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586) 메탄올과 물티슈

2017. 1. 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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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탄올보다 저렴.. 생활용품에 활용
눈·입 닦지 않고 섭취 안 하면 안전

친환경 기업으로 알려진 제조사의 물티슈에서 맹독성 메탄올이 검출되어 소동이 벌어졌다. 보존제의 용도로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 공정관리가 허술해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치약에서 CMIT/MIT가 검출된 경우와 같은 일이 반복된 셈이다. 30~40ppm의 메탄올이 소비자의 안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식약처가 2015년 7월에 공식적으로 정해놓은 허용기준을 벗어난 제품은 회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업용 기초원료나 자동차 연료로 많이 사용되는 메탄올은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다. 입으로 섭취하면 대사 과정에서 폼알데하이드와 폼산으로 변환되고,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사이토크롬 c 산화효소의 작용을 억제한다.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의식을 잃게 하고, 구토나 복통을 일으킨다. 서둘러 제독 치료를 받지 못하면 실명하거나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환기 시설이 부족한 작업장에서 호흡이나 피부 접촉을 통해 반복적으로 많은 양의 메탄올이 몸속으로 흡수되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우리 몸속에서도 극미량의 메탄올이 만들어진다. 특히 사과나 귤에 많이 들어있는 펙틴과 같은 탄수화물이 간에서 분해되면 상당한 양의 메탄올이 생성된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의 날숨에는 0.45ppm 정도의 메탄올이 들어있다.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사는 혐기성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메탄올도 있다. 우리 자신이 이미 극미량의 메탄올에 대해 진화적으로 적응한 상태라는 뜻이다. 물론 극미량의 메탄올이 들어있는 물티슈 때문에 피부가 극도로 민감한 소비자의 경우에는 발진 등의 경미한 부작용이 생길 수는 있지만, 직접 입이나 눈을 닦지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

메탄올을 자동차의 워셔액이나 부동액에 사용하기도 한다. 인체 독성이 훨씬 낮은 에탄올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성분이다. 그런 제품을 무작정 거부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섭취·흡입·접촉을 피하는 지혜를 활용하면 값싼 제품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성이 있다고 무작정 거부하는 것은 현명한 소비자의 자세가 아니다.

화장품이나 생활화학용품에 메탄올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생산 과정에서 메탄올을 용매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다. 유럽연합에서는 화장품의 경우에도 5%까지는 문제 삼지 않고, 미국에서는 관리 기준조차 분명하게 정해놓지 않고 있다. 소비자의 안전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식약처의 기준은 훨씬 더 엄격하다. 성인용 화장품에는 0.2%까지 허용하고, 유아용 제품에는 0.002%를 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기준이 유난히 엄격하다고 탓할 이유는 없다. 유해물질의 관리 기준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근거만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끔찍한 경험을 잊지 못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해주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유해물질에 대한 공포를 불필요하게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환경부가 최근 떠들썩하게 생활화학용품을 전수조사하고, 분무형 세정제·방향제·탈취제 18개 제품을 회수하도록 권고 조치한 것은 어설픈 일이었다. 분명하지 않은 과학을 핑계로 일방적으로 설정한 기준을 느닷없이 강요하는 것은 합리적인 법치가 아니다. 강화된 기준을 미리 고시해서 제조사들에 새로운 기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식약처의 합리적인 관리 방식을 배워야 한다.

환경부의 유해물질 관리와 산업부의 공산품 안전관리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산업부가 제품안전기본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정해진 제도적인 안전 관리 책임을 환경부로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독성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살생 성분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책임도 무겁다. 워셔액·부동액·제습제·양초를 '제품 자체가 화학물질에 해당하는 공산품'이라고 밝힌 산업부의 주장은 중학생도 아는 상식을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세상에 화학물질이 아닌 공산품은 어디에도 없다. 산업부가 안전 관리에 필요한 화학적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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