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성폭력, 예술 행위로 포장한 범죄다
[토론회] 남성 위주 구조화된 영화판 등 성폭력 용인되는 원인 짚어야
"나는 마리아 슈나이더가 수치심과 분노를 연기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여자로서 정말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기를 원했다.”(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최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상대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의 동의없이 강간신을 촬영했다고 밝힌 인터뷰가 논란이 됐다. 마리아 슈나이더가 생전에 “촬영 당시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한 인터뷰도 다시 언급됐다.이 사건은 영화계 내에서 ‘연기’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을 고발하게 만들었다.
외국사례뿐만 아니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은 이와세 료 배우에게 여성배우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습 키스를 하라고 따로 디렉션을 준 사례도 있다. 모 작품에서는 한 감독이 남성 배우A에게 여성배우를 거칠게 다루라는 디렉션을 줘 여성 배우가 강제추행으로 남배우A를 고소한 사례가 있다.
16일 씨네21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긴급포럼은 남배우 A의 사례와 함께 영화계 내 성폭행 사건에 대한 원인과 인식변화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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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씨네21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긴급포럼 '이것은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영화계 내에서 여성 배우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지속적으로 발생해도 지금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로 △여성 대상화 △‘예술’에 대한 낭만적 판타지 아래 폭력을 용인한 문화 △남성화된 영화 산업 구조 등이 지적됐다.
‘여성 대상화’의 문제는 영화계 사례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문화의 기반이기도 하다. 손희정 연구원은 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제시한 여성 대상화의 개념을 소개했다. 여성 대상화는 여성을 △도구 △자율을 갖지 못한 것 △활력을 갖지 못한 것 △대체가능한 것 △언제라도 침입할 수 있는 것 △사고 팔 수 있는 것 △느낌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 △외모로 축소 △침묵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손 연구원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남배우 A의 사건 역시 “남성 감독과 남성 연기자 (그리고 빈번하게 남성 스태프들) 사이에 존재하는 남성 카르텔이 여성 배우의 전문성을 무시한 채로 대상화한 사례”라며 “작품을 둘러싼 의사결정과 논의 과정에서 여성배우를 소외시키고 완전히 도구화하여 그의 인간이자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계 성폭력’이 지속되는 두번째 이유는 예술이라는 이름아래 폭력이 용인된 문화다. ‘영화계의 특수성’을 운운하며 어느 작업장에서나 지켜져야 할 인권의 보편성을 쉽게 간과하는 것이다.
손희정 연구원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예술행위’에 대한 낭만적 판타지의 절묘한 절합의 결과”라며 “영화판에서는 상대 배우와 합의 없이 과하게 몰입해도 괜찮다는 용인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손 연구원은 “하지만 타인에 대한 폭력과 고통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예술은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도 “영화는 예술이 아니고 노동이고 일자리이며 업무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에 대해 처벌받는 것은 일반 사업장과 같아야 한다”라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임금체불을 하는 영화제작사에게 지원을 제외하는 제도처럼 영화계 내 성폭력에도 비슷한 제도가 적용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영화계 내 성폭행이 한국 영화사 70년 동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는 영화산업 자체가 남성들 위주로 구성된 상황 때문이다. 안병호 위원장은 “감독 역시 남성이 훨씬 많고, 현재 스태프로 일하는 다수의 사람이 남성인 것이 분명한 현실”이라며 “노조만 살펴봐도 촬영스태프 조합원이 210명이 조금 넘는데 여성 스테프는 10명, 촬영일을 구하는 커뮤니티 900명 중 여성은 20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영화 산업 내 여성들의 자리가 좁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만한 창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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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배우 김꽃비씨. 사진=정민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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