었다.

압류한 B-29를 조사한 소련 기술진은 기존 소련의 폭격기와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B-29는 지금도 사용 중인 B-52의 개발에 영향을 줬을 만큼 기술 수준이 높은 걸작이다.

그래서 소련은 참고만 하기로 한 계획을 바꿔 B-29를 그대로 복제하기로 결정했다.

자존심은 다음 문제였다. 덕분에 소련은 냉전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핵폭탄 운반 수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소련은 이렇게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도 활약 중인 Tu-95를 개발했다. 그래서 양국의 대표적 전략폭격기인 B-52와 Tu-95는 흔히 이복형제로 불렸다. 이처럼 기술 개발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Tu-4는 나름대로 또 다른 길을 개척한 향도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의 공산품을 짝퉁이라고 폄하만 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베껴서 습득한 기술이 짝퉁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씨앗이 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 근무, 현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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