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핵심판 증거채택 기준은.."법 테두리 내 절묘한 묘수"

윤진희 기자 2017. 1. 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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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있다. . 2017.1.1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대통령 탄핵심판의 심리를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가 17일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조서 가운데 탄핵 결정에 영향을 미칠 주요 증거들을 채택했다.

이날 헌재는 '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인 최씨를 비롯해 최씨와 연루된 안종범 전 수석과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등 전직 청와대 관계자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조서들을 다수 증거로 채택했다.

주목할 것은 헌재가 탄핵심판 증거채택과 관련된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증인 소환에 불응하거나 설령 출석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바람에 지연되던 탄핵심판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 헌재, 영상녹화·변호인 입회한 검사조서 등에 증거능력 부여

국회가 지난해 12월 9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한 지 40일이 지났다. 국회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헌재는 탄핵소추 의결서를 전달받던 순간부터 신속하고 공정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탄핵심판의 피소추자인 대통령이 탄핵사유를 전면부인하면서도 재판진행의 기반이 되는 '사실 확정' 절차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 재판절차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헌재가 확보한 자료 대다수가 검찰이 건네 준 수사 자료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헌재가 검찰로부터 건네받은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 조서' 등 조서는 형사소송법상 원칙적으로는 증거능력이 배제되는 ‘전문증거’이기 때문이다. '전문증거'는 당사자들이 직접 구두로 법원에 보고하지 않고 서면이나 타인의 진술 형식 등 간접형식으로 법원에 전달되는 증거를 말한다.

이 경우 원진술자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시켜 진술 내용에 대한 동의를 받거나 헌재가 직접 증인들을 신문하는 절차를 거쳐야 '진술증거'를 심리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이는 검찰에서 진술한 증인들이 고문이나 강압 등 강제에 의한 진술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다. 수사과정의 적법성이 보장돼야 수사과정에서 진술한 증언의 적법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문법칙'에 따라 헌재가 검찰이 건네 준 수사 자료를 증거로 활용하려면 헌재 심판정에 직접 원진술자를 불러 증인신문을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의 경우 이날까지 총 여섯 차례의 변론기일에 헌재로 소환된 증인 가운데 절반은 출석하지 않았다.

헌재 입장에서는 '사실확정' 단계를 빠르게 넘어서지 못할 경우 심리가 마냥 지연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헌법재판소법이 탄핵심판에 형사소송절차를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을 전면 부인하고 좀 더 완화된 민사소송절차를 따를 수도 없다. 이는 명백한 헌법재판소법 위반으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검찰에서의 진술이 적법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Δ조사 전 과정이 영상으로 녹화돼 있거나 Δ조사과정에 변호인이 입회하고 변호인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에는 굳이 원진술자가 헌재에 나와 다시 진술이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증언하지 않아도 '증거능력'을 인정하겠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국회 측과 대통령 측이 '증거능력' 확보만을 이유로 헌재 심판정에 세워야할 증인 수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증인불출석에 따른 기일공전이 줄어들고 '사실확정' 절차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 헌재의 새로운 탄핵심판 법리, 선례로 남을 듯

헌재가 새로 만들어낸 탄핵심판 증거채택의 기준은 앞으로의 탄핵심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번 기준이 선례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향후 다시 탄핵심판이 진행될 경우 증거채택과 사실확정 등에 해당 기준이 제시된다. 사실상 탄핵심판의 법리를 새로 만들어낸 셈이다.

전문가들이 헌재가 새로 만들어낸 법리를 '묘수'라고 호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탄핵심판의 고비로 평가되는 사실확정 단계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소추인 측과 피소추인 측 누구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다는 이유다. 헌재가 심판진행에 속도를 낼 수 있으면서도 재판내용과 재판결과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평가다.

공개변론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권성동 소추위원이나 이중환 대통령 측 대리인 모두 헌재 결정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 헌재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득실이 있지만 어느 한쪽이 크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헌재가 새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여되지 않은 핵심증거는 Δ최순실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일부 Δ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일부 등이다.

최순실의 검찰조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것이 소추위원 측에게 불리하지는 않다. 최씨가 검찰에서부터 대통령의 탄핵소추사유를 입증할 만한 진술을 하지 않고 부인했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된다 해도 탄핵소추 사유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활용될 가능성은 적다. 소추위원 측이 불리할 이유가 없다.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은 대통령이 지시한 내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꼽혀왔다. 16일 안 전 수석이 직접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출석해 자신의 검찰 진술조서가 적법절차를 거쳐 작성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안 전 수석의 검찰 진술조서가 탄핵심판의 증거로 쓰이게 됐다는 얘기다. 검찰이 안 전 수석에 대한 신문조서를 작성할 당시 압수한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바탕으로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사실을 조서에 기재했기 때문에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일부가 증거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해서 소추위원 측이 불리할 것은 없다.

이는 대통령 측도 마찬가지다.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이 대통령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증거였던 만큼 일부에 대해서 증거능력이 배제되는 상황이 나쁠 것도 없다.

결국 헌재가 그 어느 쪽에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객관적 기준을 마련했고,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하는데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낸 셈이다.[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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