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나쁜 사람" 노태강의 눈물.."더럽혀진 문체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정진우 2017. 1. 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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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 국장과 중앙일보가 17일 용산구 동부이촌동 카페에서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우상조 기자
"무너질대로 무너진 문체부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란다."
지난 11일 박영수 특검팀에서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만난 노태강(57)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은 굵은 눈물을 훔쳤다. 지난 3년간의 억울함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눈물이었다. "특검 수사는 문체부를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인데 방해될까 걱정"이라는 그를 설득해 지난 16일 만났다.
지난 11일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에 들어서는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
노 전 국장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당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좌천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심기를 거스른 노 전 국장은 이 자리마저 지키지 못하고 지난해 5월 말 문체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 기간에 대한 노 전 국장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는 "그간 수없이 많은 핍박과 압박을 당하면서도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제대로 살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빈 구멍에 최순실과 김기춘을 대입하니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노 전 국장은 "'최순실-김기춘 라인'인 김종덕 전 장관과 김종 전 2차관이 자유롭고 창의적이었던 문체부를 한 순간에 몰락시킨 장본인"이라고 표현했다.


◇ 어느 날 찾아온 후배 "사표를 내야할 것 같다"
"사표를 내셔야할 것 같습니다."

국립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일하던 지난해 4월 문체부의 한 과장급 후배가 던진 말이었다고 한다. 노 전 국장은 "그렇게 내가 꼴보기 싫으면 안 보이는 곳으로 인사를 내 달라.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항변했지만 돌아온 답은 '안 될 것 같다. 장관(김종덕)도 어디서 전화를 받은 모양'이라는 내용이었다"고 기억했다. 84년 3월 시작한 공무원 생활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의 퇴직일자는 지난해 5월31일이다.

‘VIP 관심사항’이던 프랑스장식미술전이 문제였다. 한-프랑스 교류 13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와 공동으로 준비하던 이 전시에 노 전 국장은 김영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 반대 의견을 냈다. 노 전 국장은 "명품브랜드 제품을 전시해달라는 프랑스의 요구가 부적절하다 판단했다. 특정 사치품을 전시하는 것은 국립박물관의 성격과도 맞지 않고 자칫 국립박물관이 명품 브랜드 홍보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권고 사직이 대통령의 하명이란 건 나중에 알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3월 전시회 무산 경위를 보고 받은 박 대통령은 노 전 국장을 콕 찝어 "그 사람 아직도 (문체부에) 있어요?"라며 사실상의 경질 지시를 내렸다는 게 복수의 문체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 "모철민 교문수석이 박원오 만나보라고 전화"
"'체육계 기둥'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았다"는 노 전 국장의 수난은 2013년4월 상주승마대회가 끝난 직후 시작됐다. 그때 2등을 차지한 고등학교 2학년 정유라가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딸이라는 것을 노 전 국장이 알게 된 건 몇달 후라고 한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대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모철민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냥 받아 적어라, 박원오라는 사람이 있다, 번호 알려줄테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를 만나러 갔던게 노 전 국장과 함께 경질됐던 진재수 과장이었다.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 국장과 중앙일보가 17일 용산구 동부이촌동 카페에서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우상조 기자

Q : 박원오 감독이 무슨 이야기를 했나.
A : “주로 승마협회의 지역 임원진들의 개인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신빙성도 없었고 허황된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박원오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니 공금 횡령, 업무상 횡령, 사기미수, 사문서 위조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더라.”

Q : 그럼 청와대에서 ‘박원오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 건 박원오의 민원을 들어달라는 의미였나.
A :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박원오라는 사람 자체가 진실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 박원오의 민원 내용을 빼고 ‘승마협회를 포함해 체육계 전반의 임원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모철민 수석에게 올렸다. 보고서를 올리고 하루 뒤에 바로 박원오씨가 당시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보고서를 그딴 식으로 쓰면 어떻게 하냐.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했다더라”
실제로 노 전 국장은 '가만두지 않겠다'던 박 전 전무의 예고대로 한달여 뒤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발령받았다. 박 대통령이 당시 유진룡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노태강·진재수' 두 사람을 "참 나쁜 사람"이라고 지적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공무원이 일을 잘한다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나쁘다' '좋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올린 보고서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던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윤선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맡으라" 제의
노 전 국장이 겪은 이상한 일은 최근에도 계속됐다. 노 전 국장은 "지난해 12월 문체부 한 고위관계자로부터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조윤선 장관의 ‘회유 의혹’으로 보도됐던 내용의 실체였다. 노 전 국장은 “이 자리를 받아들이면 불법적으로 취업한 게 된다. IOC 헌장을 위반하는 인사인데, 취임 자체부터 정당성이 없는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란 말이냐고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조 장관이 직접 나서 명예회복 방법을 찾아보겠다는데 받아들일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노 전 국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정한 명예회복은 내가 체육국장에서 좌천된 일부터 정확하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을 해 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혹시 또 어떤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의미라면 그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언사라고 생각한다고 답해줬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오른쪽). 왼쪽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노 전 국장은 현재 문체부의 상황에 대해 “여러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곪아 있는 상태다. 이같은 문제들은 대부분 비선실세를 통해 문체부에 들어온 김종덕 전 장관과 김종 전 차관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김 전 차관에 대해 “2014년 7월 유진룡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반기를 들다 해임된 후 김종 2차관의 본격적인 조직 장악에 나선 것 같다. 1차관실 관할이던 관광 관련 업무와 해외문화홍보원 관리 업무를 2차관실로 이관하고 체육국 인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주물러 모든 권한을 싹쓸이했다”고 말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노 전 국장은 "예술혼을 불태우기 위해 가난하게 사는 것을 훈장처럼 생각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돈 앞에 줄세우려 하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하고 치졸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7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
조사 직후 흘린 눈물에 대해 노 전 국장은 "가족들 생각에 울컥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집사람은 남편이 공무원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이다. 체육국장직에서 경질될 때 가장 큰 고민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에게 어떻게 설명해주느냐였다. ‘아빠는 공무원인데, 아빠보다 높은 사람하고 의견이 조금 다른 상황이다. 생각을 굽힐 수 없어 다른 곳으로 가는거지 절대 잘못한 일은 없다. 아빠는 너희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하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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