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오른 트럼프의 대북정책

2017. 1. 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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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북핵 위협에 맞서 ‘레드라인’ 설정한 트럼프,

대북 해법에 ‘대화’가 자리잡을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어떤 대북정책을 내놓을까. 대중국 강경 정책으로 북한 문제에 접근한 버락 오바마 정부와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예상보다 일찍 시험대에 올랐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2017년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내비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시계’가 더 빨라진 것이다.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을 향해 날린 북한의 첫 대미 도발에,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늘 그래왔듯이 트위터를 통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즉각 견제에 나섰다. 물론 어떻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을지 구체적인 복안은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지난 1월2일 저녁에 날린 이 대북 ‘트위터 포고령’(Twitter proclamation) 이후 미국 내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CNN] [NPR]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과 전직 관리 등 전문가들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거론하고 있다.

갑론을박식 북핵 해법 속에 트럼프 행정부로선 중동, 러시아, 중국 등 다른 외교 문제에 밀려 사실상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로 다뤄야 할 처지로 점차 내몰리고 있다. 한국 언론이 주로 다뤄 상대적으로 익숙한,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의 주장 대신 작지만 큰 울림을 갖는 대화파들의 ‘같은 듯 다른’ 북핵 해법을 따라가보자.

트럼프식 대북 레드라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액턴 선임연구원은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인터넷판(1월6일치)에 쓴 기고문에서 트럼프의 이번 발언을 북한에 대한 사실상 ‘레드라인’(금지선)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설정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저지라는 레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트럼프가 결국 북한과 협상하거나 대규모 군사작전에 나서거나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북 경제제재나 중국을 통한 압박, 군사적 위협, 그리고 미사일 요격 등 제한적인 군사작전까지 포함해 다른 대안은 협상의 지렛대이지 그 자체만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액턴 연구원은 우선 미국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에 나서려면 북한의 엄청난 보복공격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은 물론 일본의 미군기지까지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반경 내에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에 핵탄두가 장착됐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그 위험은 배로 커진다.

그는 설사 북한이 보복공격에 나서지 않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틀림없이 미사일 개발을 재개할 것이므로 주기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관련 시설을 향해 미사일을 날려 보내거나, 아예 북한을 점령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의 선택은 외교적 해결, 즉 북한과의 협상뿐이라고 액턴 연구원은 주장했다. 북한이 실제 미국과 협상을 원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여러 차례 합의를 어긴 전력이 있지만 그래도 성공한 사업가로 거래에 능한 트럼프로선 도전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는 협상을 통해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인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최소 몇 년 동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트럼프가 충분히 ‘베팅’해볼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협상을 통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저지에 실패하더라도 트럼프로선 별로 잃을 게 없다고 액턴 연구원은 조언했다. 트럼프가 늘 그래왔듯,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말한 적 없다’고 간단히 부인하면 그만이니까. 여기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에 대해 설정한 금지선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대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해도 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란만큼만 애썼으면 북핵 해결됐을 것

2017년 초부터 북한 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격화되고 있다. 김정은은 1월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며 “핵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REUTERS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 소장도 공영방송 [NPR]의 대담 프로(1월6일치)에 나와, 트럼프 행정부가 지체 없이 북한과 마주 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6자회담 미국 쪽 차석대표를 지낸 그는, 북한이 이미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핵탄두를 운반할 수단인 미사일 개발만 남겨둔 상태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을 사정권으로 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매우 가까이 다다른 상태로, 김정은의 말대로 2017년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의 해가 될 가능성이 커서 트럼프 행정부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내 대표적 대화파로 통하는 디트라니 전 소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북미 대화가 사실상 ‘제로’였다며 이 때문에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이란과 달리 북한 문제를 별로 중시하지 않아왔다고 정곡을 찔렀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미국이 이란 핵 합의 때 쏟은 노력만큼만 북핵 문제에 쏟았더라면 북핵 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란을 상대로 펼친 ‘전면적 압박 공세’(full-court press)를 북한에 대해서는 써본 적이 없고, 결과적으로 이란 핵 합의 같은 성과를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전면적 압박’이라는 사뭇 강경한 표현까지 써가며 트럼프 행정부에 북핵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 운영자인 조엘 위트 선임연구원 역시 [NPR]의 대담 프로(1월9일치)에 나와,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이외의 방안은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며 ‘끊임없이 계속해서’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방법만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북한과 마주 앉아 협상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트 연구원은 트럼프의 북한 관련 트위터에 대해 ‘매우 피상적(superficial)’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한마디로 북한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그리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북 공습 가능성이 대북 억지력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도 [워싱턴포스트] 기고(1월8일치)와 이튿날 ‘38노스’가 주최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미국이 북한과 핵 협상을 우선 추진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거의 불가능한 목표인 핵 폐기 대신 추가 핵,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 핵확산 중단 등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놓고 미국이 북한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대화가 실패할 경우 공해상에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하는 등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제한적 무력 사용을 통해서라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리 전 장관은 또 1994년 북핵 위기 때 경험에 비춰 미국의 대북 공습 가능성이 북한에 대한 나름의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공습할 계획을 세우고 한반도에 배치할 미군 증원군 규모를 검토 중일 때 평양에서 신호가 왔다는 것이다. 그때 이미 미국은 선제공습에 따를 북한의 보복공격에 대비해 한반도에 파병할 미군 증원군 규모를 수만 명 선으로 잠정 결정한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미군 파병 여부가 아니라 정확한 파병군 수가 논의되는 등 미국의 군사공격이 임박하자 북한이 즉각 반응했다고 해석했다.

다시 거론되는 대화파의 북핵 해법

다만 페리 전 장관은 크루즈미사일 몇 발로 간단히 영변 핵시설을 제거할 수 있었던 당시와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며 대북 군사적 선택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어디에 숨겨뒀는지 알 수 없는 현재로선 대북 선제공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의 군사적 보복이 예상되는 상황에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에 대한 선제공격조차 너무 위험한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두 차례 이뤄진 핵실험에 뒤이은 김정은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언급은 미국 내 대표적인 대북 대화파의 북핵 해법이 다시 거론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북한 제재만 줄곧 언급하던 미국 내 주요 언론매체가 새해 들어 비록 간헐적이긴 하지만, 외교적 해법을 전하고 있다. ‘닥치고 대화’(조엘 위트)부터 ‘일단 시도해보고 안 되면 말고’(제임스 액턴), 여기다 ‘이란과 한 만큼만 해봐라’(조지프 디트라니), 그리고 ‘미사일 격추로 겁을 줘서라도’(윌리엄 페리) 북한과 대화에 나서라고.

워싱턴 외교가에선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면 최소 100일, 통상 6개월 정도는 지나야 주요 정책이 골격을 갖춘다는 말이 있다. 정부 각 부처에 새로운 인물을 인선하고 이전 행정부의 정책을 재검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의문투성이’ 트럼프의 대북 해법에 ‘대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지도 판가름 날 것이다.

강창민 재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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