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충성? 대통령에 충성?'..공직자 길 성찰하는 美공무원들

입력 2017. 1. 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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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분야 관리들 사표 품고 일해..공화당계도 공직 제안받을지 고민
"참여는 곧 지지..참여해서 위법에 저항" 의견 분분
"내면의 금지선이 침범당하면 사표 내라..단 '조용하게' 떠나선 안 된다" 조언도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하나? 헌법에 충성해야 하나?

도널드 트럼프 새 대통령의 취임을 맞는 많은 미국 연방 공무원들이 자신들에게 묻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화두다.

물론 모두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떠나느냐 그래도 남느냐와 같은 번민과 불안, 두려움 등이 과거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또는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행정부가 교체될 때에 비해 이례적으로 크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외교·안보·국방 분야의 경우 '미국의 지도력과 힘이 보장하는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국제 질서'라는 큰 목표에선 공화당이나 민주당 행정부가 일치했다. 글나 트럼프는 이에서 이탈한 최초의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점에서 공직 봉사가 마땅한가를 놓고 논쟁이 더 불붙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사 월간 애틀랜틱은 최근 내정분야에서도 부처 업무 특성상 자유주의 성향으로 기운 환경보호청, 교육부, 주택도시개발부 등에선 '집단 탈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지만, 국경순찰대, 이민관세청(ICE) 같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인 곳은 안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틀랜틱은 "공직 내부의 적극적인 저항이 있으면 정책 집행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거꾸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풍부한 경험의 공무원들을 내쫓아도 정책 집행이 마찬가지로 어려울 수 있다"고 트럼프 측에 조언했다.

트럼프 정권인수위와 공화당이 공무원 감축, 임금의 표적 삭감 등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에너지부의 기후변화와 국무부의 성 평등 업무 공무원들에 대한 표적 숙청을 추진하는 의혹까지 겹쳐 미국 공무원 사회의 불안과 동요가 심해지자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 사설을 통해 "공무원 개인의 견해를 이유로 그들을 표적 삼거나 공무원 역할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 떠나야 하나 남아야 하나, 공직 제안 수락해야 하나 고사해야 하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고위직은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교체되는 정무직이다. 그러나 중하위직 400명은 국무부, 국방부 등 정부 다른 부처와 기관에서 파견된 외교·안보정책 전문 관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원대 복귀는 물론 전직, 학업, 해외 진출 시도 등을 통해 백악관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어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NSC 자리 절반이 빌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영국의 가디언이 지난달 하순 백악관 안팎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허핑턴 포스트는 지난달 초 다양한 분야의 연방 공무원 수십 명을 직접 인터뷰한 기사를 통해 "일부는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책 집행의 공범이 되고 싶지 않아서 공직을 떠나겠다고 말하고, 다수는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지 두고 보자는 생각이며 다른 일부는 (남아서) 세상을 거꾸로 세우려는 대통령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처음 입성한 2008년에도 "공무원들 사이에 '이 히피(오바마)가 뭘 하려 할까? '같은 말들이 오가긴 했지만, 오바마 때문에 공직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국방정보국(DIA)의 한 관계자는 이 매체에 밝혔다.

환경보호청에서 수십 년 장기근속한 한 공무원은 자신이 '100% 투사'라면서 스스로 공직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며 트럼프 행정부가 위법 행위를 할 경우 환경청 감사실에 신고하거나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말했다.

"일부는 탈출하겠지만, 압도적인 다수는 남을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망하면서 "남겠다는 사람 중 일부는 내부에서 싸우겠다고 하고 일부는 자신들의 일상 업무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나머지 일부는 떠날 형편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점에 뉴욕 매거진은 워싱턴의 특히 진보성향 공무원들의 분위기를 집중 조명했다. 이 잡지는 자신의 가치관과 배치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하기보다는 떠나야 하지만, 막상 떠나자니 그 자리가 공석으로 남거나 그에 걸맞은 가치관과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채워질 경우 사회에 꼭 필요한 해당 직무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떠나기도 쉽지 않은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한 국무부 여성 직원은 "트럼프 당선 직후엔 트럼프 행정부와 엮이기 싫다는 자동반사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떠나면) 미친 자들만 남을 것인데, 그들에게 내가 하던 일을 맡길 순 없지 않나. 달아나지 말고 남자'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대선 직후엔 이 국무부 여성 직원 말처럼 격한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이 연방 공무원 20여 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 11월 22일 자 기사는 "여러 사람이 무역, 이민, 건강, 환경보호 등에 관한 트럼프의 정책을 가리키며, 자신들이 동의할 수 없는 명령에 따르느니 정부를 떠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국가안보 관련 관리들은 물고문이나 무차별 사찰 등을 트럼프가 부활시키려 할 경우 언제든 던질 수 있도록 사표를 써 다닌다고 밝혔다. 환경보호청 규제관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고, 트럼프의 거대한 사업 이익과 연관된 업무를 보다가 권한 오남용을 빚을 것을 걱정하는 공무원들도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소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는 "떠나야 하느냐, 남아서 문제 있는 정책들에 저항하는 게 더 나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 직후 밀리터리 타임스가 실시한 현역 장병 약 2천8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 5명 중 1명꼴로 '트럼프 최고사령관' 휘하의 군엔 재지원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의 당선에 부정적인 여론은 특히 장교(39%), 여군(55%) 사이에서 높았다. 그러나 투표자 중 51%가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밝히는 등 트럼프 당선을 긍정 평가하는 응답이 전체적으론 절반을 넘었다.

로페어(LAWFARE)라는 법률전문 블로그는 11월 22일 자에서 "앞으로 (검사로서) 미국이라는 국가를 대리해 법정에 설 때 그 국가는 도널드 트럼프를 의미하게 되기 때문에" 법무부를 떠나겠다고 밝힌 한 연방 검사보의 사례와 "다른 때 같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법무부 자리 제안을 수락할지 말지 조언을 구한 검사보의 사례를 소개했다.

