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감시, 화장실 통제..'노조파괴' 유성기업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공개

김상범 기자 2017. 1. 17. 17: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지난해 5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앞에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는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피켓 사진은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경향신문 자료사진.

현대자동차 부품 협력업체 유성기업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사측의 괴롭힘이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1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권운동사랑방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유성기업 괴롭힘 및 인권침해 사회적 진상조사단’은 지난 1년여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2011년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자문을 받아 노조 파괴가 진행된 유성기업에서, 많은 노조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사측이 조합원들을 괴롭히는 방식은 다양했다. 임금삭감이나 징계, 고소·고발의 명분을 잡아내기 위해 조합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에 총 30대의 CCTV를 동원해 조합원들을 감시했고, 휴대용 카메라나 녹음기까지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자 ㄱ씨는 “두명, 세명씩 뭉쳐다니지 못하게 했다. 커피를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까지 통제했다. 화장실을 갔다가 5~10분이 지나면 찾으러 오거나 전화를 해서 독촉을 했다”고 증언했다.

사측은 이런 방식으로 채집한 증거로 조합원들의 근태를 문제시해 징계했다. 사측 관리직원이 조합원에게 시비를 건 뒤, 사실을 과장하거나 부풀려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ㄴ씨는 “고소·고발 건수가 유성기업에서만 800건이 넘어 경찰서에서 고발 건수를 줄여 달라는 부탁까지 올 정도였다”라고 증언했다. 고소·고발건 중 상당수는 기소도 되지 않거나 법원까지 가더라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사측과 갈등을 빚어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 한광호씨의 경우 총 11건의 고소를 당했는데, 그 중 2건만 고소됐고 나머지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어용노조’를 이용해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들을 괴롭히거나 차별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유성기업은 2011년 7월 창조컨설팅 제안에 따라 제 2노조를 설립한 뒤 관리직 등을 중심으로 가입시켰다. 보고서는 “임금, 휴게시간, 조퇴, 성과급, 승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어용노조와 지회 조합원 간 차별이 만연해 있다”고 했다.

조사단이 지난해 6~7월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의 금속노조 조합원 24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67%가 지난 5년동안 회사로부터 업무 관련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회사측에서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해 온 노동자들 상당수는 분노조절장애나 우울증 같은 질환을 앓고 있었다. “어용노조 조합원들 밥 먹는 것 보면 분노가 끓어올라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못 먹는다”“징계를 세 번 받고 난 뒤 잠이 안 오고 가위와 악몽에 시달렸다” 같은 증언들이 나왔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23명 중 134명(60.1%)이 ’최근 5년간 음주 횟수가 늘었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는 ‘사측의 감시, 통제, 가학적 노무관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응답자 40%를 차지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은 인권침해의 다른 이름이자 부당노동행위의 다른 이름”이라며 “노조파괴 전략이 된 괴롭힘을 막기 위해 노동관련 법안 개정, 행정제도 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측은 “CCTV는 화재예방과 건물 관리를 위해 설치한 것이며 고소·고발 중 불기소 건수는 일부에 불과한 데다 대부분 사법기관에 의해 인정됐다”며 “(일상을 통제하고 괴롭힌다는 것은)입증할 수 없는 주관적 주장”이라고 밝혔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