◇ 참여는 곧 지지다 對 참여해서 위법에 저항하라

미국 연방 공무원은 총 250만-270만 명. 이중 백악관 주인이 바뀌면 자리를 떠나야 하는 고위 정무직이 4천~7천 명으로 추산된다.

기존의 직업 공무원들은 물론, 트럼프와 같은 공화당계이면서도 트럼프 행정부 자리 제안에 참여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해 여러 전문가가 조언에 나서 참여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을 벌였다.

참여론자인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의 대니얼 바이먼 교수는 최고의 인재들이 전부 공직을 외면해선 안 된다면서 기회가 있으면 트럼프 행정부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 대학원 학생들이 국가안보 관련 공직에 진출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는 것은 20년 교수 생활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역시 조지타운대 법·철학 교수인 데이비드 루번은 "(정부에 들어가서) 야수를 길들일 수 있다고 자신을 속이지 마라. 그 야수가 너를 길들이게 된다"라며 원천적으로 참여를 반대했다. "참여는 곧 지지다"라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서 파시즘 등의 전체주의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남긴 한나 아렌트가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도 사실은 그를 지지하는 행위다.…책임 있는 자리라는 것은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지지를 요구한다"라고 설파한 것을 인용한 주장이다.

이들 논쟁 중에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의 엘리엇 코언 교수는 대선 직후 한 매체에 기고한 '수심에 찬 친구에게'라는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참여하라고 권유했다가 불과 며칠 만에 '멀리하여라'고 입장을 바꿔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당초 미국 의회와 사법부, 언론, 관료제 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트럼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좋은 인물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참여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5일 뒤 "트럼프 정권인수팀과 의견을 교환해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멀리하여라. 그들은 분노에 차 있고 오만하며 '너희, 졌잖아'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트윗을 날렸다.

그러나 일단은 남거나 새로 참여해 위법이나 터무니없는 정책과 싸우고 소수자 권익을 지키는 역할을 하라는 조언이 더 많다. 관료주의가 비효율의 대명사처럼 알려졌지만, 원래는 전문 행정기술을 기반으로, 권력의 전횡을 막는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순기능이 있는 점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반 트럼프 입장인 로자 브룩스 조지 타운대 법학 교수는 11월 28일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취약 계층인 소수자들과 빈곤층을 위해 "어느 때보다 공중에 봉사할 연방 공무원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모든 훌륭한 연방 공무원들"은 물론 "책임감 있는 공화당원들, 특히 트럼프에 반대한 공화당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배제되지 않은 이상 새 행정부에 들어가라"고 촉구했다.

"트럼프가 정부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모두 몰아내면, 어리석고 위험스럽거나 비열한 정책들을 막을 사람들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 국무부와 국가안보회의에서 25년간 근무한 베테랑 외교관 출신 조지프 캐시디는 12월 14일 자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충성스러운 국무부 관료이면서 깨끗한 양심을 지키는 방법'으로 11개 항을 제시하고, 일단 남아서 전문지식으로 복무하고 자신이 믿는 원칙을 위해 싸우되 결정된 사안을 존중하고 집행하라고 조언했다.

◇ 내면의 금지선이 침범당하면 사표 내라…단 '조용하게' 떠나선 안 된다

두 사람은 물론 다른 참여론자들 다수도 참여의 단서를 명확히 했다. 금지선을 설정해두고 날짜란을 남겨둔 사표를 언제든 꺼낼 수 있게 책상 서랍에 넣어두라는 것이다.

브룩스 교수는 직업 공무원이든 군 장교든, 정무직 공무원이든 "자신만의 금지선을 설정해두고, 트럼프가 그 선을 침범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미리 생각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임 또는 사퇴로 반대하거나 저항해야 하는 선을 말한다.

그가 예시한 금지선은 맡은 직무에 따라, 물고문을 비롯한 각종 고문의 부활, 어릴 때 미국에 밀입국해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청년 불법체류자의 대량 강제송환, 파리 기후협정 거부 등이다.

캐시디는 외교관을 비롯해 모든 공무원은 대통령, 소속 부처, 국익 등 층층의 제도 틀 속에서 움직이게 돼 있지만 "모든 연방 공무원이 공직을 맡을 때 지킬 것을 선서한 헌법에 대한 충성이 제1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1개 항의 조언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흔적과 기록을 남겨라'와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명예롭게 사직하되 조용히 떠나진 말라'라는 대목이다.

그는 공무원이 비밀서류를 유출하는 것은 범죄이며, 아주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도덕적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고, 정책수립 관련 정보의 예민함도 유의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선 외교정책에 관해서도 가능한 한 공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며 학계, 연구소, 의회 보좌진 등과 의견을 교환하라고 조언했다. 정책 수립 과정을 정부 바깥에서도 알도록 흔적을 남기라는 뜻이다.

이에 더해 단순히 진행 상황 파악을 위해서든 후일 회고록 작성을 위해서든 관련 기록물을 비밀분류해서라도 남기라고 말했다. "정확한 역사 기록이 정부 활동에 대한 국민의 감시를 돕는 길이며, 혹시 의회나 사법부가 행정부의 특정 정책이나 결정을 되짚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그가 조용히 떠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공직 경력을 포기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면 그에 대한 공개 토론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 밖으로 나가서도 자신이 다루던 문제들에 대해 계속 관여하라고 그는 주문했다. 다만, 특정 사안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한 차례 졌다거나 '누군가의 트윗'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를 던지지는 말고 '국가 이익과 권리에 대한 위협'이 되는 원칙의 문제일 때 결행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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